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19-노을 속에 물든 다짐

불임 19화 - 지금은 오후 2시

by 나은

불임 19화 – 노을 속에 물든 다짐

내가 이 글을 쓰는 카페는 세 개의 존으로 나뉘어 있다.

창가 쪽은 럭셔리한 소파가 있어 웅장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로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그만큼 자신감을 드러내는 자리다.
가운데 존은 마치 식물원에 온 듯, 아름다운 화초들로 둘러싸여 있다. 강아지 동반이 가능한 공간으로, 이 카페의 대표 이미지와도 닮아 있다.
그리고 내가 앉아 있는 이 세 번째 존. 공부를 하거나 작업하기에 적당한, 조용하고 단출한 곳이다.
점포 중개를 하며 오가며 눈독 들이던 자리다. 이 자리를 운영하는 아들의 고집이 세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여사장님은 내 또래로, 우리 아이를 본 뒤 인간적인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
날짜 지난 베이커리를 두 봉지나 챙겨주셨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난 그걸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오후 두 시.
집에 들어가자니 숨이 막히고, 안 들어가자니 아이의 밥이 걱정된다.
아빠와 함께 있는 아이의 밥을 내가 걱정해야 하는 이 현실이... 정상일까?
아들에게 맞고 나면 드는 생각. 꼭 내가 키워야만 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
내가 부둥켜안고 사는 것이 정말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90kg가 넘는 아이에게, 60kg도 안 되는 내가 맞으며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모성애? 있다.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 지난 30년을 견뎠다.
그렇게 버텨 이룬 것이 무엇이었나.
아이도, 나도 지켜내지 못했고, 지금은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앞으로 잘 살아야 20년 남짓.
내 삶의 여건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저 이렇게 이번 생을 마무리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왜 나는 매일을 악다구니 써가며, 몸을 축내가며 버텨야 하나?

아이는 곧 졸업이다.
비록 자립까진 아니더라도, 일상의 독립은 이뤄져야 한다.
그걸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달려왔는데… 돌아온 남편은 아이를 씻기고, 떼를 받아주긴 해도
양육과 교육에선 완전히 손을 뗐다.
무미건조하게 하루를 거실에서 보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집에 들어서기도 숨이 막힌다.

좁은 아파트에서, 신고하지 않은 CD케이스 두 개를 버젓이 내놓고,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를 방치한 채
언제나 그랬듯 ‘모른다’고 한다.
규칙은 어기고, 책임은 지지 않고, 결국 그 뒷수습은 모두 내 몫이다.
단톡방에서, 이웃과의 일상에서 나는 언제나 총알받이였다.

아랫집 민원도, 여행 계획도, 추진도 모두 나.
정작 그는 불평만 늘어놓는다.
비판을 넘은, 30년 넘는 비난은 이제 더는 견디기 어렵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급히 베어 문 빵조각이
목에 턱, 막혔다.
허겁지겁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니, 몇 년 전 입원했던 일이 떠오른다.

작은언니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대장내시경을 받았다.
국가검진에 추가로 받은 검사였고, 남편은 정상.
나는 용종 세 개 중 하나가 유암종 의심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때도 그는 무관심했다.
"그까짓 거, 술 마셔서 그렇지."
"괜히 헛돈 썼네."
몸이 아프다 한들, 그의 머릿속엔 언제나 돈이 먼저였다.

결국 혼자 송도병원에 가 직장암 1기 판정을 받았다.
혼자 캐리어를 챙겨 금요일 아침에 입원했다.
아프진 않았지만… 너무 서러웠다.

언니 수술 땐 온 가족이 코로나를 무릅쓰고 함께였지만
나는 8인실 병실에서 커튼을 드리우고 혼자 누워 있었다.
옆 침상에선 어떤 여자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 좀 사 와줘."
나는 속으로 물었다.
‘어떻게 저런 전화를 할 수 있지?
어떻게 그걸 받아주는 남편이 있을까?’

사실, 나도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그렇게 간절했다.

왜일까.
동호대교를 건너며, 노을 진 한강을 보며 다짐했던 그날.
‘자신 있게, 내 인생을 살아보자.’
그 다짐은 아직 가슴속에 있는데,
결국 나는, 커피 한 잔조차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노을이 붉게 물든 그 하늘을 볼 때마다,
내 다짐도 함께 물들고 만다.

‘그냥 이대로 살아, 이게 너의 삶이야…’
노을은 그렇게, 내 일상과 감정을 잔인하게 다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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