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보다 늦게 도착하는 깨달음

클레이 키건 - 다산책방

by 레토

So Late in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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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작품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다. 도서관 신간 도서 코너를 돌아보다 반가운 이름을 다시 만났다. 짧은 문장들이 주는 묵직함이 매력적이었던 그녀의 세계와 다시 만날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빌려 집으로 왔다.


이번에 읽은 신작 《너무 늦은 시간》에는 작가의 세가지 단편 소설이 담겨 있었다. 세 작품 모두 클레이 키건 특유의 절제미와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그 속에는 일상 속에 교묘히 숨겨진 차가운 진실과 관계 속의 균열이 담겨 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가시처럼 날카로운 긴 여운이 남아 있는 내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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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p.18

문득 누군들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에 마음의 준비가 되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p.26

내가 돈을 찍어내는 줄 알아? 카헐이 말했다. 그 순간, 가장 행복한 날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기뻐야만 하는 날에 아버지의 말버릇이 그의 인생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p.32

사빈은 듣지 않았다. 그것도 문제였다. 그녀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적어도 절반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p.37

카헐은 농담을 해야겠다고, 그러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은 채 그 순간이 지나가버렸고,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의 문제였다. 눈을 가리고 있던 낭만이라는 베일이 걷혀서 당신을 들여다보고 읽을 수 있게 된다.


낭만의 베일이 걷히는 순간

주인공 카헐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인색함과 권위적인 태도로 연인 사빈과의 관계를 조금씩 좀먹는다. 그는 그녀가 제멋대로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사빈은 그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낭만이라는 베일이 걷히는 순간 아름다운 환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농담으로 무마하려던 찰나의 기회마저 놓친 뒤 찾아온 적막은 관계를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임을 차갑게 증명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마주한 이별의 고통 뒤에 깨달음은 언제나 상실보다 한발 늦게 도착한다는 씁쓸한 진실이 남았다. 사람은 후회가 취미이자 주특기인 생명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가볍게 들여다보면 그저 흔한 성격 차이에 의한 이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것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불러온 관계의 파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상대의 좋은 면을 발견했다면 어떤 특별한 기점이 되기 전까지는 그 면만 보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빌 펄롱이 '다정함'을 선택해 자신을 구원했다면, 이 책의 카헐은 '인색함'을 버리지 못해 자신을 고립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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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p.60

이렇게 예쁜 돌은 본 적이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발밑에서 델프트 도자기처럼 덜걱거렸다. 그녀는 이 돌들이 얼마 동안 여기 있었을까, 어떤 종류일까 궁금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그녀가 그러는 것처럼 이 돌들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

p.70

“여기서 글을 씁니까? 일하고 있어요?”

“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요? 글을 쓰세요?”

“제 안에는 쓸 게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요.”

이 말을 하는 태도 때문에 그녀는 그가 불치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 병색이 있는지 살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는 건강한 얼굴과 분노에 찬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p.72

“아일랜드는 예전 같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다들 만족했죠.”

“가난한 사람이 만족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p.74

그는 가기 싫은 것 같았지만 자기가 그만 나가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녀는 조리대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꼈고 더 이상 대화하여 애쓰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고통스러워질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고, 드디어 그가 일어섰다.

p.76

우리는 글을 쓸 수가 없어서 그러는 건데, 그런데 당신은 작가라면서 하인리히 뵐의 집에서 케이크나 만들고 있군요.

그녀가 숨을 들이마셨다. “뭐라고요?”


창작의 순수성을 침범하는 무례함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하인리히 뵐의 생가에서 집필에 전념하던 여성 작가에게 들이닥친 불쾌한 침입자를 다룬다. 노인은 과거의 가난을 낭만화하지만,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이 만족하는 게 가능하냐"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의 기만적인 향수를 가로막는다. 자신의 무능을 시간 부족이라 변명하던 남자는 급기야 집필 중인 그녀를 '케이크나 만드는 하인' 취급하며 폭언을 내뱉는다.


처음, 이 내용을 읽을 때는 집에 찾아온 남성의 태도가 무례한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의 행동에 깊이 있는 생각이 부족한 것인지 순간 헷갈렸다. 그래서 내용의 초입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결론은 명확했다. 열등감을 숨겨놓은 상대방이 행한 원치 않는 참견, 그것은 분명 무례함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에 부지런함이 필수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마음과 생각의 순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써서 어떻게 되어야지' 혹은 '무엇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얼마나 창의적이고 진실된 글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글을 통해 어떤 외적인 성취를 이룰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시간과 노력 끝에 우연히 찾아올지도 모를 기회의 하나일 뿐. 그것이 글을 쓰는 '수단'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주인공은 발밑의 예쁜 돌멩이를 보고 델프트 도자기 같다고 느끼며, 그 순수성에 감탄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글을 쓰는 자에게 필요한 이 본연의 감각을 지닌 그녀가 타인의 뒤틀린 열등감 때문에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평화로웠던 고요를 깨고 침입한 남자의 무례함은 결국 창작하는 자의 신성한 공간에 지울 수 없는 얼룩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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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p.86

알고 보니 그는 말이 정말 많아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부 늘어놓았고, 양로원에서 야간 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혼자 살고, 고아였고, 만난 적도 없는 먼 사촌 외에는 친척도 없었다. 손가락에 반지도 없었다.

“난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남자예요.” 그가 말했다. “당신은요?”

“난 결혼했어요.”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웃었다.

p.97

우리가 영원이 얼마나 긴 시간이냐고 물었더니 수녀님이 말했죠. ‘지구상의 모든 모래를 생각해 봐. 모든 해변과 모래 채석장, 해저, 사막을 말이야. 그 모래가 전부 모래시계에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렴. 거대한 요리용 타이머 같은데 말이야. 일 년에 모래가 한 알씩 떨어진다고 했을 때 영원은 세상의 모든 모래가 모래시계 속에서 다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생각해 봐요! 우린 모두 겁에 질렸죠. 아주 어렸거든요.

p.111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은 시계를, 자꾸 바뀌는 빨간 숫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사과 씨처럼 새까맸다. 그녀는 남극을,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영원이라는 이름의 지옥

〈남극〉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일탈을 시도한 주인공이 마주한 참혹한 대가를 그린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라 칭하며 연고 없는 삶을 강조하던 남자의 고백은 사실 그 누구의 추적도 받지 않을 포식자의 조건이었다. 어릴 적 수녀에게 들었던 '영원'에 대한 비유는 이제 그녀가 갇힌 방 안에서 실체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1년에 모래 한 알씩 떨어지는 그 아득한 시간은 이제 그녀가 견뎌야 할 지옥의 길이가 되었다. 눈과 얼음,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가 가득한 남극의 이미지는 그녀의 처지와 겹쳐지며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을 완성한다. 짧은 유혹이 불러온 결과가 '영원한 고립'이라는 서늘함으로 결을 맺는 작품이다.


마지막에 만난 이 작품은 한 편의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글이 주는 교훈은 '일탈은 위험하다'일까, '미소로 다가오는 타인을 의심하라'일까, 혹은 '가족에 대한 배신의 당연한 대가'일까. 사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한 하나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탈의 위험이나 배신의 대가라는 단순한 인과응보를 넘어, 단 한 번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가 '영원'이라는 무게로 돌변할 때의 공포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클레어 키건이 그리는 세계는 도덕적 훈계보다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비춰주었다. 찰나의 호기심 때문에 자신만의 고립된 '남극'에 갇히고 만 주인공처럼, 깨달음은 항상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한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을 대하는 나의 온도가 너무 늦어 식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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