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34. 2025년 6월, NO3

끝없는 인내와 고통 속에서

by 나은


바쁘지만 한가하고, 한가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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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명령 연장이 취소된 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전처럼 거실에 드러누워 있다.

그 꼴을 보면 숨이 막히고, 목소리라도 들리면 소름이 돋는다.


보지 않으려, 듣지 않으려 애쓴다.

과호흡이 몰려오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혼란에 빠진 아이



아이도 혼란스럽다.

예전처럼 함께 놀자고 부르지만, 응하지 못하는 내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수없이 설명했다.

엄마, 아빠는 싸워서 예전처럼 지낼 수 없어

하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아 한다.


결국 감정이 폭발하면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문제 행동을 보인다.

지난주엔 손바닥으로 내 등짝을 내리쳤다.

90kg이 넘는 몸이 휘청거렸고, 팔뚝엔 퍼런 멍이 올랐다.





돌아갈 수 없는 거리


떨어져 있던 아빠를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

가족으로 지내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를까.

그 마음은 천만 번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돌아갈 마음도 없다.


거실에 자리 잡고 드러누운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삶의 방향도, 의지도 모두 잃었다.


삶에 지치면 잠깐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삶은 고무줄처럼 다시 당겨야 하는 것 아닌가.

뚝 끊겨 늘어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기다림의 끝


30년을 기다리며 이해해보려 했다.

억눌린 자아, 성장기의 트라우마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성녀가 아니다.


나이 오십을 넘어,

단돈 5천 원에 벌벌 떠는 남편과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1년 넘게 떨어져 지내며 기다렸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사람과 아이의 부모로 나란히 선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숨 막히는 공간


이 집은 나 홀로 아파트, 20 가구도 안 되는 작은 빌라 같다.

CCTV는 곳곳에 달렸고, 단톡방에는

“CD케이스, 우산을 치우라”는 공지가 붙는다.

숨이 막힌다.


분리수거 하나 제대로 안 하고 던져놓으면 뒷수습은 내 몫이다.

이번엔 그냥 두었다.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봤을 텐데도 치울 기미가 없다.


어제는 고장 난 선풍기까지 버렸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냥 좀 있으면 안 되나. 누가 치우라고 했나.





끝없는 반복


식탁 뒤 중문은 바람길을 만들기도, 막기도 한다.

나는 거실 에어컨을 끄면 바람이 일직선으로 들어오게 중문을 돌려놓는다.

하지만 돌아서면 여지없이 그의 고집대로 되돌아가 있다.


아이 피부를 위해, 쾌적하게 지내기 위해

그렇게 하는데도 아무 의미 없다.


왜 바뀔 거라 생각했을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 착각한 걸까.

왜 참고 넘기면 해결될 거라 믿었을까.


아이를 위해 이해했던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병들게 했다.

무수히 참고 넘겼던 일들이 화병이 되어 돌아왔다.





점점 사라지는 나


감정 없는 기계처럼, 무관심과 무대응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따뜻했던 나는 사라졌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뭐가 저렇게 힘들까.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나.”


내 상황이 극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큼 힘든 사람 많다.

다만, 큰 일을 여러 번 겪다 보니 달관해 버린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겪는 일, 내가 사는 환경을.

나조차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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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기다림


1년 가까이 재판 한 번 열리지 않았다.

내년 4월이면 전세가 만기다.

재판이 열려도 최소 6개월은 걸린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만 아니면, 어디서든 그때그때 대응하며 살겠는데

발달장애 아이가 있기에 선택지가 없다.


그것이 가장 답답하다.



다시, 다독이며


스트레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그 해소로 폭식과 쇼핑이 이어진다고 한다.

나 역시 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삶.


그러나 내게는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더 괜찮아질 거야.


오늘도 터져 나오는 과호흡을 다독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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