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라는 숨구멍
남편은 불시에 감정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여전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너, 돈 때문에 이혼하는 거잖아. 재산분할 노리는 거잖아.”
“야, 주변 봐. 너만큼 사는 사람 몇이나 되는 줄 알아?”
정말, 말문이 막힌다.
집 한 채 없이 전셋집 전전하고, 생활비는 고작 100만 원.
외식이라도 하려면 나한테 떠넘기고, 옷 한 벌 사려 해도 굽신거려야 했던 세월.
심지어 절반은 내가 부담했다.
30년을 함께 살며 내가 가진 건,
아웃렛에서 산 250만 원짜리 구찌 가방 하나,
동대문에서 건진 200만 원대 밍크코트 한 벌,
10년 전 자라 세일 때 사준 재킷 3벌.
그걸 그는 평생 입에 올리며 산다.
결혼 기간 동안 1박 2일 여행 단 한 번.
그마저도 회비만 들고, 단 돈 만 원도 여윳돈 없이 눈치만 보다 다녀왔다.
동창회? 밤 외출?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일을 시작하며 벌자마자 생활비에 다 쏟아부었다.
그러자 그는 손을 놓았다.
생활의 모든 부담이 나에게 왔다.
몇 천 원 하는 욕실 부품도 내가 사기 전까진 고치지 않았다.
아이 세뱃돈을 가져가고, 휴게소 커피 한 잔에도 욕을 했다.
재난지원금도, 내 앞으로 나온 보험금도 모두 그가 가져갔다.
그랬던 사람이,
‘너만큼 풍족하게 산 사람 없다’고 한다.
대체, 이런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엄마의 인생관,
“좋은 게 좋은 거다”
그 말을 따라 참고 넘기며 살아온 결과가 지금 이 지옥이다.
그때 싸웠다면 나았을까? 아니다.
참는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말한다.
“넌 단 한 번도 날 인정한 적 없어. 바락바락 대들기만 했잖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작년 6월 그 싸움 하나로 이혼까지 갈 일인가?”
기억이 떠오른다.
여자 팔꿈치로 스치듯 가슴을 만지던 버릇,
여자 팬티를 모아 숨겨두던 습관.
그리고 나를 향해 내뱉던 잔인한 말들.
“임신도 못하는 병신이”
“병신이 병신을 낳았네”
그런데 지금 그는 태연히 묻는다.
"내가 뭘 잘못했냐"
그리고 덧붙인다.
“그렇게 나랑 살기 싫으면, 내 집에서 나가. 따로 살아.”
“평생 너처럼 편하게 산 사람 있냐?”
“난 이혼 안 해. 몇 번이고, 몇 년이고 항고할 거야.”
지옥이다. 사는 게 지옥이다.
왜 나는 몰랐을까.
아니, 살기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 대가로 남은 인생이 썩어가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는 없다.
나는,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미련을 떤 내가, 지금의 지옥을 만들었다.
'언젠가는 알겠지.' 하던 그 희망고문은 결국 나를 파괴했다.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기댈 곳 없는 현실, 혼잣말처럼 반복하는 오늘이 미치도록 아프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항상 활기차세요.”
“걷는 모습이 참 멋있어요.”
물 위에서 고고함을 유지하려면, 물아래에서는 죽을힘을 다해 허우적대는 백조가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렇다.
겉으로는 의연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숨이 막혀 버티는 매 순간이 전쟁이다.
이혼.
이 단어는 이제 나에게 끝이 아니다.
숨을 쉴 수 있게 해 줄 ‘숨구멍’이다.
과연, 나는 이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죽을 때까지, 내 의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체까지 내려오는 깊고 무거운 한숨이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곧, 아이의 귀가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거울 앞에 선다.
아이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 에, 오, 요, 우, 유, 으, 이.”
치아가 고르게 보이도록 발음을 반복한다.
무표정한 눈빛이 스스로도 낯설다.
안 돼.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웃자. 웃자. 활짝 웃자.
아이에게만큼은 안식처가 되어야 하니까.
늘 웃는 엄마로 남아야 하니까.
그리고 조용히 다짐한다.
기다리자.
숨을 쉴 수 있게 될 그날을.
이혼이라는 숨구멍을.
ps - 나는 이제, 나를 살리고 싶다.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단 하나, ‘숨’을 쉬고 싶다.
그 길의 이름이 이혼이라면, 나는 그 길 끝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