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18화. 엉킨 실타래 속에서 숨 쉬는 법
2025년 6월, 이혼 소송 중인 남편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임시 조치가 끝나자 법원은 피해자 보호 명령의 연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에 수없이 연락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변호사는 말했다. "위협의 정황이 없었고, 경찰의 조치가 없었기에 법원이 연장을 인정하지 않은 거예요."
남편과 아이는 거실에서, 나는 안방에서 따로 생활한다. 2주가 지나도록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밥도 따로 먹는다. 하루 종일 거실에 드러누운 남편을 보면 숨이 막힌다. 마음 같아선 내가 집을 나가고 싶지만, 발달장애 아이를 데리고 환경을 바꾸는 건 쉽지 않고, 형편상 다른 집을 구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아이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싸우면 말하지 않는 거야. 네가 우리 셋이 억지로 함께 어울리길 원하면 엄마, 아빠는 또 싸우게 될 거야. 너도 울음을 멈추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엄마 아빠도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러던 오늘, 또 사달이 났다. 온도는 21도밖에 안 되는데 에어컨을 켜달란다. 25도쯤 되면 틀자고 했지만, 아이는 금세 아빠와 뒤엉켜 놀다 어울리자는 고집으로 변했다. 설거지를 하며 못 들은 척하자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질렀다. 아랫집까지 울릴 만큼. 여러 번 경고했고, "그만하지 않으면 핸드폰을 뺏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아 결국 핸드폰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더 거세게 소리를 지르고, 나를 때리고, 급기야 선풍기까지 부쉈다.
그 난리 속에서도 남편은 내게 외쳤다. "핸드폰 줘! 지금 당장 줘!"
내가 버티고 있다는 듯, 너의 고집이 더 문제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지쳐 핸드폰을 건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1년 넘게 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아이의 문제 행동을 조금씩 교정해 왔던 시간.
말로 감정을 표현하도록 가르쳤고, 발을 구르거나 소리 지르지 않도록, 엄마를 때리지 않도록 수없이 다독였다. 참을성도 생기고, 사과도 하고, 그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도 했다. 그런데 다시 혼란이 시작됐다. 아빠와 엄마가 한집에 있지만 말도 섞지 않는 이상한 분위기. 아이에게 이건 얼마나 큰 혼란일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폭행치사로 현장에서 구속되던 남편이 경찰에게 던졌던 말.
"왜 나만 잡아가요? 쟤도 같이 데려가야지."
그 말에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이에게 발달장애가 있어요. 밤에 혼자 두고 가야 합니까?"
그 남편은 피 흘리는 나를 가리키며 ‘혼자 자학한 거다’라고 말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법의 ‘포용’ 속에 다시 한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동안 힘겹게 안정을 찾아가던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위한다고 하하 호호 지낼 수 있을까?
더욱이 재판 한 번 열리지 않은 소송 중 상황에서 밥을 같이 먹고, 여느 부부처럼 지낸다면…
법원은 “이혼 의지가 없는 걸로 보인다”며 소송 자체를 취하할 수도 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왜 내 인생의 실타래는 이토록 엉켜있는 걸까.
30년 동안 숨 막히는 삶을 살아왔다.
숨을 쉬고 싶다. 그냥 숨만 쉬면서 살고 싶다.
지난주, 의사는 내게 약을 증량해 줬다.
나는 박살 난 선풍기처럼 무너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썼다.
이 따위 글이 뭐 대수냐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외면했던 과거의 나를 꺼내본다.
그저,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그게 가능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노력이라도 하고 싶다.
왜냐면… 이건 내 인생이니까.
싸움이 날 때마다 들었던 말.
"임신도 못 하는 병신 주제에."
그 아픔은, 아이를 낳고도 이어졌다.
"병신이 병신을 낳았네."
이 악담은 내 뇌리를 박살 냈지만, 나를 결국 일으킨 건 ‘찢어진 콧등’이었다.
몇 번이고 그랬지만, 그날은 달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6개월가량 누적된 회한이 그 순간 나를 각성시켰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말로 나는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을까.
이제는 말한다.
"아닌 건, 아니야."
나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럴 거야, 이럴 거야”
“그래도 나아지겠지”
그 모든 말은 나 혼자만의 희망적 망상이었다.
세상이 다 친절하지 않다는 걸 이제야, 나는 안다.
그래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이건 나의 무지였다.
내가 참아온 것, 내 선택이었다.
하…
폐가, 가슴이, 마음이… 저린다.
그저 건강하게 살고 싶다.
오래 살고 싶지도 않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저리지 않고, 평탄하게…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그런데 어쩌나, 오늘도 여전히… 숨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