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51화. 건강검진

소제목 – 대장 내시경

by 나은




직장암 진단을 받고 올해로 4년째다.

건강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정신적 멘털은 무너져 내렸다.

집 안에 갇혀 지내며 가슴을 옥죄는 답답함 속에서 깊은 한숨이 끊이지 않았고, 폐와 장기가 요동치는 듯한 불안에 하루하루 안절부절못했다.


밤이면 숨이 막혀 잠이 오지 않았다.
이유 모를 통증이 몸을 짓누르고, 억눌린 마음은 가시처럼 아파왔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뛰쳐나가던 순간이 수차례.

갱년기 증상 같기도 했지만,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막연한 불안이 나를 끝없이 옥죄었다.

금세라도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두려움에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디 갈 수도, 불러주는 곳도 없던 시절.

나는 아파트 1층 간이 놀이터로 내려가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으로 불안과 공포를 달래려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도산공원까지 걸었다.

늦은 밤, 홀로 걷는 길이 무서울 만도 했으나 내 안의 불안이 더 무서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을 걸어야 머릿속이 비워졌다.

자동차 불빛에 비친 내 그림자가 유난히 서글펐다.


도산공원엔 사람 반, 애견 반이었다.
한 사람이 네댓 마리의 개를 끌고 공원을 도는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 개들은 무슨 복을 타고나서 저리 귀히 여겨질까? 왜 나는 그들을 부러워해야 할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개를 부러워하다니. 그만큼 내 정신은 마비돼 있었다.


강박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집을 나서며 분명 가스불과 전자기기를 확인했는데, 현관문을 닫는 순간 ‘정말 껐나?’ 하는 불신이 밀려왔다. 스스로를 달래다가도, ‘혹시 켜둔 채라면? 너 혼자만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피해를 준다면?’ 하는 자책이 이어졌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불안과 공포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그 무렵, 작은 언니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누구보다 건전하게 살아온 언니였다.

그런 언니에게 ‘암’이라는 단어가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것이다.

처음엔 2기라는 말에 안도했지만, 정밀검사 결과는 4기였다.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막내라며 늘 언니, 오빠에게 큰소리치던 내가, 감히 붙잡을 수도 없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이동하는 차 안, 조카의 입에서 흘러나온 “4기”라는 말. 나는 울부짖듯 소리쳤다.
“넌, 여태까지 뭐 했냐! 몸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뭘 했냐!”


운전하는 형부는 침묵했고, 조카는 눈물을 훔치며 휴지를 건넸다.

그 순간 내 아이만이 다가와 말했다.
“엄마, 엄마 왜 울어? 울지 마.”
작은 손으로 날 안아주는데, 나는 그마저도 추태처럼 느껴졌다.

당사자인 언니는 “아유, 유난 떤다”며 웃어넘겼고, 부녀지간엔 허공을 가르는 한숨만 흘렀다.


점심 식사로 장어를 먹으러 갔다.
내일 수술을 앞둔 언니를 위해서였다.

아이는 눈치껏 허기를 참아내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장어를 맛있게 삼켰다.

공깃밥 추가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괜한 심술을 부렸다.
“더 먹고 싶으면 네가 직접 불러서 말해.”
아이의 떼가 사라진 자리에, 낯선 음식이 허기를 채워주었다.


식사 후 헤어핀 가게에 들러 쇼핑을 했다.
언니와 나, 조카는 잠시나마 웃었다.

하지만 그 일상의 조각이 다시 누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장면이 꿈결 같았다.


형부는 호텔을 잡고 “같이 자고 가라”라고 권했다.
아침에 함께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자고 가야겠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굳이 그렇게 해야 하냐며 되물었다.

“나도 힘든 거 알잖아”

그 뻔뻔스러운 소리에 더 이상 설명할 힘조차 없었다.


며칠 전, 언니가 검사를 위해 다시 올라오기로 한 날.
남편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의 안부를 묻는 줄 알았는데, 목소리는 불안정했다.
“내가… 사진을 찍다 걸려서 경찰서에 가고 있어.”


순간, 온몸의 피가 식었다.
헬스장에서 여자의 사진을 몰래 찍다 신고를 당했다는 말.

놀랍고 황당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

끝없이 반복된 변태적 행각이 드디어 경찰서까지 끌고 간 것이다.


나는 분노와 체념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제발, 이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이의 얼굴과 겹쳐지지 않기를.

경찰차에 탄 남편 대신, 아이의 미래가 오염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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