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17-웃음을, 다시 찾아야 한다

불임 17화. 착취당했던 웃음을 찾고 싶다.

by 나은



이사를 했다.

2개의 방이 3개가 되었고, 거실에는 햇볕이 따뜻하게 들이친다.

욕실엔 월풀이 설치되어 있고, 비록 저층이지만 1층 위에 위치해 있으니 눅눅한 기운 없이 쾌적하다.

무엇보다 지하주차장이 있어 비나 눈 오는 날, 승하차도 편하다.

… 비록 내가 차를 타고 다닐 일은 거의 없지만.


며칠 후, 손아래 시누이가 발가락 수술을 받겠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연년생 아들을 키우느라 지친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겠지만,

지금 나 역시 벼랑 끝에 서 있는 중이다.

그녀는 그런 내 형편을 알까. 아니, 알고 싶어 하긴 할까.


두 팔 벌려 반기지 않는 나를 뚫고 굳이 굳이 올라온 그녀는

무지외반증 수술을 하겠다며 당당했다.

도착한다는 저녁,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자

그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게 무슨 수술거리라고 서울까지 와서 한대?"

시누이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못 하면서, 나에겐 짜증을 쏟는다.


그의 가족에게는 한껏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부려먹던 그다.

(시누이 딸의 아디다스 바람막이를 구해달라느니, 시누이 시부모님의 금강산 관광을 알아보라느니...)

정작 본인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모든 생색은 자기 몫.

그렇게 그는 언제나 자기만 중요하다.


"기왕이면 큰 병원에서 하고 싶었던 거겠지. 집에 온다고?"

"아, 몰라. 바빠 죽겠구먼…"

그의 '바쁨'은 언제나 마음의 문제였고,

그 마음은 나에게만 각박했다.


밤 8시, 시누이는 도착했고 남편은 연락조차 없었다.

괜히 시누이의 마음이 다칠까 싶어 나는 일부러 들뜬 척 행동했다.

마음은 진이 빠졌지만,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게 해주자 싶어

동대문이라도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나가려는 순간, 하필이면 비가 쏟아졌다.

문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자

시누이는 눈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혼자만의 자유 시간을 기대했을 그 마음을,

만신창이인 나조차 응원하고 싶었다.


"오빠한테 내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아무래도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죠?"

나는 차마

‘네가 오는 걸 오빠가 귀찮아했어’

라는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 말이 시누이에게 생채기를 낼까 봐.


대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 침묵은 마치 내가 남편을 그리워해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듯 오해될 수 있었지만,

차라리 내가 볼모가 되는 편이 나았다.

나는 그런 미련한 사람이니까.


늦은 밤, 마지못해 나타난 남편은

더 마지못해 우리 둘을 차에 태워 오이도로 향했다.


술잔을 부딪힌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남편 앞에서

내가 술을 마시는 건 언제나 불편하다.

혹여 말이 새진 않을까,

혹여 흩트러지진 않을까,

긴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웃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우울했고,

너무 아팠고,

너무 슬퍼서

웃을 일이 없었다.


오늘만은,

그 오버스럽게 웃는 시누이의 웃음을 방패 삼아

나도 같이 웃고 싶었다.


나는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아니,

웃음을 강제로 빼앗긴 사람이다.


그 웃음을 되찾고 싶었다.

내 웃음을.

내 미소를.


오늘따라 오이도의 하늘에 뜬 달이

허옇고 흐릿하다.

거짓 웃음이 나를 어지럽힌다.

이러다 까딱하면

울음이 물밀듯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되뇐다.


울지 마, 바보야.

울음은 빼앗겨도, 웃음은 착취당하지 마.

지켜내.

웃음은 너의 것이니까.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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