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코헨, 협상의 법칙>
* 제가 직접 쓴 책, <역사 컨설팅>이 2018년 10월에 출간됩니다. 역사에서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린 책입니다. 기대해주세요!
2018년 5월 24일 밤 대한민국에선 대 난리가 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북미 회담을 취소한 거예요. 이유인즉슨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워딩이 너무 셌다는 것이죠. 이 회담은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대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마이크 펜스 :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수밖에 없을 것
최선희: 미국 부통령의 입에서 이런 무지몽매한 소리가 나온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쨌든 백악관에서 공식 취소 성명이 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절망해야 할까요?
남들은 안 봤으면 좋겠다는 홍보문구로 나온 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협상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필독서이자, 관련 교육의 지침서가 되었죠.
효용성에 대해 물어보시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협상의 원칙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 보면 이보다 좋은 책이 어디 있을까요?
이후의 이야기는 저자의 생각이 주축이 되어 있으므로 이 부분을 잘 추려서 봐주셔야 할 듯합니다. 트럼프는 왜 이 회담을 취소했을까요?
이 배경은 꽤 복잡합니다.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명예욕
미국내 여론과 언론의 태도
트럼프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이다. 지식은 물론 통찰력까지.
에 달려있어요. 이것 뿐이냐고요? 네 트럼프라는 사업가는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트럼프는 예전에 예능인 사업가(?) 시절부터 언론의 위험성을 잘 아는 워딩을 많이 했어요. 이후 CNN의 기자를 쫓아내는 등, 그는 언론이 컨트롤하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이렇게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운 미국 언론, 최근의 보도 내용을 보면, 미국의 분위기를 보면
이번 북미협상의 최대 공로자는 문재인 대통령
이라는 워딩을 하죠. 이는 예전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질문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 큰가?'라는 질문에도 나타나 있죠.
문재인 대통령님은 이 질문의 위험성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이 아주 크다, 그가 주도한다는 워딩을 함으로써 그를 추켜세웠죠. 야심보다는 종전이 더 급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봉합되는 듯합니다만 문제는 실질적으로 이 회담의 중심에 우리나라가 끼어있고, 조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국에게선 지극히 당연하지만 회담의 주역이자 최고 공로자가 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로 CNN 뉴스에선 한 전문가가 '트럼프가 정말 자기 힘으로 비핵화를 하면 미국 시민들이 길에 나와서 구세주를 외치며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고 비꼬기도 하죠.
이 말은 적어도 주류 언론이, 트럼프가 재선 하는 상황도, 트럼프가 비핵화를 주도한 영웅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문대통령의 공을 강조하고, 그의 리더십을 계속 강조하고 있죠 (정작 우리 대통령님은 그런 거 필요 없으니 평화, 종전을 외치시는데)
이런 상황에서 최선희 외무관이 아주 제대로 한방 던져버렸습니다. 펜스 부통령을 제대로 물어뜯었죠. 이건 트럼프에게 여러 가지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마이크 펜스, 우리나라에선 펜스 룰로만 유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통령이자 공화당의 수장에 더 가깝습니다. 재선을 위해서 가장 힘을 써줄 사람이죠.
그런데 최선희 외무관은 펜스를 직접 공격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하면 '펜스의 워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펜스를 처리함으로써 성의를 보여라'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펜스를 처리할 수도 없고, 처리해서도 안 되는 거지요. 처리할 거면 평창올림픽에서 안 일어나서 비난받았을 때 경질했겠죠.
적어도 재선에 성공할 때까지 펜스는 못 건드립니다. 그래서 이를 다르게 활용한 겁니다.
협상의 법칙에는 이거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전략이 나옵니다. 갖고 싶어 하는 상대에게 가격을 깎아주는 상인은 없죠. 오히려 다른 가게 갈 거다, 별로 필요 없다는 말을 해야 값을 깎아줍니다.
못 팔았을 때의 손해가, 깎아줬을 때의 손해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는 사람은 별로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내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회담을 취소했죠. 이쯤에서 북한의 감 놔라 배 놔라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펜스와 볼턴은 절대 못 놓거든요. 펜스는 재선을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 볼턴은 협상에서 물어뜯을 대변인으로써 기능하기 위해.
그래서 벼랑 끝 전술을 걸었습니다. 트럼프는 이번 협상을 잘 못 끌어내면 재선은커녕 올 하반기 선거도 물 건너갑니다. 이란 핵 협의를 깼어요. 이것만으로도 미국의 안보불안, 위기감은 높아지고 선거에 영향이 갑니다. 북한도 이걸 알고 '이제 협상 성공 외에 트럼프의 카드는 없다'라고 던진 겁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너네 회담도 필요 없어'라고 받아치죠.
트럼프는 절대 회담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정치적 자살입니다. 당장 11월 선거에서 무너져서 입지가 좁아집니다. 이번 취소는 그냥 벼랑 전술, 서한 전문 마지막은 '이거 아니어도 상관없다 전략'임을 잘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맨 마지막에 '만약 생각이 바뀌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거나 서신을 보내라'라고 하잖아요. 벼랑 전술을 쓰되 상대방이 탈출할 기회를 열어준 겁니다. 실제로 김계관 제1부상이 굉장히 온건한 태도로 '우리는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더 벼랑 끝 전술을 잘 쓰는 트럼프가 받아쳤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실험장을 터트린 북한은 외통수에 몰린 것이고요.
협상의 법칙에는 최대한 많은 투자를 하게 하라는 내용도 있죠.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선언문 한 장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겁니다.
이 회담은 절대 깨질 회담이 아닙니다. 시설을 파괴한 북한의 경우 협상을 취소하면 주전파의 압박을 지도부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영화 <강철비>의 주전파의 입장은 아예 소설이 아닙니다. 핵을 파괴하고 이 이상을 얻어내지 못하면 지도부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집니다.
트럼프는? 이란 합의 깨고, 북핵 합의 깨고 뭘로 재선 할까요? 부시 아들이 그렇게 무능했음에도 지지도가 바닥인데도 여유롭게 재선 한 이유는 911 테러로 인한 안보위협, 미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였어요. 그래서 텍사스식 강경파인 부시가 여유롭게 당선된 겁니다. 이 논리는 트럼프에게도 적용됩니다. 안보 무너뜨리면 끝나요.
하지만 일단 이렇게 한 번 치고 나가며 상상외로 많이 얻습니다.
우선 한국 배제. 현재 한국은 북한-미국을 평화롭게 이끄는 일꾼이자 조언자로 자처하고 있습니다만 이 평화회담을 끌어낸 주체 자체가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에 시선은 한국에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 노벨상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이유죠.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 정치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이건 한국의 공이라고 연막 치는 언론을 제압하기 위해 키를 자기가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내가 다 한거다! 한국 아니다! 라고요. 그래서 잘라낸 거예요.
이렇게 되면 주도권은 '훗날 회담 재개를 허락한 미국에 갑니다.'
'이 트럼프 님은 깨진 회담을 다시 재개했어, 평화의 수호자 아닌가?' 이게 속내일거에요.
그리고 미국 여론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볼턴은 리비아식 모델을 요구하고 있죠. 이에 카다피의 불행한 최후를 본 북한이 동요하자 트럼프는 '리비아 식대로 안 한다'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러자 미국 언론들은 '북한에 놀아나서 볼턴을 쳐낸다' 한국 언론들은 '볼턴 해고 임박'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죠.
놀아난다는 표현을 트럼프 같은 사람이 좋아할 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펜스를 공격한 최선희 외무관의 말은 절대 들어줄 수도, 밀려날 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건 북한의 실책이에요. 상대가 나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히 협상을 재개합니다. 이미 긍정적인 워딩들이 속보로 나오고 있네요. 12일 날 회담을 할지 안 할지는 몰라도 어쨌든 본인 입으로 재개할 겁니다.
비록 한국의 공로는 이 <파기 연극>으로 깎이겠지만, 우리는 이미 들었죠? 노벨상도 공로도 상관없다. 그런 건 다 주고 우리는 종전과 평화만 얻자고. 저도 공감합니다.
협상에선 명분 안 무너뜨리고 실리만 챙기면 됩니다.
제 글을 보시고 이 사람이 쓸만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걱정 마세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PS : 협상의 법칙은 꼭 읽어보세요. 필독서입니다. 제 책은 과연 저만큼 팔릴 수 있을까요?
PS : 북한은 싱가포르의 회담에 약속까지 해놓고도 안 나와버렸더군요. 이건 협상상대에게 머리를 그대로 내어바친 꼴이죠. 아이구...
PS : 아 그리고 아마 펜스는 재선 될 때까지는 부통령직을 유지하겠지만 볼턴은 협상 끝나면 용도 폐기될 겁니다. 트럼프를 비난하는 언론이 그 사람을 계속 인터뷰했거든요. 심지어 일본 언론까지.
일본 언론도 트럼프 안 좋아하고, 우리나라의 평화는 더 안 바란다는 걸 감안하면, 볼턴을 강조하면 할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구멍이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리비아식을 신나게 떠벌이는 게 이번 협상에 난항을 가져온 만큼 이를 부각하려던 것 아닐까요?
리비아, 리비아 떠들어대는 건 북한에 대한 압박용으로는 효과적이지만, 이후 협상성공후의 사후처리에선 반대효과만 나옵니다. 아마 협상성공후에는 '리비아는 생각도 안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볼턴을 자를겁니다. 볼턴은 '말 안 들으면 카다피 꼴 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은 협상의 법칙에서 나오는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일 뿐이거든요.
냉정하네요. 외교의 세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