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38 - 출산, 기쁨과 회한이 교차한

생명의 탄생, 그 고결함...

by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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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밤에 입원을 했다.

간호사가 분주히 오가며 촉진을 반복했다.

혹시나 몰라 들른 병원이었는데

급작스러운 출산을 앞두고 마음은 심란했다.


구토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하고

급한 대로 침대에서 토했다.

먹은 게 없는데도 냄새는 역했다.

마치 내 복잡한 마음을 가볍게 진동하는 듯.


토를 치우고 싶었지만

링거를 꽂은 팔과 촉진을 재촉하는 간호사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술에 취한 건지, 돌변하는 상황에 몽롱한 건지,

늘어진 남편은 “그냥 둬, 병원에서 알아서 치우겠지”라며

외면했다.


계속 올라오는 역함에 화가 치밀어

“빨리 좀 치워, 제발 말 좀 들어”라며 소리쳤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나’

잠시 스쳤지만,

‘하필 이 날 술에 취해… 참 안 맞아’라는 회한이 더 컸다.





홀로 버티는 시간


마지못해 뒷정리를 한 남편은

“시간이 걸릴 테니 출산 준비물을 챙기러 다녀오겠다”

말을 남기고 나섰다.


또 혼자였다.


인터넷으로 독학한 호흡법을 떠올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찌르르하는 통증은

아프다기보다 낯설었다.

가라앉는가 싶으면 또 돌풍처럼

통증이 덮쳤다.





낯선 시선


새벽, 실습생 한 무리가 들어왔다.

귀가 유난히 큰 학생을 선두로 6~7명.


나는 ‘임산부 인권은 없는 건가?

모두 이런 일을 겪는 걸까?’

생각만 하며

통증을 삼켰다.


생각보다 더 아팠고,

또 생각보다 덜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주라는데

힘이 나지 않았다.

조금 더 열려야 한다는 말만

수차례 되풀이되었다.




출산의 순간


정말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순간,

간호사를 불러 분만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는 낭패였다.

지치고 지쳐 더는 힘이 나오지 않았다.


“힘을 주다 말면 아이가 걸린다,

아이가 숨을 쉴 수 없다.”

협박 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뚫어뻥 같은 기구로

아이의 머리를 흡입해 꺼내기 시작했다.

숭고하고 처연할 것 같던

생명의 탄생 순간, 뚫어뻥이라니…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온몸의 신경이 경련을 일으켜

마음까지 흔들렸다.




투명한 공허


눈도 못 뜨는 아이를

내 팔에 걸쳤다.

분만실은 분주했다.


“나은 씨 부모님도 이 고생 다해

나은 씨를 낳았어요.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부원장은 툭 내뱉고는

분만실을 떠났다.


감동이 벅차올라야 하는데

나는 식은땀과 경련 속에서

팔에 힘이 빠지고

아이를 감싸던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야.

아이에게 내 온기를 전달해야 해.

넌 엄마야…’


수없이 되뇌었지만

떨려오는 몸은 막을 수 없었다.


“아이 좀 받아주세요.

떨어질 것 같아요…”


다급한 내 말에

간호사의 눈빛엔

‘애를 넘기려는 산모라니’

하는 기색이 스쳤다.





희미한 다짐


회복실로 옮겨졌다.

잠깐 스친 남편이

“평생 너만 사랑할게, 영원히…”

라고 말했다.


말은 멋있었지만

감정의 온도는 미지근했다.


갈증이 밀려왔다.

간호사는 오지 않았다.

남편도 보이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옆자리 산모의 남편에게

“죄송한데… 물 좀…”

하고 속삭였다.


그 산모는 측은한 눈빛으로

“미지근하게 해서 갖다 줘”라고 말했다.


그 물을 벌컥 들이켰다.

갈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한 해의 끝에서


12시간 진통 끝에

3.27kg의 아이를 낳았다.


15일 일찍,

그리고 한 해의 끝자락에 태어난 아이.


며칠 사이 한 살을 더 먹어

태어나자마자 두 살이 된 아이.

아이의 삶이

남들보다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예약한 산후조리원이 없어

차병원 특실에 머물렀다.


메마른 난방, 서걱거리는 침대,

전통적 산후 정서 대신

낯선 공허함.


거울 속 나는 낯설었다.

그러나 고통이 온갖 불순물을 토해낸 듯,

얼굴빛은 투명하고 처연했다.


‘다시 시작이야.

나쁜 기억은 다 지워졌어.

제대로 된 인생을, 행복을 살아보는 거야.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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