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32 - 기다렸지만 기쁘지 않았다

기다렸지만, 기쁘지 않았다

by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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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나갔다.

쭈욱 쭉... 쉬지 않고 지나갔다.


그토록 앉아있고 싶었던 산부인과 의자에 기대어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앉아 있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는데, 현재는 글쎄다.


불임센터와 산부인과가 같이 있다 보니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임산부들.

그들이 데려오는 자녀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렸다.


‘아니 왜 불임센터에 아이를 데리고 오고 난리야. 불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해?’


삐뚤어진 생각이 올라오고,


‘저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는 얼마나 행복할까, 몇 번만에 성공했을까? 아무리 많아도 나만큼은 아니겠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나도 곧, 언젠가는 저 대기석에 앉게 되리라. 꼭…’


한 가지에 몰두하면 사람은 판단력이 흐려진다.

너무나 간절했던 임신 테스트기를 용기 없어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지금 임신한 상태인데도 테스트기를 사러 약국에 들른다.

약사는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테스트기를 들고 나와 집 화장실로 향한다.


당연히 두 줄.


알고 있었던 결과, 의미 없는 행동인데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2줄을 보면서 기쁘지 않았다.


너무나 선명한 그 2줄을 보노라니 ‘인생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보려고 그토록 애썼는데…

이루고 난 지금 나는 왜 이렇게 기쁘지 않은 걸까.


모르게 우울증이 날 몰고 간다.

원하는 것을 쟁취했지만 벅차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이게 뭐야, 이걸 위해 그토록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나…’


감정의 실체가 뭔지, 이게 우울증 인지도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히 우울증이었다.

그 우울은 투자한 시간보다도 깊고 짙어서 지금까지 나를 좀먹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누구도 알지 못하게…


굳이 감추지 않아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우울. 단지 나만 알 듯 말 듯한 그 무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

특히 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인고의 세월이다.


몸부림치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

그 삶 속에 다시 갇힌다.


임신 내내 우울했던 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속앓이 했고,

그 시간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비탄과 공허함의 연속이었다.


혼자 있을 땐 멍하니 벽을 바라봤고, 먹고 싶지도,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곁에 있으면 호들갑스럽게 임산부처럼 행동했다.


명절날 시댁에 처음 가는 날, 허기도 없는데 시어머니께 “어머니, 배고파요”라고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허겁지겁, 죽을 만큼 맛있는 듯 먹어댔다.


천천히 먹으라는 말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다 맛있어요. 먹어도 자꾸 배가 고픈 거 있죠”라는 오버.


나는 먹지 않았다.

그리고 체했다.

게워내고 싶고, 속에서 무언가 솟구친다.

목에 이물질이 차오르고, 배 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응어리가 꿈틀거린다.


그 응어리를 애써 깨부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내 일부처럼.



미안하다.

너무 먹지 않아 발육이 더딘 건 아닐까, 움직이지 않는 태아에게 미안하다.


오렌지 주스 하나가 유일한 식사였다.

당분이 나와 태아를 지탱해 준다.

이러다 잘못되면 어쩌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 정신이 온전치 않다. 그저 세월만 흘려보낸다. 되겠지. 가겠지.


숨 쉬기가 점점 버거워진다.





친정집에 가도 마찬가지.

임신 소식을 늦게 전해 미안하고, 부모님과 언니는 잘 챙겨준다.


작은 언니가 새언니와 함께 임신복을 사주겠다고 했다.

넷이서 옷가게에 갔다.

선택의 폭도 좁고, 마음도 붕 떠 있으니 옷이고 뭐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날 입고 나간 반바지가 몸에 딱 달라붙는다.

낙낙한 옷 하나 없다.

새언니가 옷을 골라주고, 마음은 고마운데 입을 만한 옷 하나 없는 현실이 부끄럽다.


그 꼴을 보고 작은언니가 대화를 나눴는지, 나를 끌고 다시 옷가게에 간다.


그러다 남편이 말한다.


“여기 뭐 이렇게 옷이 후졌어? 다 구질구질하네.”


참, 물색없는 인간이다.


“그냥 대충 사. 서울 가서 내가 제대로 사줄게.” 생색이다.


속으로 말한다.


‘네가? 언제? 돈에 벌벌 떠는 네가?’

그러나 입 밖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참 편하게 산다.

나는 입 밖에 내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은 남편이 나를 위하는 줄 안다.


그렇게 쇼윈도만 반짝인다.

아니다.

변명하기도, 본질을 끄집어내기도 귀찮다.


이제는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살아간다.

‘이게 뭐가 중요해?’


그렇다.

나는 그냥 지나간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말한다.


‘지금까지 옷 한 벌 안 사줬으면서 이제 와서 생색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친정은 표현하지 않는다.

못 들은 척, 그럴 수도 있겠다며 넘긴다.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에겐 주변에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본인이 꼬인 만큼 꼬인 사람은 없다. 그게 부럽다.


나도 나의 본질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외롭진 않을 텐데…


삶은 확실히 불공평하다. 누구에게는 관대하고, 누구에게는 너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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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나는 지금, 내 손 안의 키를 바라보고 있다.


꽉 쥐지도 않았고, 놓지도 않았던 그 키를.


이제는 안다.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걸.


끝이라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나는 방향을 바꾼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흔들리더라도,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간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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