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30화. 두 얼굴의 진심
두 얼굴의 진실
거의 처음이었다.
감정을 꺼내 표현한 그의 말.
“임신돼서 너무 기쁘다. 너무 행복하다. 우리 앞으로 좋은 일만 있고, 더 사랑하며 살자.”
내게 속삭이던 그 사람이—
바로 그 순간, 손가락으로는 전혀 다른 말을 쓰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커다란 메일이었다.
그 안에는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널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야. 너와 나의 마음을 담은 반지 맞추자.”
심장이 얼어붙었다.
와... 정말 기가 막혔다.
방금 전 내게 사랑을 속삭이던 입술과, 동시에 다른 여자를 향해 진심을 고백하던 손가락.
그 여자는—
우리가 함께 병원을 찾았던 바로 그 '그녀'였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두 마음이 가능하지?
어떻게 같은 순간,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거야?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자발적으로 저토록 철저한 이중성을 보여줄 수 있지?
차라리 말하지 말지.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내 귀는 또 얼마나 간절히 열려 있었는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임신의 기쁨만 붙들고 있었을 테니까.
잔인하다.
정말… 잔인해.
폭발하는 절규
내가 묻기라도 했나?
“기분이 어때?” “행복하냐?”
그런 말 한마디라도 한 적 있었나?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열 번째 시험관 끝에 찾아온 기적이었다.
그 기쁨 하나로 충분했다.
그녀와의 일이 있었건, 무슨 짓을 했건—
나는 입 닫고, 눈 감고, 마음 접었다.
그냥… 지켜내고 싶었으니까.
내 아이, 내 몸, 이 가족.
그런데 왜.
누가 표현하라 했냐고!
왜 스스로 나를 건드리는 거야.
가만히 있는 날 왜 또 깨우냐고!
왜 또 상처를 내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불임이라서?
그래서 꾹 참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끙끙 앓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다 왔잖아.
조금만 더 버티면, 예쁜 아기 만날 수 있었잖아.
근데 왜.
왜 하필 지금, 왜 또 나야?
또 다른 배신, 그리고 무기력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에게 메일을 썼다는 사실보다
방금 내게 “행복하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이,
차라리 더 믿기지 않았다.
불과 1분 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았는데.
지금은,
가장 비참한 사람이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분노? 환멸? 아니,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끓어올랐다.
그런데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이 내 이성을 붙잡았다.
‘참자.
별일 아니야.
아니야… 아닐 수도 있어…’
너무 아팠다.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머리가, 가슴이, 영혼이 찢어지는 듯했다.
순간,
나는 오른손으로 내 뺨을 세게 갈겼다.
팟!
이성의 끈이 뇌리에 다시 탁 붙었다.
거짓을 덮으려는 그의 손을 뿌리치다 몸싸움이 났고,
그 와중에 또 하나의 메일이 스쳤다.
“당신은 날 가지고 논 거였어. 당신은 진심이라곤 없어.”
… 뭐?
내가 더 화가 난 건 뭘까?
진심도 없이,
놀이처럼,
장난처럼—
그따위 감정놀음을 하면서도
자기 연애라도 되는 양, 진지한 척했다는 사실.
역겨웠다.
진심이라면,
나는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면,
그래도 인간답게, 책임감 있게 행동하길 바랐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놀고, 놀아나고, 갖고 놀다가 끝.
그게 전부였다.
선택의 기로
나머지 메일도 보고 싶은 마음,
그냥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 허둥대던 그가
컴퓨터를 황급히 꺼버렸다.
그 모습마저 보기 싫었다.
이제 와서 뭘 덮겠다는 건가.
벌써 다 봤는데.
밀고 밀치는 사이,
순간 몸이 부딪혔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나를 세게 밀쳤겠지만,
이제는—
임산부라는 의식이 그를 살짝 멈추게 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의식은 남아 있나 보지.
뻘게진 뺨을 어루만질 틈도 없이,
나는 거실로 걸어 나왔다.
한 손은 배를 감싸고,
한 손은 소파 등받이를 꽉 쥐고.
이 상황에서 누가 씩씩거려야 하지?
지금 이게 누구 감정이 폭발한 상황인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지. 역시 그렇지.
인생에 하나라도 평탄한 게 없지.
이제 나는… 어쩌지?”
분노가 차갑게 식는다.
이젠 화도 안 난다.
짜증만 난다.
모든 게, 그냥 짜증 난다.
짜증 위에 또 짜증이 쌓인다.
그리고—
그 감정은 아무 데도 쏟아낼 곳이 없다.
왜 하필 오늘.
왜, 왜, 왜….
당신이라는 인간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