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31 - 또다시 지옥을 걷다

그 후, 남편의 전화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by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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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남편의 전화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마음 같아선, 다 모든 걸 끄집어내어 게워내고 싶었다.

변기를 잡고 흐느끼던 폭음한 다음 날처럼, 장기가 빠질 듯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이 불결한 감정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런 후엔... 그게 남는다. 그러고 나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갖고 싶었던, 가질 수 없어 그렇게 애가 닳았던 것을 이제 겨우 막 가졌는데, 채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가질 수 없어 온통 어둠이었던 곳을 이제 막 안개를 걷고 나오려던 참에 또 다른 막에 갇혔다.


삶이 이렇게까지 잔인해도 되나 싶을 만큼 내 삶은 구렁텅이를 맴돌았다. 임신 성공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던 병원에서의 냉정함, 놓지 않으려 애썼던 혼자 곱씹은 이성의 끈, 벼랑 끝에 매달려 겨우겨우 잡았던 지푸라기가 툭 하고 끊어졌다.


나는 전속력으로 추락한다.

빛의 속도로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고꾸라진다.

너무 빨라 쾅하고 부딪히는 순간, 너무 멍해서 아픈지도 모르겠다.


“이게 뭐야, 왜 이래. 어떻게 나한테만 이럴 수 있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삶은 왜 이렇게 계속 나락으로 추락하는 거야?”




누가 좀 대답해 줘.

누가 좀 날 붙잡아줘.

나, 이렇게 끝내야 하나.

내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이제 막 여울을 맺기 시작한 그 생명을 없애야 할까?

이대로 유지해 간다면 우리 사이엔 과연 희망이 있을까?

관계 유지를 위해 원했던 임신이 오히려 내 인생을 옥죄고 있다.


관계가 파탄 난 지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편은 말했다.


“당분간, 임신했다고 식구들한테 말하지 말자.”


왜냐고 묻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숨길 수 없는 일이니.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마치 어떤 전율처럼.

갑자기 후끈하게 달아오른다.


혹시, 스트레스를 주면 내가 미쳐 날뛰다 아이가 떨어지길 바랐던 걸까?

입에 담기도 끔찍한 의심이 머리를 스친다.


더 끔찍한 건, 그는 아무 항변도 하지 않았다.


“장난이었다.”


“요조숙녀인 척하길래 한번 건드려봤다.”


“그게 다였다.”


나는 어떤 관계였는지 묻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왜 하필 그 타이밍이었는지.

왜 하필 그때 그 짓을 했는지.


결혼이라는 건 결코 가벼운 관계가 아니다.

이 관계엔 시간, 신뢰, 가족이 얽혀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걸.

혼자 살았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나는 어떤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지워버리고, 혼자 서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아니, 오히려 그 선택이 평생 회한으로 남아 나를 좀먹지는 않을까?


임신을 바라던 내가, 막 얻은 그것을 두고 차마 눈을 감아버릴 수도 없다.


그런데 또 마주 앉아 그 추잡한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다.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

감정이 없었다는 것,

장난이었다는 것.


그게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든다.

감정 없이 울타리를 넘고,

책임도 지지 않으며,

남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나이에 방탕한 놀이를 즐긴다는 것.


제발, 그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더라도, 세상이 대신 물어주기를.

그래야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 장난질은 내 머릿속에서 비듬처럼 떨어져 나간다.


더는 없다.


다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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