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 그리고 성장, 삶을 껴안는 연습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by 레토

이 책은 친구가 자신의 ‘인생 책’이라며 끊임없이 추천해 주었던 책이다.

계속 추천을 해주었지만 내가 읽지를 않으니 결국 강제로 나에게 선물했던 책이었다.


그때는 아이가 뱃속에 있었고 여러 차례 반복된 유산의 위험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아이가 잘못될까 불안하고 예민했던 시기였다. 우리나라 소설도 어려운데 거기가 프랑스 소설이라니 책을 보지 않아도 나에게는 어려운 감성일 것이란 선입견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책장 한켠에 던져져 있던 책에 손이 갔다. ‘뭐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인생 책인지 한번 보자.’ 그때를 지나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생’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책의 내용

소설의 주된 틀은 열네 살 어린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다. 악동 같기도 하지만 순수한 모모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아랍인, 아프리카인,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유태인,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하는 여인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의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등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채 소외되다 못해 결국 자신을 사회에서 고립시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그려나가면서

경이로운 생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저자 에밀 아자르

에밀 아자르의 본명은 로맹 가리라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단편을 기고하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여 수많은 상을 받으며 명성 쌓아갔다. 유명해진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기대와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순 살이 되던 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데 그 작품 역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다음 해 같은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해 공쿠르 상을 수상하면서 저자는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라는 두 문학적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후에 그는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내용을 밝히는 유서를 남기고 1980년 12월 2일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전 세계 문학계는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고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다는 공쿠르 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는 유일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책속의 문장들

p.61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철학자 흉내를 내느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p.82

아줌마는 날이 갈수록 숨을 쌕쌕거렸고, 덕분에 나도 천식에 걸렸다. 카츠 선생님은 심리적인 것보다 더 전염성이 강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심리적 전염이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p.91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p.93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p.99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112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하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한동안 어리둥절한 상태로 있을 뿐이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p.202

“모모야, 그들은 나를 억지로 살려 놓으려 할 거다. 병원이란 데가 원래 늘 그 모양이야. 법이 그러니까. 나는 필요 이상 살고 싶지는 않다. 이제 더 살 필요가 없어. 아무리 유태인이라도 한계가 있는 거야.”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p.306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

그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들은 그녀가 아무리 아파도 그녀가 살아 있을 때에는 비명을 지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p.307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야 한다.


p.321

“<매혹적인 사람들>에 대한 저의 혹평에 놀라셨지요?”

“으음.....”

“<유로파>에 대해 그렇게 호평했는데도, 당신은 저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 없으시더군요.....”

이럴수가!

이런 형편이니 내가 원고를 출판하기를 몹시 꺼리게 된 것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가장 먼저 책의 저자의 스토리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생’을 사랑하고 이어나가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을 텐데. 꼭 그런 선택만이 답이었을까?


내가 느낀 책의 분위기는 담담하지만 조금 어두웠고 이야기의 결말은 아름답지만 먹먹했다. 인간은 결코 행복함만 느끼며 살아갈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래서 괴로운 인생이다. 하지만 행복도 삶의 길에 분명히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크게 느끼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작게 느끼거나 느끼지 못할 뿐.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하루 중 잠깐이라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느껴야만 한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누구나 슬픔과 절망을 딛고 다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딘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생’을 껴안아 줘야 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크고 작은 상처까지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서로에게서 배운다.


책을 검색하다 보니 2020년에 나온 동명의 영화가 넷플릭스에 있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여운이 다시 또 사라져 갈 때 쯤 영화도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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