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의 기록 속 조선의 온도

파란 눈의 조선 | 박영규

by 레토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의 기록으로 본 조선과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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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와 관련된 책을 읽가 보면 근현대사에 들어서며 수많은 외국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조선을,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아꼈던 사람도 있었고 침략의 시선으로 바라본 외국인들도 있었다. 육영공원의 ‘헐버트’나 대한매일신보의 ‘베델’처럼 비교적 익숙한 이름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밖의 외국인들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을지,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파란 눈의 조선』은 조선 땅에 발을 딛고 우리와 함께 직접 보고 살았던 서양인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조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네덜란드인의 표류기부터 프랑스·미국·영국·러시아인의 여행과 체류 기록까지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은 생각보다 훨씬 생생하고 인간적이다.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거리 풍경, 낯선 문화에 대한 놀라움과 오해도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서양인들이 본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익숙한 역사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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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들이 본 조선: 하멜

p.45

하멜은 13년간 조선 생활을 하면서 국가 조직이나 경제생활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형벌이었던 모양이다.

p.47

하멜은 조선의 온돌 문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가옥과 가구’ 편에서 조선의 집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했는데, 온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겨울에는 방바닥 밑에 불을 지피기 때문에 방이 언제나 따듯합니다. 방이라기보다는 화덕 같습니다.

p.49

이 글을 읽기 전에 필자는 나그네들이 밤을 지내는 곳은 당연히 주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막이라는 것은 큰 도시 입구에나 있는 것이지 일반 마을에는 없었다는 게 하멜의 말이다. 하멜 일행은 제주를 떠난 이후로 여기저기로 다니며 여러 마을을 거쳤으니 하멜의 말은 믿을 만한 것이다. 주막이 없는 마을에서는 아무 집에서나 손님을 받아줬다니 조선인의 인심이 넉넉했음을 알 수 있다.

p.50

하지만 하멜은 조선인들의 민족성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코레시안은 훔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은 되지 못합니다. 남을 속여 넘기면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멜은 조선인들이 잘 훔치고 거짓말을 잘한다고 하면서도 또 이런 모순적인 말도 한다.

“한편 그들은 착하고 남의 말을 곧이듣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에게 우리 말을 믿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 특히 중들을 좋아합니다.”

p.53

이 글자는 배우기가 쉬우며 모든 것을 다 쓸수 있습니다.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을 다른 글자보다 쉽게 더 정확히 쓸 수 있는 글자입니다.

하멜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하멜도 훈민정음을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기가 매우 쉽고 모든 것을 쓸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하멜이 훈민정음을 배웠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관찰자가 된 표류자, 하멜의 시선

하멜표류기,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 효종을 배우며 잠시 스치듯이 한번, 국어 교재에서 또 한 번 본 적이 있다. 하멜표류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드라마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본 적이 없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하멜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조선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았으며 그가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파란 눈의 조선』을 읽으며 처음으로 하멜의 조선 생활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는 조선에 머물며 단순한 표류자에서 한 명의 관찰자가 되었다. 국가 조직과 경제생활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형벌 제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기록은 당시 조선 사회의 질서가 외국인의 눈에도 뚜렷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온돌에 대해 방이 아니라 화덕 같다고 표현할 만큼, 조선의 주거 문화는 그에게 신기하고도 강한 기억을 남기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여행 중 묵을 곳이 없어도 아무 집에서나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기록에서는 조선인의 인심과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하멜의 시선이 늘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는 조선인을 믿기 어렵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순하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고 말한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상반된 평가는 단순한 조선 사회의 모순이라기보다 어느 사회 속에나 존재하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일 것이다.


한글, 배우기 쉽고 모든 것을 쓸 수 있는 글자라는 그의 평가는 훈민정음이 가진 뛰어난 체계를 외부인의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었다. 하멜의 기록이 조선을 객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잘 대해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조선인 모두를 나쁘게 기록한 부분에서는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역사 속 조선의 다양한 얼굴을 조금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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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본 조선: 알렌

p.154

알렌은 표면상으론 미국의 조선 주재 공사관 소속 의사였지만 실제로는 종교적인 사명을 안고 파견된 인물이었다. 한국 이름 안련으로 알려진 그는 1884년 9월에 입국했는데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조선에 파송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다.

p.156

그를 깨인 사람은 미국 공사관의 비서였던 스커터였다. 스커터는 묄렌도르프의 집에 중상을 입은 환자가 있다며 급히 가줄 것을 요청했다. 묄렌도르프는 독일인으로서 조선 정부의 고위 관직을 지낸 사람이었다.

p.158

민영익이 도와주기만 하면 병원 설립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의 바람처럼 민영익은 서양식 병원 설립을 적극 지원했고, 고종과 왕비 민씨 또한 적극적이었다. 그 덕분에 1885년 음력 2월 29일, 한성 재동에 조선 최초의 서영식 병원인 광혜원을 열 수 있었다.

p.160

광혜원이 건립된 곳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부근, 홍영식의 집이었다. 홍영식은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처형되었으며 대역 죄인으로 몰려 그의 재산은 몰수된 상태였기에 그 집이 광혜원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p.162

그런데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설립 2주 만에 폐기되고, ‘제중원’으로 간판을 바꾸었다.

p.167

서울에 도착한 후, 알렌은 본격적으로 조선인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는 조선인에 대해 “조선인들의 느린 행동에 짜증이 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기거할 집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너무 느리게 집행되어 초초했던 것이다.

p.170

알렌은 1885년 2월 10일의 일기에서 매우 짜증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민영익이 자기 고무장화를 보더니 대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알렌은 주기 싫었지만 민영익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깨끗하게 닦아서 주었다. 그런데 민영익이 신어 보더니 자기에게 너무 크다며 돌려주고는 그것보다 더 좋고 발 크기에 맞는 것을 하나 사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돈은 별도로 주지 않았다. 민영익이 지난번에 자기가 준 10만 푼, 즉 1,000냥의 일부를 고무장화 사는 데 쓰라고 했다.

민영익은 그저 알렌을 집안에 예속된 의사인 양 부리고 있었으며, 알렌은 그런 현실이 짜증스러웠다. 게다가 고종은 사람을 보내 다소 엉뚱한 부탁을 했다. 시종을 보내 머릿기름을 좀 줄 수 없겠느냐고 한 것이다.

사실, 알렌도 머릿기름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왕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박하 기름을 보내줬다.

알렌은 이 기록들을 통해 민영익과 고종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사실, 알렌의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1,000냥과 선물 몇 개를 주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공짜로 치료를 받고, 비싼 물건을 거저 달라고 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 돈으로 1,000냥은 큰돈이지만 달러로 환전하면 1달러가 10냥의 가치가 있었으니 100달러에 불과한 돈이었다. 그런데 그 100달러로 마치 알렌을 고용한 듯이 행동했으니 알렌으로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근현대사의 진짜 온도가 담긴 알렌의 속마음

알렌, 하면 이어서 '선교사 알렌'이 입에서 맴돈다. 단순한 키워드 중심으로 배웠던 한국사에서 알렌은 선교사, 선교사 알렌은 광혜원이라는 근대식 병원을 열었고, 그 병원의 이름은 제중원으로 바뀌었다. 딱 이렇게 배우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어찌 보면 하멜보다는 좀 더 길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나는 선교사가 병원을 차렸다는 것은 아마 알렌이 조선으로 넘어올 때 의사들도 몇 명 데려왔나 보다 라는 추측을 하고 그걸로 끝을 내버렸다. 그런데 책을 읽고 알게 된 흐름은 나의 짐작과는 달랐다. 알렌 그가 바로 의사였다.


그러고 보니 고종의 조선 그 이전에는 흥선대원군의 세상이었고 선교활동은 꿈도 못 꾸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알렌은 선교사라는 명분을 그렇게 대놓고 들고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갑신정변과 알렌이 민영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고종이 머릿기름을 부탁했다는 것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민영익과 고종의 행동이 왜 나는 좀 부끄럽게 느껴질까? 나라가 점점 다른 나라에 잠식당하고 있는데 멋진 장화와 머릿기름이라니.


민영익은 목숨을 건져준 사람을 ‘은인’으로 대하기보다 왕실의 사람이 늘 그래왔듯 ‘아랫사람’으로 묶어두려 했던 것 같다. 고종의 부탁은 사소한 물건을 탐냈다기보다 서양인의 물건과 생활방식을 가까이 두고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알렌에게 너무 사적인 요구로 느껴지게 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눈으로 보면 아쉽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알렌의 일기 속 짜증과 피로는 현실적이다. 그는 조선을 돕는 ‘성인’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자기 역할과 경계를 지키고 싶은 한 사람이었을 뿐. 그가 느꼈을 답답함을 읽다 보면, 광혜원과 제중원이 단지 근대 병원의 시작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며 삐걱대던 현장으로 다가온다. 그 어긋남이 바로 우리가 배웠던 근현대사의 진짜 온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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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이 본 조선: 다데슈칼리안

p.302

가장 먼저 조선을 탐험한 다데슈칼리안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주된 내용은 조선의 영역, 행정 조직, 자연환경, 그리고 단편적인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선인들의 특성과 기질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그가 조선인들의 지식욕이 강하다고 본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에 대한 유별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에 머무는 동안 “늘 수난당하는 느낌이었다.”고 적고 있다. 어는 곳을 다근 항상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느 마을에 들어서기만 하면 순식간에 조선인들에게 에워싸였고, 그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조선인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고향은 어떤 곳인지, 러시아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또 그가 입은 옷이나 소지품은 어떤 것인지, 심지어 속옷의 종류와 색깔까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그런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하느라 하루가 저무는 줄고 몰랐고, 몸이 지칠 대로 지치기도 했다.

p.303

그는 이러한 조선인의 순수함을 보며, 그들이 본래 평화를 사랑하고 조용한 삶을 추구하는 민족이라고 보았다. 서양 문물을 일찍 접하지 못한 탓에 다소 무지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다른 생활 조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세상이 궁금했던 조선사람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러시아라고 하면 아관파천이나 절영도 조차 요구, 그리고 러일전쟁 정도만 떠오른다.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을 두고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역사책 속에서 러시아의 존재감은 빠르게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떠올려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파란 눈의 조선』에서 만난 러시아인 다데슈칼리안의 기록은 하멜이나 알렌의 글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그의 기록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피곤함’과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점이다. 마을에 들어서기만 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하루 종일 질문을 받아야 했다는 고백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조선 사회가 외부 세계에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낯선 사람 하나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온 마을의 관심이 쏠렸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은 좁았고 세계는 멀었다는 뜻일 것이다. 글로 읽어도 충분히 상상되는 장면이었다.


더 인상적인 점은, 다데슈칼리안이 이런 모습을 낮춰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멜이나 알렌의 기록에서 느껴지던 답답함이나 짜증과 달랐다. 그는 조선인들의 끊임없는 질문을 순수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인다. 서양 문물을 접하지 못해 무지해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시끄럽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 무지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고 알고 싶은 호기심에 용기를 더해 묻고 싶었던 사람들. 다데슈칼리안의 눈에 비친 조선은 침략의 대상이나 계몽의 대상도 아닌 그저 세상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던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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