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한 해의 끝자락에서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며칠만 더 지나면 해가 바뀐다.
거리에는 옷깃을 세우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감싼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간으로 서둘러 간다.
그들에게 한겨울의 추위 따위는 없다.
함께라는 온기가 그들을 감싸고 있으니까.
조용한 결실
TV 속 시상식은 요란하다.
누군가에게는 친절한 평가,
누군가에게는 낙오의 좌절.
나도 이제 결실을 내보인다.
결실이라 하기엔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나의 애씀.
그저 부끄럽다.
몇 번이나 고민 끝에 장만한
출산 준비물.
이제 겨우 15일이 남았다.
배는 자그마한 둔턱 같다.
“작게 낳아 크게 키우는 게 낫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나는 그저 모든 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출산을 준비하며
그나마 마음이 조금 고르고
생활에 여유가 생긴 건 다행이다.
새벽에 일어나 산후조리원 번호표를 받고,
출산 준비물 가방을 챙겨두었다.
준비는 끝났다.
남편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라면
당시 250만 원 하던
차병원 산후조리원 비용을 지원해 준 것.
아침마다 의사가 회진을 돈다니
산모와 아기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검사와 불안
산전 검사 중엔 기형아 검사가 있다.
36세, 고령 임산부였던 나.
병원에서는 검사를 권했다.
비용도 비쌌지만
태아를 바늘로 찌르는 검사라
찬반이 팽팽했다.
남편과 나는
“별일 있겠나” 싶어 그냥 넘어갔다.
병원에서도
“50% 미만의 확률,
절반은 정상”이라 했다.
양쪽 집안에 이상이 없었기에
생각조차… 아니, 하지 않으려 했다.
내 인생에 장애라니,
그건 상상조차 안 했다.
뜻밖의 신호
연말이라 남편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서너 잔이었지만
술에 약한 그는 꿀물에다 이것저것
요청만 많아졌다.
그때, 배가 묘하게 아팠다.
쏴아— 차가운 냉기와 함께
화장실로 달려갔다.
댐이 터진 듯 물이 쏟아졌다.
영 이상했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숙취에 찌든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설마 하며 잠을 청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본능이 지켜낸 생명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말했다.
간호사는 “당장 오세요.”
남편에게 전하자
“병원은 다 호들갑이야. 무시해.”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께름칙했다.
출산 준비물을 챙겨 오라 했지만
몸부터 움직이기로 했다.
남편을 설득해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곧 입원하란다.
곧 출산이 될 조짐이라고 했다.
남편 말 들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어느 것 하나 도움이 안 된다.
그저 나의 촉각, 나의 모성 본능이
나를 지켜주었다.
새로운 시작
이제 출산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그 순간.
한 해의 끝,
그리고 내 아이와 함께 맞이할 새로운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