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산 - 파울로 코엘료
O MONTE CINCO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대부분 삶의 전환점에 선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나는 특히 『마법의 순간』이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짧은 문장들을 통해 마음 깊이 위로해 주었다. 지쳐있던 일상에 용기를 주는 표현들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소설 『다섯 번째 산』은 성경 속 예언자 엘리야의 서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단순한 종교 이야기가 아닌 흔들리고 상처받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시련과 상실을 지나 선택과 재건이라는 흐름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어떻게 견디고 넘어설 것인가를 묻는다. 이야기는 고대의 배경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과 위로는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p.29
그러다 엘리야는 사제들 역시 자기들이 하는 말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고양된 사람들’이 생겨난 건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고 끊임없이 새로운 통치 권력이 들어서는 등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예언자든 광인이든 다를 바 없이 마찬가지였다.
p.46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저버리기 위해 태어났다.’ 신은 인간의 마음속에 실현 불가능한 과제들만을 떠안겼다.
p.53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어. 때때로 세상과 타인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말이야. 비밀은 바로 이거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
p.67
“우리 인생에는 고난의 시기가 있고 우리는 그걸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이 닥쳐오는 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p.93
“당신은 다섯 번째 산의 신들과 대화했어요.” 그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되었군요.
“거기에 신들은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했다.
종교를 넘어, 고난을 마주한 인간의 이야기로
『다섯 번째 산』의 초반은 종교적 용어와 예언자 이야기가 중심에 있어 처음에는 다소 반감이 느껴졌다. ‘주님’이라는 표현들이 반복될 때, 이 작품이 종교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1부를 지나면서 이 작품의 배경에는 종교적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핵심은 혼란 속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내적 여정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엘리야가 겪는 혼란과 그에 따른 운명에 대한 회의 그리고 자신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묻는 과정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겪는 삶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확실한 시대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되고 때로는 외부의 기준이나 권위에 기대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은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흐름은 고대와 현대 사회가 다르지 않았다. 다섯 번째 산은 결국 종교적 장소가 아니라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오르게 되는 질문의 자리를 상징했다. 이 작품은 성경적 배경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원치 않게 만나게 되는 삶의 고난들 속에서 나는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어떤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p.117
“왜 우리는 전통을 지키느라 더 유능한 인물을 지도자로 세우지 못하는 거죠?”
“전통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질서를 어지럽히면 세상이 끝날 겁니다.”
p.125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마음에 귀 울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였다. 그녀는 이방인을 집에 들이는 일로 친구와 이웃들과 맞섰다. 이제 자기 자신과 싸울 필요는 없다.
p.148
엘리야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총독이 오직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사제장은 군중을 선동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가까이 다가서려 하다가 저지 당했다.
p.166
“다른 산들은 다 이름이 있는데 왜 다섯 번째 산은 숫자로 불리는 건가요?” 엘리야가 물었다.
“신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요.” 여인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 산에 어느 특정한 신의 이름을 붙이면 나머지 신들이 분노해서 땅을 파멸시킬거라는 전설이 있어요. 성벽너머 보이는 다섯 번째 산이라서 우리는 그 산을 다섯 번째 산이라고 불러요.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노엽게 하지 않고 우주는 제자리를 지키는 거죠.”
p.179
“천사의 말 때문에 심란해하지도 말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섬길 신들이 달라진다고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나의 선조들은 동물 현상을 한 이집트 신들을 섬겼지요. 그 신들은 떠나갔고 당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아세라, 엘, 바알 같은 다섯 번째 산에 사는 신들에세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배웠어요. 이제 나는 주님을 알게 되었지만 언젠가 주님도 우리를 떠나실지 모르죠. 그 다음에 오는 신들은 덜 까다로울지도 모르고요.”
p.205
두려워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에요. 그다음부터는 의미가 없어요. 이제 남은 건 우리가 옳은 결정을 내렸을 거라는 희망뿐입니다.
p.251
“만족스럽지 않은 과거가 있다면 지금 당장 잊어버려요. 당신 인생의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 보고 그대로 믿어봐요. 원하던 것을 성취한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그럼 그 힘이 당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내도록 도와줄 겁니다.”
두려움은 시작 전까지만 존재한다
역사는 시대만 바뀔 뿐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역사는 진짜 반복되고 있었다. 고대 사회에서도 더 유능한 지도자보다 전통이 우선되었고, 정의로운 총독이 노력해도 군중은 선동에 흔들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우리는 과연 진짜 정의와 선동을 구별할 힘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당당하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두려워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만이에요.”라는 문장. 이 문장이 마음을 세게 건드렸다. 맞다,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가장 크게 두려움을 느낀다.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선택만 남는다. 단순한 삶의 원리를 모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던 걸까.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느꼈던 것도 마음의 부채였는데, 소설은 오히려 그 두려움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말해주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나의 어떤 선택으로 잘 지나갈 것인가였다.
p.265
나이든 양치기의 말이 맞았다. 유일한 탈출구는 불확실했던 과거를 잊고 스스로를 위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의 엘리야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여인과 함께 죽어버렸고, 이제 그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이 가한 응징에 굴복하지 않고도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이 길로 계속 나아가길 원한다면 이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다.
p.276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88
저는 오직 한 분뿐인 주님을 믿습니다만, 여러분은 저 다섯 번째 산 구름 속에 많은 신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누가 섬기는 신이 더 강하거나 전능한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서로의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비극을 통해 우리는 절망이라는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가 우리의 영혼 속에서 모든 것의 해답을 찾았고 모두 해결되었다고 여기며 변화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선택할 새로운 역사
뉴스를 보면 현재 우리는 종교적 이념의 충돌, 정치적 갈등, 자원의 고갈과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평화보다는 불안감이 더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섯 번째 산』 속 아크바르의 혼란과 비극은 마치 오늘의 뉴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양치기가 엘리야에게 말했듯, 과거가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마음의 소리를 듣는 용기,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결심이 진짜 탈출구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단순한 기쁨, 몰입, 포기하지 않는 힘 역시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삶의 에너지다. 이는 거대한 이념이나 신의 명령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 인간 고유의 힘이다. 누가 섬기는 신이 더 강한가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비극을 통해 우리가 같은 절망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할 때, 사회는 쉽게 파괴된다.
엘리야가 공동체에 강조한 것은 특정 신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서로의 공통된 감정을 이해하고 변화에 마음을 열라는 요청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혼란을 넘어 다시 세상을 세우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산』은 고대의 예언자를 빌려 말하고 있다. 전쟁과 갈등에 대한 두려움 자체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적 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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