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아래에서 쉼표를 건너 봄까지

맨홀 탈출기 - 한명희

by 레토

천년의 시 0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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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이다. 일명 ‘딥그린’. 제목인 맨홀 탈출기도 눈에 띄었다.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구덩이를 탈출하게 되는 희망적 감정이 표현되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이 시집에서 ‘맨홀’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말로 꺼내지 못하고 눌러 둔 마음의 자리였다. 인간관계가 멀어졌을 때의 공허함, 혼자라는 외로운 감각,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시간들이 담백한 언어로 이루어져 표현되어 있다. 시인은 빠른 위로 대신 그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숨을 고르고 다시 한 걸음을 떼는 순간을 말해준다. 일상으로의 회복에 큰 용기를 요구하기보다 그 내려앉은 마음에도 출구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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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맨홀 탈출기

폐업한 지 오래된 식당

비스듬히 기운 메뉴판을 바꿔 달고

수도꼭지를 갈아 끼우자

울컥, 녹물이 쏟아진다

주방 바닥 눌어붙은 기름띠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내력에는

매장된 어둠이 몇 겹일까

얼룩진 바닥을 닦고 또 닦는데

낡은 배수관 타고 온 민달팽이 한 마리

한 발 오르면

두 발 미끄러지는 길

흐르는 물살로 등을 떠밀어도

악착스레 기어오르는 옆구리에서

끈적하게 날 세운 지느러미를 꺼내며

싱크대 비수구를 뚫고 탈출을 꿈꾼다

한자리에 오래 주저앉은 식당도

어둠을 훌훌 털고 비상을 꿈꾸는 중이다

저만치 골목 끝 맨홀 뚜껑이 하늘을 향해

반쯤 열려 있다.


반쯤 열린 맨홀을 올려다보며

맨홀을 탈출하는 존재는 민달팽이였다. 그러나 마음속 맨홀을 탈출하는 진짜 존재는 시의 화자다. 폐업한 지 오래된 식당이 주는 이미지는 어둠, 그 자체다. 그곳에서 녹물이 흘러내리고 찌든 때를 닦으며 다시 일어서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오래 방치된 공간을 손보는 일은 마치 눌러 두었던 감정을 마주하여 털고 일어나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좌절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간들. 그 순간의 슬픔과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역시 민달팽이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도 꿈틀거리며 미끄러지고 밀려나면서 결국 위로 기어오른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 살아진다. 살아야지’라는 희미한 말이 들리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몸을 일으킨다. 다시 일상을 향해 한 발 내딛는 것, 반쯤 열린 맨홀을 올려다보는 것. 어둠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모두의 작은 움직임을 조용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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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쉼표 하나

근린공원 벤치는

각각 다른 나무의 살점이 맞물려 시작된 아늑한 동거다

그늘이 나눠주던 쉼터 위 느티나무 가지는

발치에 놓인 벤치가 젖을까 봐

눈송이를 매달고 빗물을 매단다

빗방울 속 풍경에는

어깨 젖은 택배 상자가 쉬었다 가고

체력 단련 나온 이웃들도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가다듬는다

오가는 사람들 잠시 걸터앉아 나누는 사연을

등이 닳도록 받아주는 벤치

유모차를 밀고 나온 엄마와 아기도

손에 쥔 붕어빵을 베어 물며 눈을 맞춘다

어느새 구름을 빠져나온 낮달도 귀를 기울인다


근린공원 벤치가 만들어 주었던 추억

근린공원 벤치. 내가 참 좋아하고 애용했던 곳이다. 과거형이 되어버린 이유는 예전만큼 그곳에서 추억을 쌓는 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남편의 회사가 이전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도 아주 낯선 환경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작은 시골 마을. 아파트 창문을 열면 눈앞에는 넓은 논이 보이고, 뒤에는 산이 보이던 곳이었다. 남편과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한 번도 다른 곳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공기도 좋고 조용했던 그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불편함도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한 남편을 뒤로하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이와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는 집에 차도 한 대뿐이라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 앞을 지나는 버스는 두세 시간에 한 대뿐이었고, 그마저도 아기띠를 하고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맞추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시간 버스 도착 시스템도 제대로 되지 않던 때였고, 택시를 잡는 것도 어려웠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큰 숨구멍이 되어 준 공간은 집 주변의 근린공원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예쁜 산책길을 걷고 봄에는 벚꽃길을, 가을에는 낙엽길을 걸었다. 그러다 근린공원 벤치에 앉아 낙엽을 줍고 곤충을 구경하는 아이 옆에서 함께 재잘거리며 사진도 찍고, 둘만의 추억을 쌓았다. 날이 좋은 날에는 벤치에 앉아 이유식을 먹이기도 했고, 날이 추울 때는 방한 커버를 씌운 유모차 안에서 아이가 귤을 먹다 귤 하나를 손에 쥔 채 천사처럼 잠든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시 속에서 엄마와 아기가 붕어빵을 나누어 먹으며 눈을 맞추는 장면을 읽자,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이제 올해 열두 살이 된 아들과 산책은 종종 하지만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낸 기억은 까마득해졌다. 날씨가 좀 따뜻해지는 오후가 되면 나는 커피 한 잔, 아이는 코코아 한 잔을 준비해 오랜만에 공원 산책도 하고, 벤치에 앉아 있다 오자고 권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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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펜데믹

어지러운 세상 이야기

라디오로 흘러나와요

귀를 닫고

바깥의 봄을 찾아 나섰어요

산과 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고요히 흔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나물 바구니 옆에 끼고

집으로 오는 길

언덕 아래는 멍든 봄이 절룩거려요

내가 사는 세상은 흰 천으로 표정을 감추고 있어요

데리고 온 봄이

캄캄한 저녁 라디오 속으로 흘러들어요

보이지 않는 적에게 생포된 봄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어요


흰 천으로 가려졌던 봄을 다시 마주하지 않기를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2020년 1월 겨울. 우리 가족은 바다 생물을 좋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 여기저기에서 ‘코로나’라는 이름이 심상치 않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언론 보도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결국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인 2015년에도 메르스 사태를 겪어 보았지만, 코로나는 그때와는 달랐다.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유치원은 전면 휴원령이 내려졌고, 마스크 없이는 집 밖으로 한 발도 나설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때 사두었던 마스크가 아직도 신발장 안에 몇 통 남아 있다.


시 속의 한 문장, ‘내가 사는 세상은 흰 천으로 표정을 감추고 있어요’를 읽으며, 코로나 시기를 겪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기.


그런데 최근 ‘펜데믹’은 몇 년 주기로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또 다른 코로나를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그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태도로 버텨야 할까. 아직 마주하지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정말이지 다시는 그때의, 그 일상이 품고 있던 공포만큼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다만 펜데믹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만큼은 봄이 어디론가 끌려가지 않도록 서로의 곁을 조금 더 단단히 지켜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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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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