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20-다시 과거로....

불임 20화. 무너진 나를 다시 걷는 중

by 나은

다시, 과거로…

이사한 집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도로도 가깝지 않은데, 마치 사람들의 소음마저 차단된 것처럼 적막했다.

공인중개사 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기가 한 번 다녀갔다.
그날, 오랜만에 밥이란 걸 먹었다.
소주 한 잔을 반주 삼아 들이키던 동기를 보니 괜히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나는 병원 일정을 앞두고 있어서 감히 입도 댈 수 없었다.

다음 날, 혼자 우두커니 앉아 아침을 맞고, 하릴없이 벽만 바라봤다.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아무도 없는, 아무 말도 없는 하루.

그 동네엔 대로변에 저렴한 헬스장이 있었다.
한 달에 3만 원도 안 되는 곳. 지금은 꽤 유명해진 트레이너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가끔 들르다 보면 트레이너들이 수시로 바뀌곤 했는데,
어느 날은 한 트레이너가 여자 회원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다정하게 스킨십을 하는 걸 봤다.
회원들이 샤워할 때 보일러 틀지 말라고 하던 그 트레이너는
한동안 TV에 나왔다가, 지금은 조용히 사라졌다.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곳에 있던 초보 트레이너 하나가 내게 유독 호의를 보였다.
회원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PT 등록도 하지 않았는데 식단까지 짜주겠다고 나섰다.
그 순진한 열정이 낯설었다.

늘 불공정했던 세상, 차가운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찾아온 친절은 오히려 불편했다.
심지어 “샤워하실 때 보일러는 제가 켜드릴게요”라며 웃는데,
그 말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가 바라는 건 PT일까?
생활비로 한 달에 고작 70만 원을 받던 시절이었다.
백종원의 ‘미정국수’ 멸치국수가 3,500원이었는데도
그걸 함부로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 정도로 궁핍했다.

마음이 지치니, 몸도 제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임신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다가
사람을 잃고, 세상을 잃고, 진심이라는 감정조차 잃어버렸다.

남은 건 습관처럼 떠오르는 의문뿐.
‘왜? 내가 뭘? 저 사람은 왜 나한테 친절하지?’
그리고 이어지는 체념.
‘그래서 뭐?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끝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오늘이 지나가길 바랐다.
하루가 가면 내일이 오고, 그다음은 병원에 가고,
그다음은 또...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남편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집, 윗집도 사람 사는 기척 하나 없었다.
그 집은, 그 동네는… 정적만이 나를 몰아세웠다.

그러다 문득 용기를 냈다.
다음 카페에 등산 동호회 두 군데를 가입했다.
하나는 230대, 다른 하나는 340대 대상의 모임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처음 간 산은 청계산이었다.
정상도 가기 전에 숨이 턱 막히고, 죽을 것 같았다.
쏟아지는 땀이 바람에 씻기듯 식을 때,
그 순간만큼은 살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혼자였고, 누구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쏟아지는 땀줄기가 마치 내 고통 같았다.
삼악산에 올랐을 땐 처음으로 자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괴로움에 눌려 있었던 내 눈에,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나 혼자 살아왔던 세상이 잿빛이었다면,
산에서 만난 자연은 따뜻한 빛이었다.
햇살, 그 눈부신 따스함에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살 것 같았다. 조금씩.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집인데, 왜 없어?”

… 왜?

왜 집에 온 걸까?

그 순간, 등산도, 하늘도, 바람도
모두 의미가 사라졌다.

훈련된 개처럼, 귀소본능처럼,
나는 자동으로 집으로 향했다.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나는 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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