불임 이야기 EP.16-햇빛 드는 집을 찾아서...

불임 16화. 햇빛이 드는 집, 마음의 방어막

by 나은

햇빛 드는 집을 찾아서


2년이 흘렀다.

그 사이 살던 집을 떠나야 했고, 나는 여전히 혼자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며칠 밤낮을 발품 팔아도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예산은 훌쩍 넘겼고,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집은 드물었다.


전기밥솥 위로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 세 마리가 돌아다니는 집도 있었다.

하아…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나에게 꽤 불친절해졌고,

삶의 풍경은 골목 끝 낡은 담벼락처럼 눅눅하고 더러웠다.


집을 나서며 퉁퉁 부은 종아리를 끌고 습관처럼 한숨을 내뱉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이틀 동안은 집에 틀어박혀 쉬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떡 일어났을 텐데, 이번엔 느릿느릿 움직였다.

“팽팽한 고무줄은 언젠가 끊긴다, 잠깐 놓아뒀다가 다시 당기자.”

나를 달래는 말.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버틸 수 있으니까.


어떤 의식의 흐름이었을까.

그냥, 이사는 가야 했고,

그냥,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시 인터넷을 켜고 새로운 부동산을 찾았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정말 오랜만에 친절한 업자를 만났다.

나보다 조금 더 젊은 여자. 아마 중개보조인이었겠지.


새로운 집, 복잡한 마음


같이 공조하던 다른 부동산 업자가 좋은 매물이 있다며 던졌다.

그 집,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햇살 잘 드는 거실, 뚫려 있는 앞뷰,


그리고 보기 드문 이건창호.

막혀 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단점도 있었다.

큰 주택가 골목이라 장 보러 가기엔 멀고,

차가 잘 안 다니는 길이라 뚜벅이인 내게 밤 환경이 살짝 무서웠다.

그래도 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살던 근처라 보안은 괜찮다고 했으니…

밤 외출이 거의 없는 나로선 괜찮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늘 돈이다.

6년 만의 이사였고, 그 집은 지금 사는 집 시세의 세 배.

눈앞이 깜깜했다.


“남편이랑 다시 보고 결정할게요.”

그랬더니 공조하던 업자가 툭 던졌다.

“집을 보는데 결정권이 없으세요?”

“네? 네…”


순간, 뜨끔했다.

그래, 요즘은 여자 혼자 집 계약도 하지.

하지만, 내 안은 아직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하아… 나만 너무 구닥다리인가.

“이 집 인기 많아요. 다른 사람이 계약하면 어쩔 수 없어요.”

그 입술은 쉴 새 없이 위협하듯 움직였고,

곁에 있던 친절한 업자가 부드럽게 중재했다.

“의논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 말에 겨우 숨을 골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도 저런 오작교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이렇게 개입해 주고, 잠시라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있다면,

나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순간들, 그리고 결정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다시 집을 보러 갔다.

한 층에 세 집이 있는 구조였는데,

우리가 선택했던 집 세입자와 연락이 안 되어

같은 구조의 윗집을 보기로 했다.


양해를 구하며 복도에서 기다리는 중, 센서등이 꺼졌다.

어두운 복도.

가만히 있으면 켜질 텐데, 남편이 갑자기 움직였다.

굳이 센서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잠시 뒤, 불이 켜졌을 때

그는 조용히 업자 옆에 서 있었고,

업자는 나를 바라보며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뭐지?

뭘까?

모른다. 몰라도 된다.

그건 나중 일이다.

결국, 집이 마음에 들어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사를 하며 조심스럽게 마음속으로 빌었다.

지긋지긋하던 돈벌레와 작별하듯,

햇빛 드는 이 집에서 조금은 따뜻한 일이 찾아오기를.


비록 창호는 활짝 열리지 않아도,

두껍게 닫힌 이 창처럼

내 마음도 이제는 단단해지기를.

제발,

더는 아프지 않기를.

이제는, 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임 이야기 EP.15-산산이 부서진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