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노래하는 마음아 담긴 캔버스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시화전 - 윤동주 글, 빈센트 반 고흐 그림

by 레토

윤동주 전 시집과 반 고흐 그림 138점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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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와 태양과 밤하늘을 그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한 권의 책에서 만났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냈던 두 거장의 영혼이 공명하는 지점을 찾아냈다. 윤동주의 맑고 투명한 시어와 고흐의 캔버스 위 유채가 만나 한 편의 시화전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윤동주가 「참회록」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할 때 고흐의 고독한 「자화상」이 그 곁을 지키고 「별 헤는 밤」의 서정적인 감각은 고흐가 그려낸 「론 강위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두 천재의 고독과 열정이 빚어낸 아름다운 조화는 독자의 시각과 감성을 동시에 일깨우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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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p.22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어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의 우물 속, 두 영혼의 자화상

윤동주가 우물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미움과 가엾음 그리고 그리움을 반복했다면 반 고흐는 캔버스 위로 자신의 얼굴을 깎아내듯 그려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윤동주의 우물 속에 비친 한 사나이와 고흐의 날카로운 눈빛은 모두 스스로를 마주하는 용기에서 비롯된 고독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선택적으로 기억하려 애쓰곤 한다. 그러나 이 두 예술가는 초라하고 부끄러운 민낯까지도 외면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의지와 다르게 행동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미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그런 내가 안쓰러워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우물 속 사나이의 반복처럼 나의 반복되는 모순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고흐의 그림 속 앙상한 얼굴과 윤동주의 시 속에 흐르는 파란 바람이 겹친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다시 연민하는 고통스러운 반복은 아마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성숙의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내 안의 우물을 들여다보다 그 속에서 마주할 내가 설령 미울지라도 끝내는 품어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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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람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 별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잠”“라이너·마리아·릴케”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p.68

쉽게 쓰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박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들

하나, 둘, 죄가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3.)


캔버스라는 좁은 육첩방

윤동주 시인의 시 중에서 내 머리에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시가 바로 「쉽게 쓰여진 시」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이 주는 직관적인 배경과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관통하는 시인의 강단 있는 어조.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가 독립운동가 윤동주의 고통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낸 시라고 생각해 왔다.


시의 서늘한 긴장은 고흐의 「작업하러 가는 화가」에서 느껴지는 고단함과 맞닿아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와 나란히 함께라 그런지 무거운 화구를 짊어지고 묵묵히 길을 걷는 고흐의 뒷모습은 시인이란 슬픈 천명임을 알면서도 뚜벅뚜벅 강의실로 향하던 윤동주의 고독함을 연상시켜 주었다. 타국에서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만 했던 청년의 부끄러움이 캔버스라는 좁은 육첩방에 자신을 가둔 채 오직 예술로만 세상과 싸워야 했던 화가의 처절함과 연결되었다.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을 자책하던 그는 결국 눈물과 위안으로 자신과 화해하며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 뒤 페이지에 함께 배치된 「석고상, 장미와 소설책 두 권이 있는 정물」은 그 부끄러움 끝에 피어난 작지만, 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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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6

이런 날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 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한 학과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 두 글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하던 형을

부르고 싶다.

(1936.6.10)


외로운 고집쟁이들

시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완고하던 형’. 시인의 사촌 형인 송몽규. 시가 쓰인 연도가 1936년인 것을 보면 아마도 1935년 송몽규가 독립운동을 위해 먼 길을 떠났던 무렵이었나보다. 모순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을 때 시인은 험난한 길을 선택해 떠난 형의 빈자리를 보며 시대의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절망 끝에 고흐는 붕대를 감고 다시 붓을 들었다. 붕대를 감은 채 정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고흐의 눈빛에는 예술에 대한 지독한 고집을 느낄 수 있다. 송몽규의 고집이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면 고흐의 고집은 예술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가린 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외로운 고집쟁이’들이었던 것이다.


가끔은 복잡한 고민 없이 세상 편하게 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붕대를 감고도 그림을 그리고 편한 길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은 묵직해진다. 그들의 완고함은 어쩌면 상처 입은 영혼이 세상을 향해 내뱉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이들처럼 삶의 어려움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나를 지켜낼 단단한 고집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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