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24-문이 열리는 순간

불임 24화. 그녀가 온다...

by 나은



병원에서의 시간은 길고 지루했다.

보호자용 간이의자에 웅크려 자는 것도,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몸도 마음도 텅 빈 상태였다.


남편은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해지자,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사소한 심부름을 시켰다.

알면서도 모른 척.

나는 그저 묵묵히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저녁에 거래처 직원이 면회 오기로 했어.”


이미 몇 팀이 다녀간 적도 있었기에

별 일 아니라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번 말에는 어딘가 낯선 ‘의도’가 엿보였다.

그는 괜히 덧붙였다.


“집에 다녀와. 문도 좀 확인하고, 볼일 있으면 보고.”


아, 이건 나를 내보내고 싶다는 말이구나.

순간, 누군지 떠올랐다.

그동안의 조각들이 연결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냐. 볼 일 없어. 그냥 있을게.”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 앞에 서서

조금은 신경 써서 얼굴에 색을 더했다.

기다릴 준비였다.


기다리는 동안, 그의 말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걔가 얼마나 순진한 줄 알아?

누가 손이라도 스치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티슈로 닦고 난리래.

남자를 몰라, 진짜 몰라.”


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거 너무 과한 거 아냐?


보통 그런 행동은 내숭 많은 사람들한테서 많이 나오던데.”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걔 주변 친구들도 다 그래.

대표도 그렇고... 너무 순진해서

남자를 아예 모른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미

그의 말투엔 묘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신경 쓸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꾸 말을 늘어놓는 걸까.

의도적으로 나에게 정당성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순진해서 어쩌다가 엮였을 뿐’이라는 알리바이.


하지만... 순진한 여자가

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 병원까지 찾아오는 건

결코 순수함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다.

혹은...

진짜 순진한 대신

그만큼 호기심이 많아서인지도 모르지.


그래, 그럴 수 있어.

나를 궁금해했겠지.

어떤 여자가 그의 아내인지,

어떤 여자가 자기와 공유한 남자의 진짜 ‘처’인지.


그래, 나도 한번 보자.

그 얼굴.

그 상판대기를.


남자들은 순진하다고 부르지만

내 눈엔,

그건 가식이고 계산으로 보인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병실에 있는 거 알아? 그 사람?”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냥 오라고 했어. 뭐 어때.”


... 참.

이게 부부 사이 맞나?

서로 정체를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게

참으로 기이하다.


나는, 그렇다 쳐도.

남편은

내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누구 얘기하는 거야? 누군지 알아?’라고 되물어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받아넘긴다.


이건 순수함이 아니다.

이건... 교활함이다.

이런들 저런들,

결국 너희는

저질이다.


그 모든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닐 즈음,

그 시간이 되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내가 긴장하고 있나?

아니야. 그냥...

몸이 반응하는 거야.


그리고


병실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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