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100일의 명화 - 이윤서
하루 한 장 술술 읽다 보면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 교양 입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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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 모네, 신윤복, 고흐, 고야, 소로야, 마티스, 르누아르, 프리다 칼로…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중, 블로그 이웃들 덕분에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명화를 소개하고 작품 뒤에 숨겨진 화가들의 삶을 들려주는 그분들의 글을 보며 문득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찾아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장래 희망 칸에 ‘화가’라고 적었던 그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미술학원도 열심히 다니며 심심하면 오른손 새끼손가락 아랫부분, 손날 부분이 검게 변하도록 B4연필, 사비 연필이라고 불렀었는데, 아무튼 그걸 들고 스케치하고 그림자도 표현하고 그렇게 미술을 좋아했었던 내가 존재했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왜 이렇게 그림과 멀어지게 된 걸까? 기억을 또 더듬어 중학교 시절의 미술 지필고사를 떠올렸다. 선생님이 교과서 여기저기에 쳐주신 동그라미를 따라 동서양의 수많은 화가와 작품을 기계적으로 매칭하며 달달 외우던 시간들. 점묘화니 인상주의니 하는 어렴풋한 개념들과 함께 암기했던 그 미술 공부를 끝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미술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최근 이웃들의 글에서 마주한 작품들은 대개 본 적이 있거나 이름은 들어본 화가들의 것이었다. 내가 이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혼동하던 와중에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다. 화가의 스토리를 알게 되니 보이지 않았던 작품 구석구석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았다. 명화를 소개해 주는 책이라니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p.21
물감 한 점 꾸욱 찍어 진주 귀고리?
요하네스 베르베르 (1632~1675, 네덜란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풍경화를 많이 그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입니다. 베르메르는 빛과 명암 처리에 능숙한 화가였어요. <진주 귀고리 소녀>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불릴 정도로 인기 있는 그림이에요. 작품 속 소녀는 입체성이 강조되었고, 배경은 어둡고 단조로워요. 빛나는 파랑과 노랑 사이의 색조 대비도 세련됩니다.
그림에는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17세기 화가인데 소녀가 두른 터번은 15세기 유럽에서 인기 있었던 동양의 터번이에요. 게다가 ‘진주’는 부의 상징인데 베르메르는 이만한 크기의 진주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았어요. 더욱 놀라운 건 멀리서 보았을 때 진주가 둥글고 커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한 점의 물감 자국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부에 대한 화가의 환상이 그림에 반영된 걸까요. 그렇다면 주인공인 누구일까요?
환상과 현실 사이, 물감 한 점이 만든 진주
책을 통해 화가의 이름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어! 나 이 그림 아는데" 정도의 짧은 느낌표 뒤로 무심히 페이지를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책에 나온 '물감 한 점' 이야기를 보니, 예전에 아이가 즐겨보던 과학 커뮤니티 채널의 영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집안일을 하며 흘려들었던 건지, 정작 그때 나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이제야 그림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가 사실은 정교하게 묘사된 보석이 아니라, 그저 툭 찍어낸 '물감 한 점'에 불과했다는 사실. 멀리서 보면 부의 상징인 커다란 진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체조차 모호한 하얀 얼룩일 뿐이라니. 동시에 그만한 진주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다는 베르메르의 가난한 현실이 겹쳐 보였다. 빛과 명암 처리 같은 딱딱한 이론보다, 화가의 고단한 형편과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눈속임을 알아채는 과정이 훨씬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제 나에게 이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화풍'이라는 시험용 지식이 아니라 가난한 화가가 물감으로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꿈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p.33
모나리자는 왜 이렇게 유명한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 이탈리아)
모나리자의 ‘모나’는 부인을 칭하는 말이에요. 피렌체의 상인 ‘조콘다’부인의 이름이 ‘리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입 가장자리와 눈 가장자리가 부드러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그림으로써 인물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아요. 미소를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지요. 당시 미의 기준인 넓은 이마를 위해 일부러 눈썹을 뽑았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또 하나! 회화, 건축, 철학, 시, 작곡, 조각 등 다방면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작품 속 모나리자는 나란히 놓고 보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화가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걸까요?
평생의 미완성, 다빈치가 사랑한 모나리자
이 그림의 이름과 화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내가 화가의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황금비율과 눈썹, 그것 말고 또 내가 알고 있는 게 뭘까? 모나리자 도난 사건? 뉴스에서 들어본 적은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작가와 이 작품 속 여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그림일까? 그것도 아니면 상상 속 허구의 인물일까? 살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호기심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평생 곁에 두었다는데, 그는 왜 그랬을까? 그는 이 작품을 단순히 상인의 아내를 그린 초상화가 아닌, 자신의 예술 철학을 집약한 ‘예술적 실험실’로 여겼다고 한다.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얇은 물감층을 겹겹이 덧칠하며 그림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결국 그는 주문자에게 그림을 넘기지 않았고 프랑스 망명길에도 말 안장에 이 그림을 실어 직접 챙겨갈 만큼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다빈치에게 <모나리자>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과업이자 끊임없는 연구의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그의 집요한 탐구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를 매료시키는 신비로운 미소가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 그림은 나에게 박제된 명화가 아니라 한 천재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매달렸던 인생 그 자체가 되었다.
p.237
곡선과 사선, 초록은 사절!
피에트 몬드리안 (1872~1944, 네덜란드)
피에트 몬드리안은 “아름다운 감정은 대상의 외형에서 방해받는다. 그래서 대상은 추상화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단순화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었어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그림을 단순화, 절제화 하기 시작했지요.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곡성과 사선입니다. 초록색도 없어요. 그의 친구가 작업실에 가져온 튤립의 초록 줄기와 잎은 흰색으로 칠했다는 일화도 있고, 바람에 흩어져 떨어지는 잎이 보기 싫어 창을 등지고 앉았다는 일화도 유명하죠. 몬드리안은 무질서함을 싫어했어요.
선과 면의 독재자, 몬드리안을 다시 보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교과서 안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가 기억났다. "이 정도라면 나도 수십 장은 그리겠는데?"라는 반항심 섞인 생각이 첫인상의 전부였다. 반듯한 검은 선과 그 안을 채운 원색들. 기교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단순한 그림에 왜 세상이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무관심은 꽤 오래 이어졌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몬드리안의 세계는 뜻밖의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아마도 그림 뒤에 숨겨진 그의 지독한 질서 의식을 엿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곡선과 사선은 물론, 자연의 상징인 초록색조차 거부했던 화가. 친구가 선물한 튤립의 초록 줄기가 보기 싫어 흰색 물감을 칠해버리기까지 하다니. 흩어지는 낙엽의 무질서함이 싫어 창을 등지고 앉았다는 그의 일화를 보며 이 정도면 고집스러움을 넘어 어떤 강박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에게 추상은 단순히 그림을 생략하는 과정이 아니라 대상의 외형에 가려진 본질을 찾기 위해 불필요한 모든 감정과 무질서를 깎아내는 치열한 투쟁이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감정은 외형에서 방해받는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세상의 소음을 지우고 가장 완벽한 균형만을 남기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나도 그리겠다며 비웃었던 그 직선들을 복잡한 세상 속에서 화가가 간절히 지키려 했던 완벽한 평온함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유 없는 고집인 줄 알았던 점이 지독한 신념이었음을 알게 되자 차갑기만 했던 격자무늬에도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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