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21화. 감정이 죽어버린 걸까?
어느 날부터 남편의 전화가 잦아졌다.
“머그컵 사달라고 했었지? 무슨 색으로 살까?”
전엔 한참 말을 끊고 살던 사람이었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내 말에 또다시 침묵.
그러다 또,
“이제 퇴근하려고…”
연락이 끊겼던 사람이 어색하게 일상의 말을 꺼낸다.
혼자 하루 한 끼로 겨우 끼니를 때우던 내 일상이
이제는 ‘귀찮음’으로 바뀌어버린다.
“오늘은 저녁 집에서 먹을 거야?”
무심히 던진 내 질문에
“어… 좀 물어보고…”
누구에게? 뭘? 왜 물어봐야 하지?
몰라도 된다.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또,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어느 날은 연락도 없이 밖에서 먹고 오고,
또 어느 날은 밤 9시에 와선 밥부터 찾는다.
그런데도, 난 내색하지 않는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꼬박꼬박 집으로 들어오는 그의 발걸음이 불편할 뿐이다.
특히나 그날이 떠오를 때면.
거실에서, 울부짖으며 피를 닦던 그날이.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채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들자 코끝에 스민 피냄새가 날 때…
시험관 시술이 또 실패하고,
당분간 병원 일정이 없던 날.
소주 한 병을 사다 혼자 마시고 있었는데,
예고 없이 그가 찾아왔다.
한 병도 채 비우기 전이었지만,
설움이 몰려오고, 눈물이 맺히고,
몇 마디 말을 꺼낸 순간,
가차 없는 주먹이 날아들었다.
입술이 터지고, 머리가 찢기고,
목울대가 욱신거렸다.
피는 마룻바닥을 타고 흘렀고,
거실 전체가 흡사 살인 현장처럼 보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하단 말 하려나…’
그래도 사람이라면,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기대하며 전화를 받았다.
“야, 오전에 소파 배달될 거니까 도착하면 전화해.”
... 뭐?
소파?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 그럴 리 없지.
너한테 양심이란 게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짓도 못 했겠지.’
속에서 끓어오른 말은,
결국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했다.
나는 그저 말했다.
“알았어.”
그리고, 뚝.
멍한 상태로 일어섰다.
소파가 오기 전에 핏자국을 지워야 했다.
걸레를 들고, 마룻바닥에 얼룩처럼 남은 피를 닦기 시작했다.
밤새 굳은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여러 번 닦고, 다시 문지르고, 또 닦고…
소파가 도착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었다.
밝게 웃는 배달기사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리고 소파를 받아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문이 닫히고 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제 나는 감정이 없는 건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대하는 내가… 무섭다.
나는 생각이 없는 걸까?
감정이 죽어버린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까?
너, 사람 맞니?
정말…
나, 사람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