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필요한 시대

편안함의 습격 - 마이클 이스터

by 레토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대하여


THE COMPORT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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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은 알래스카 극한의 오지에 대한 여행기라는 바탕이 있다. 하지만 글의 사이사이에 책이 전하고 싶은 진짜 질문들이 숨겨져 있다. 저자 마이클 이스터는 현대인이 너무 편안해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불안하고 무기력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알래스카 오지로 들어가 33일 동안 혹독한 환경을 견디며 사냥과 생존을 포함한 극한의 체험을 직접 감행한다. 이 경험은 모험담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에 가깝다.


인간은 왜 결핍과 고난이라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 집중력과 생존 감각이 더 또렷하게 살아나는가? 마이클 이스터는 알래스카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진화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연구를 연결하며 ‘의도적 불편함’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책이 말하는 불편함은 무모한 고행이 아니다. 안전한 범위 안에서 일부러 편안함을 내려놓는 선택이었다. 『편안함의 습격』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더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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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최근에 쏟아진 증거들은 옛날 옛적 조상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불편함을 경험하면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된다고 밝히고 있다. 육체적으로 튼튼해지고,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영적으로 건강해진다.

p.74

모든 현대인들에게 몹시 힘든 일에 도전해 보는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최근의 한 연구는 우울증, 불안, 비소속감 같은 정신적 증상들이 육체적인 나태함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p.85

틀림없이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도전을 마치고 나면 내가 나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힘들었던 상황에 당당하게 대처했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만족감이 찾아옵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지만, ‘내가’ 보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 이 문장을 보면서 요즘 내가 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 자세가 떠올랐다. 최근 들어 자주 운동하러 가기가 싫어진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필사하고 아이의 아침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나서 바로 운동을 간다. 하지만 요즘 이때가 되면 딱 30분만 쉬고 운동을 하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이 부분이 항상 문제의 발단이다.


그걸 이겨내고 그냥 가자니 운동 효율이 별로 안 좋을 것 같다거나, 몸이 더 피곤할 거라는 내가 만들어 낸 핑계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막상 가면 최고 심박수가 180이 되도록 뛰고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한다는 것을 마음은 이미 알고 있다. 다녀오면 분명 몸과 기분이 나아질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운동 기록을 남기며 다시 습관을 잡아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매일 운동 후 인증 사진을 찍고, 일주일 치 기록을 모아 한 번씩 올려보는 방법을 생각했다. 기록이 쌓이면 성취감이 생기고 쌓이는 성취감에 다시 습관이 잡힐 거라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혹시 지금의 나는 ‘나를 보는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기록이나 숫자와 흔적으로 남겨야만 계속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건 아닐까? 내가 나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보다 타인의 시선이나 기록이라는 장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아닐까? 책은 이런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기록은 분명 다시 움직이게 하는 좋은 도구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 건, 기록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남기는 기록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거가 아니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던 나 자신을 기억하기 위한 흔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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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0

수영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기르면 당연히 달리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장혈관계의 지구력은 좋아지겠죠. ‘단련’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정신력으로 다른 여러 가지 일을 더 잘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p.108

마치 신경계에 8기통 엔진을 달아주듯이 미엘린 형성을 증가시킴으로써 뇌와 신체 전반에 걸쳐 더 강하고 더 효율적인 신경 신호를 생성해 준다. 즉, 뇌 속 미엘린이 증가하면 전반적인 뇌 기능이 향상되고, 반대로 부족하면 알츠하이머와 같은 전반적인 뇌 기능이 향상되고, 반대로 부족하면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p.155

이제 따분함은 완전히 사망했다. 그리고 지금 캐나다 온타리오 북쪽의 한 과학자는 이 죽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있다. 보통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악영향을 줄 정도로 매우 나쁘다. 그는 유행처럼 번져버린 ‘따분함의 결핍’은 사람들을 소진시키고 정신건강에 여러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따분함이 우리의 정신, 감정, 생각, 욕구, 필요에 대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약화시티고 있다고 주장한다.

p.158

우리가 디지털 미디어에 넘겨주고 있는 11시간 6분의 주의력은 공짜가 아니다. 이 시간은 모두 집중 모드 상태에서 소비된다. 이런 집중 상태를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고 있는 상황이고 비집중 모드를 쉬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유해 보자. 휴대전화, 티브이, 컴퓨터 등등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는 한 가지 운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에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결국 과도하게 사용하면 지친다.

p.191

뇌의 신경 구조에 대한 심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을 더 차분하게 만들고, 집중력과 생산성을 높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하도록 돕는다.

p.221

알래스카로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살면서 배고픔을 겪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목을 것은 항상 손에 닿는 곳에 있었고, 보통 배가 고파서 먹었다기보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먹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루했을 때도 먹었다. 아니면 그저 먹을 것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먹었다. 아니면 그저 먹을 것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먹었다.


불편함이 길러주는 삶의 지구력

체력을 기르는 일이 특정 운동 하나를 잘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 힘든 경험을 이겨내는 과정 역시 특정 순간만을 견디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몸이 단련되면 다른 움직임에서도 여유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력 역시 한 번 버텨본 경험을 통해 전반적인 삶의 지구력이 길러진다. 마이클 이스터는 이러한 변화가 의지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뇌와 신경계의 구조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도전과 불편함은 신경 회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생각과 행동을 연결하는 효율을 높여준다. 반대로 신체적으로는 지나치게 편안하고 정신적으로는 자극이 과잉된 환경에서는 뇌가 쉴 틈을 잃고 쉽게 지친다. 우리는 쉬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지루함을 없애야 할 적처럼 여기며 디지털 자극으로 즉시 덮어버리는 습관은, 오히려 우리의 정신을 더 소진한다.


저자가 알래스카에서 경험한 배고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늘 곁에 있던 음식 속에서 우리는 배고픔조차 시간표와 습관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핍으로 인한 허기짐을 직접 겪고 나서야 진짜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더 편안해지는 대신, 조금 불편해질 용기를 통해 삶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과 멍하니 있는 순간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와 감정을 읽어낼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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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6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순위에서 디즈니랜드 다음가는 곳으로 꼽힐 때가 많다는 사실뿐인) 부탄이라는 나라는 하루에 한 번에서 세 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국가 교육과정으로 포함되어 있다. 즉, 우리는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탄 사람들의 집단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 순위에서 134위에 오른 나라지만 일본 연구진이 실시한 광범위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20개국 안에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부탄인들의 병적인 흥미가 어떻게 그들의 행복감에 기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알지 못했다.

p.319

바꿔 말하면 이렇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으면 체크리스트와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이 무의미해지면서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집중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중에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는 것, 너무 많이 일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었다.

p.358

우리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피곤하거나 지루해지면 않아서 쉰다. 아니면 시원한 음료나 정수기 물을 마신다. 또는 스마트폰의 노래를 바꾼다. 정해놓은 시간, 거리, 세트와 반복 횟수가 끝나면 사우나에 들어가 앉는다.

p.406

허리 건강과 피트니스의 전문가인 맥길 박사의 말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헬스장에 가서 갑자기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소파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허리에 이상이 생기는 비율이 더 높았다.

“누가 봐도 불공평하죠. 저도 알아요.”

맥길이 말한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가벼운 운동을 조금씩 하는 것입니다. 되도록 다양한 움직임을 활용하면서요.”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부탄 사람들

『편안함의 습격』을 읽으며 ‘부탄’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부탄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건 오래전에 본 영화 <방가? 방가!>였다. 주인공을 연기한 김인권 배우의 얼굴과 함께 낯선 나라 이름 하나가 기억에 남았다. 영화의 내용이나 메시지는 사실 거의 떠오르지 않지만 ‘부탄’이라는 이름만큼은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번에 다시 마주한 부탄의 모습은 그때와 전혀 달랐다. 하루에 여러 번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교육의 일부로 자리 잡은 나라. 삶의 끝을 자주 의식함으로써 오히려 무엇이 중요한지를 뚜렷하게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부탄 사람들이었다. 죽음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가족이 생각나고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하루에 세 번이나 죽음을 떠올린다니. 나는 처음엔 그들의 방식이 낯설고 솔직히 말하면 우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의 뒷부분을 읽어갈수록 부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가 감정에 빠지는 방식이 아니라 삶을 정리 정돈 하며 살아가는 기준에 가깝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죽음을 떠올리며 후회와 두려움에 잠기는 대신, 현재의 선택을 점검하며 살아가는 태도를 지녔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예의’가 중요시되며 서로 간의 관계의 기준으로 작동하듯, 부탄에서는 ‘죽음’이 삶의 방향을 다듬는 오래된 전통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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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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