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케르베로스 사가가 들어온다면?
<이 글은 자비로 극장에서 보고 쓴 리뷰입니다>
1. 인랑의 원작자 오시이 마모루(押井守)는 버블경제 일본에서도 특유의 작품 해석과 개그 센스로 주목받는 루키였습니다. 제가 그의 대단함을 느낀 것은 1989년에 만들어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이었습니다. 해학과 개그가 넘치는 원작에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명작이었죠. 그는 이 특기를 1995년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 : Ghost in the shell)에서 절묘하게 발휘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이 됩니다.
인랑은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인 1999년에 선보였던 작품입니다.
2. 우선 말해둘 것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 성향 변화입니다. 공각기동대에서 절정에 달한 그의 메시지 전달 능력은 공각기동대 후속편인 이노센스(2004)에서 삐걱이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전뇌에 탐닉한 나머지 인간성은 물론 인간의 경계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묻힙니다. 너무 몽환적인 화면이 넘쳐나서 그래요. 사람들이 화려한 화면에 취해서 주제를 보고도 주제인지 모르게 된 것이죠.
이후 오시이 감독의 이런 성향은 더 짙어집니다. 나중에 나온 작품일수록 메시지를 던지는 기법에만 집중한 나머지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하죠. 이를 반성한다면서 만든 스카이 크롤러도,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만든 영화 패트레이버 시리즈에서도 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시이 감독이 폭주하게 된 기점이 바로 인랑입니다.
3. 인랑이 걸작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작화는 최상급이고 미조구치 하지메(溝口肇)의 음악도 역사에 남을 명곡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상과 음악으로 명작을 평하지는 않지요? 이 작품은 세계적인 공각기동대 감독의 신작치고는 어정쩡한 작품이었습니다.
이게 한국 사람에겐 더 합니다. 원래 인랑은 '케르베로스 사가'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붉은 안경(1987), 케르베로스 지옥의 파수꾼(1991)에 이어진 작품이고 이 작품의 세계관을 알아야 비로소 인랑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케르베로스 사가는 사람들을 많이 가리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정치구도라던가 전공투 세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겨우 이해가 되는 작품이죠. 하물며 인랑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일본인들이 느끼는 사회인식에 케르베로스 사가까지 접해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걸 김지운 감독님이 어떻게 만드실지가 궁금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드는 생각은
인랑은 어디로 봐도 어정쩡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장르영화의 대가 김지운 감독님은 이 작품의 어디서 매력을 느끼신 걸까요? 애니 팬이라서? 밀리터리 마니아라서? 총기 덕후라서? 모두 해당되시는 분이니 인랑이 끌리셨겠죠. 하지만 김 감독님이 이렇게 끌리는 소재만으로 영화를 만드시는 분은 아니셨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장르영화를 전달하기 위한 뼈대를 확실히 잡고 작품을 찍는 분이셨죠.
그런데 인랑은 이 뼈대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뼈대를 덮어쓴 인랑에 문제가 있습니다.
5. 케르베로스 사가가 비록 완벽한 하나의 설정으로 묶인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가진 뼈대는 존재하죠. 가상의 역사를 바탕으로 일본 사회의 전체주의 억압 주의 속에서 발생하는 경찰 조직의 갈등을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일본인이 느끼는 감정을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가능할 리 없죠. 그래서 SF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한 첩보물로 바꿔버립니다.
그래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시나리오 자체가 현실과 맞닿을 수밖에 없는데 내부자들이 일상 드라마가 되는 세상에서 비선 실세, 기무사 쿠데타를 뉴스로 접하는 대중에게 인랑의 이야기는 만화같이 느껴집니다. 인랑이 현실의 인식에 호소하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이미 인랑의 한국 버전은 지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은 강동원과 한효주의 러브라인을 집어넣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인랑이라는 작품과 괴리가 발생하는 겁니다. 원작의 남주인공 후세가 여주인공 케이를 죽임으로써 인간에서 인랑으로 바뀌어나간다고 하면 리메이크의 강동원은 인간성을 끝까지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붉은 폭탄 소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인간적인 인물이고,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인물이 프로텍트 기어를 입고 터미네이터처럼 싸웁니다. 그들이 케르베로스로 불리는 이유가 인간성을 버린 채, 권력과 이념의 개처럼 싸우기에 원작에서 그런 터미네이터 전투가 묘사되는 건데 그런 살육을 하기에 강동원은 지나치게 인간적인 캐릭터죠.
한국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오리지널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인랑의 껍질을 입혔죠. 이렇게 되자 작품은 심히 어정쩡해집니다.
이건 포르셰에 페라리의 휠을 붙이는 것, 페라리에 포르셰의 핸들을 붙이는 것만큼 안타까운 선택입니다. 따로 존재하면 최고급의 스포츠카지만 둘을 섞는 순간, 잡종이 나옵니다. 생물의 경우 잡종이 생존에서 우수한 개체지만 인간의 인식에선 포르셰에 페라리 휠 붙여서 팔면 없어 보일 뿐입니다.
6. 아마 감독은 그 프로텍트 기어에 반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기어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뼈대를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원래 케르베로스 사가의 주인공들은 이념과 사회분위기에서 암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이자 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무리 중 한 명이고 전체 속의 개인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인랑은 한 개인이 인간성을 버린 케르베로스의 무리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죠.
케르베로스 사가에서 인랑만 떼어놓고 보니 주인공만 부각하여야 하고 그러다 보니 혼자서 싸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애니에서는 이미 부대가 적을 다 정리하고 주인공은 마무리만 넣지만 강동원은 날아다니죠. 이쯤 되면 김지운 감독은 프로텍트 기어만 출연시키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원작의 메시지, 구도, 대사 그리고 음악까지 따온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뼈대가 다르고 사람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애니에서의 후세와 영화에서의 강동원은 아예 다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다른 작품에 원작의 대사, 메시지를 넣으니 마치 떡국에 케첩을 뿌려먹는 느낌입니다.
7. 인랑은 애초에 한국사회에 들여오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혹자는 1980년 광주사태, 1987년 민주화 시위를 주제로 하면 좋았을 거라고 하는데 그건 어려운 주문입니다.
민주화 시위는 정치 이야기임에도 대중의 인식에서 선과 악이 명확이 나뉘는 이야기입니다. 대중이 군사독재를 악으로 보지 않았다면 택시운전사, 변호인, 1987이 연이어 천만 히트를 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인랑에서 싸우는 것은 공안과 특기 대라는 내부 조직의 암투를 그리는 겁니다. 둘 다 소시민 집단일 수도 있고, 둘 다 나쁜 놈들일 수도 있죠. 인랑은 이런 애매한 사회체제에서 희생당하고 가해자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차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기무사 쿠데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들이야 제3의 군사정권의 수장으로서 차기 대통령을 꿈꿨을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은 이를 옳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선악구도가 명확한 이야기에
인랑의 껍질을 입히는 것, 뼈대를 입히는 것 둘 다 힘듭니다.
설령 넣는다고 쳐도, 프로텍트 기어라는 SF적 물건이 저 이야기에 어울릴지도 의문이네요.
8. 원작 인랑도 좋은 작품은 아니어서 그런지 김지운 감독이 인랑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역량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중간부터는 이런 생각도 사라집니다. 이야기는 오리지널 영화 인랑과 애니메이션 인랑 사이를 넘나들면서 영화만을 본 관객마저 혼란시킵니다. 팬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대체 왜 인랑을 고르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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