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싫은 당신을 위한 생존 에세이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이진송

by 레토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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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와닿았다. 요즘 매일 아침, 내 마음속 외침이 책의 제목에 적혀 있었다. 이진송 작가님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운동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몸을 움직이며 기록한 유머러스한 에세이다. 흔한 다이어트 성공기나 몸매 가꾸기를 강조하는 뻔한 운동 예찬론이 아니었다. 근육은 배신하지 않지만, 운동하러 가는 길은 매 순간 배신하고 싶은 대다수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한다.


저자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몸을 온전히 책임지기 위한 생존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운동이 고통스러운 숙제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임을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은 운동복을 챙기기조차 귀찮은 날 가볍지만 실질적인 동기부여를 선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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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언니, 저 근데 진짜, 인성 파탄 날까 봐 운동하는 거예요.”

p.15

마법의 단어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퇴근하고 만나는 가족에게 짜증이 난다. 자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데 아니다.

p.16

「미생」에는 이와 관련된 유명한 말이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p.17

나는 여전히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의 참맛을 깨닫고 운동과 인생의 의미를 연결하는 경지에 오르지도 못했다. 생리가 시작되면 관절이 약해지니까 (사실) 운동하면 안 된다며(개으름) 드러눕고, 비가 오면 갈까 말까 망설이고, 그나마 등록비가 아까워서 억지로 몸을 일으킬 때면 걸음걸음이 울고 넘는 박달재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남루하게 느껴지는 날, 사소한 일에 서운함이 폭발하고 누군가 원망스러운 날, 살아보겠다고 운동을 꿈지럭 꿈지럭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드는 날, 바로 그 순간에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한다.

p.18

우울과 분노에 사로잡혀 누워 있을 때 침대는 나를 삼키는 거대한 늪이다. 가라앉는 깊이에는 끝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면, 하다못해 나가는 게 힘들어서 매트를 깔고 홈 트레이닝이라도 따라 하고 나면, 침대에 몸을 던지는 촉감은 다정한 악수 혹은 상쾌한 하이파이브 같다. 수면의 질이 다르고 시행착오를 감수할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채워진다.

p.20

인성이라는 모호한 단어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태도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운동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일은 단순히 나 혼자 잘 살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공정한 마음을 기르고 타인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다정하고 너그러울 수는 없겠지만, 그런 순간을 늘려가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운동복을 챙긴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인성 파탄을 막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맞는 말이다. 체력이 바닥나면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운 짜증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처럼 우리가 겪는 게으름, 나태, 분노가 사실은 체력이 버티지 못해 나타나는 몸의 신호임을 일깨워준다. 알지만…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운동을 하러 가기가 참 싫다.


비가 오면 찝찝하고 몸이 처진다고 운동가기를 망설이고, 날씨가 추우면 춥다고 또 잠시 이불속에서 몸을 데워줘야 한다며 누웠다가 운동을 안 가게 된다. 등록비가 아까워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작가님의 모습도 나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어디 그게 나뿐이겠냐며, 평범한 사람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결국 체력은 나 혼자 건강하게 장수하려는 욕심을 넘어 내 주변 사람들과 관계에서 소중한 이들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였다. 다정함과 너그러움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근육에서 나온다. 나의 저질 체력으로 인해 어제는 별일 아니었던 일이 오늘은 나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일이 되어 가장 가깝게 가족이 피해를 보게 된다. 이후 내 마음은 더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차라리,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복을 챙기는 행동이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는 다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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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너 엄마가 운동 안 했으면 어쩔 뻔했니.”

카페에 도착한 친구는 기운 센 어린이를 내려놓으며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했나 보다.”

p.134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여성과 어머니를 이분화하고, 어머니‘만은’ 강한 존재로 신성화하여 착취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다. 앞서 이야기했던 어린이를 다루는 어머니의 체력과 근력은 이런 맥락에서 악용되기도 한다. ‘모성’이 체력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 그러나 틀렸다. 한 글자도 안 맞는다.

내 친구가 어린이를 잘 돌보는 것 역시 그가 충실하게 쌓아 온 체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잘 운용하는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출산과 동시에 여성에게만 자연적으로 생긴다는 신묘한 모성의 힘이 아니라, 본인이 10대 시절부터 꾸준히 달리고 구르고 푸시업하고 메다꽂고 메다 꽂히며 기른 자산이 친구를 지탱한다.


모성은 환상이 아니라 체력이라는 자산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단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는 말이었는데, 의문이 생겼다. 그러게나 말이야. 왜 갑자기 어머니가 되면 강해질까? 오로지 ‘정신력’의 강함 말고는 설명될 수 없는 문장이다. 나도 한 아미의 엄마지만 ‘어머니’라는 이미지를 신성화하며 세상 모든 엄마의 희생과 노동을 당연시하는 도구로 쓰인다면? 너무 별로일 것 같다.


얼마 전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한 친구의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까지 마지막 일주일, 아이에게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고자 매일 같이 함께 외출하고 결국 감기 몸살에 걸렸다며, 애를 키워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키워야 한다는 말을 이제 실감한다고 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애를 낳아서 키워야 한다’라는 말은 곧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로 받쳐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육아의 고단함을 '엄마니까 당연히 버티는 것'으로 치부하며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개인의 육체적 한계와 노력을 잊어버린다.


육아를 감당하는 힘을 본능으로만 대신하려 한다면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남아있던 기본 체력이 바닥나 겨우 긁어모아서 버티던 정신력까지 바닥나게 되는 상황이 오면 결국 엄마는 다정함은 고사하고 폭발하게 된다. 이후 아이는 마음의 상처를, 엄마는 죄책감을 뒤집어쓰게 된다.


모성이라는 모호한 환상으로 여성의 근력을 '퉁'치지 말고 땀 흘려 기른 체력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운용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신비로운 모성의 힘보다 실재하는 체력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나와 가족을 위해 오늘은 꼭 운동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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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6

현실에는 고정 지출 비용 같은 기초대사량 외에도, 급전처럼 급하게 체력을 당겨써야 하는 변수가 포진해 있다. 작은 컵으로 한 번씩 뜰 때는 충분한 물이라도 갑자기 바가지로 연달아 퍼내야 할 때 금방 바닥을 긁으면 곤란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금방 포기하거나 짜증을 냈다.

여기에 붙는 이자는 은행의 그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율이거나, 에계? 싶은 알량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의 성분, 그런 생각을 하면 운동가기 싫어서 드러누워 있다가도 슬금슬금 움직이게 된다.

p.184

“운태기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

왜 극복해야 하죠? 전국체전에 나갈 것도 아닌데? 나는 그냥 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석연찮은 대답이라 질문은 이어진다.

“그럼, 계속 안 해요?”

“네, 안 하고는 못 견디는 순간이 오면 그때 다시 해요.”

조금만 하면 금방 권태기가 찾아오는 운동과 달리 아무리 해도 절대 질리지 않는 누워있기, 빈둥거리기, 휴대폰 만지기를 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슬슬 밀린 구몬처럼, 운동을 쉰 티가 나기 시작한다. 마지못해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내 몸은 꼬박꼬박 운동 공백기의 빚을 받으러 왔다. 징그러울 만치 솔직하고 정확한 셈이었다.


부실채권을 발행하지 않는 은행, 내 몸

겨울을 시작으로 완벽한 '운태기'에 접어들었다. 일단은 추워서. 그러니까 집밖에 나가기 싫어서. 나가기 싫어? 그렇다면 집에서 홈트라도 하면 되잖아? 그건 또 딱히 운동하는 맛이 안 나서. 그렇게 내적 씨름을 하다 겨우 일주일쯤 다시 운동을 갔다. 그런데 어라? 애가 겨울방학을 했네? 그러면 아이랑 같이 운동하러 가면 되잖아? 그건 그런데… 사실은 내가 가기가 귀찮아졌어. 애가 늦잠을 자는 건 아닌데, 내 아침이 느슨해졌다.

어떤 날은 오전에 잠시 다녀오는 일정인데도 아이와의 외출을 핑계로 운동을 하루 쉬고. 또 새벽 기차를 타고 밤늦게까지 조금 멀리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은 어제 피곤하고 힘들었으니, 오늘은 운동을 쉬고. 다음날은 또 어제 하루 종일 쉬어서 밀린 집안일 때문에 운동을 못 가고. 누가 보면 엄청난 운동을 하는 것 같지만, 고작해야 겨우 30분짜리 운동을 하면서 부끄럽게도 참 내적 갈등이 크다.


체력을 자산과 부채라는 경제적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을 보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삶에는 기초대사량 같은 고정 지출 외에도 갑자기 큰 바가지로 퍼내야 하는 ‘급전’ 같은 체력 소모의 순간이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때 잔고가 바닥나면 우리는 결국 짜증과 포기라는 파산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운동하러 가기 싫어 드러누워 있다가도 이 체력 잔고를 채우려는 생존 본능으로 다시 몸을 움직인다고 한다. 몸은 우리가 쉰 기간만큼의 빚을 이자까지 쳐서 꼬박꼬박 받으러 오기 때문에 운동 공백기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나중에 반드시 갚아야 할 육체적 부채가 된다. 무섭도록 솔직하고 정확한 셈법으로.


운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내 삶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신용 관리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 누워서 빈둥거리는 달콤한 시간 뒤에 찾아올 몸의 정직한 청구서를 생각하면 다시 운동화 끈을 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창한 목표까지는 필요 없다. 예상치 못한 삶의 변수 앞에 든든한 버팀목을 위해 오늘도 내 몸이라는 통장에 소액이라도 저축하듯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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