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미타시 박물관展
1. 저는 한국의 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시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외국에 나가면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는 전시회를 꼬박꼬박 찾아갈 정도이며, 일본 교토의 고려미술관도 한국에 소개되기 한참 전인 2006년에 졸업했죠.
그런데 왜 한국의 전시를 안 좋아하느냐? 가격 대비 성능비가 영 안 맞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바티칸전은 큐레이터의 설명은 워낙 재미있었지만 전시된 유물은 죄~다 복제품인데 가격은 12000원, 최근에 진행된 지브리 전은 15,000원으로 일본 관람 가격과 같지만 (환율 10배) 거신병이 사라지는 등 전시물은 일본 대비 반 넘게 사라진 데다가 시중가의 2배 가격의 기념품, 아르바이트생한테 소리 지르는 직원 등 기본조차 안된 경우가 많았죠.
그러니 한국의 전시는 전시라는 고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위한 상술이라는 편견(?)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겠죠.
그런데 저번 주말 난데없이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편견이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2. 예르미타시(영문평 :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겨울궁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러시아의 박물관입니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겨울궁전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여기가 원래 박물관이 아니라 로마노프 왕조의 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노프 왕조의 예카테리나 2세는 미술품, 예술품 수집에 굉장히 적극적이었고 이 전통(?)이 이어져서 차르가 지속적으로 수집품을 모은 것, 러시아 혁명 후 귀족들의 수집품을 압류한 것을 모은 것이 지금의 규모가 되었죠.
이 예르미타시의 소장품 중 일부를 전시하는 전람회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개최 중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심드렁했어요. 국내 전시회에 여러 차례 덴 데다가 결정적으로 지브리 전에 크게 데어서 관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전시에 굶주려있는 데다가 어떤 전시든 평타는 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가 단돈 6000원 (광고 아님) 하길래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그냥 갔습니다.
써놓고 보니 광고 같은데, 전혀 광고 아니며 관계자도 아닙니다. 아 글 의뢰는 환영합니다 (깨알 홍보).
3. 모아놓은 전시물이 300만 점인데 이걸 다 전시하는 건 '당연히 무리입니다'. 아마 비행기가 싣고 한국에 오다가 중노동으로 과로사할 수 있겠죠. 어쩌면 박물관 직원들이 옮기다 과로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여러 사람들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89점만 선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18~20세기 프랑스 미술이 많은데 원래 예르미타시가 '세계에서 프랑스 미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입니다. 예카테리나 2세가 프랑스 미술품을 좋아했거든요.
4. 이 전시는 여러모로 파격적입니다. 우선 가격이 6000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데, 전시는 굉장히 충실합니다. 게다가 플래시,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하에 직접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건 굉장히 후한 정책입니다. 보통 진품이 아니라 가품만 전시한 전시회라도, 일체의 사진 촬영을 금지하거든요. 그런데 사진 촬영을 허가해줬다는 건 굉장히 통 큰 정책입니다. 저는 여기서 별점 5개 줍니다.
게다가 전시된 작품은 모두 100% 진품입니다. 사실 많은 박물관은 자신들이 소유한 전시물이 해외에 나가는 게 무슨 큰일 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시를 위한 모조품을 별도로 만들어둡니다.
5. 이 전시회, 적극 추천합니다.
단돈 6000원으로 진품만이 전시되고, 촬영까지 허가된 전시회를 접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요? 제 기억엔 없습니다
전시회는 2018년 4월 15일까지 니 따듯한 봄의 주말을 유익하게 보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월차를 유익하게 쓰고 싶은 분이라면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세요.
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관람후기입니다. 홍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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