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리더십 경영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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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문득 느끼는게 일 잘하는 사람들, 바른 말 잘하는 사람들은 승진 물먹고 조기에 잘리고 (물론 개중에는 능력을 바탕으로 창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일은 못하는데 상사에게 혀로 기름칠하는 솜씨는 에로틱을 넘어 신의 경지에 달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남아서 생산성을 갉아먹고 일 잘하는 후임들이 질려서 사표쓰게하는데 기여한다.
그런데 이쯤되면 궁금해지지 않는가? 왜 이런 사람들이 안 잘리고 버티는 것일까?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이후 미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 반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11년 동안 대한민국의 1, 2, 3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기여한 것은 많다. 우선 평화선 설정으로 인해 독도를 실효지배나마 할 수 있게 만들어 일본에 빼앗기는 참사를 막았다. 이후 일본은 90년대나 되어서야 독도가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고 (그 전에는 군 관계자들만이 주장하는 이야기였다) 뺏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지만 이 평화선때문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유 중 하나겠다)
하지만 그는 공이 아니라 과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고 말았다.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때 항일운동을 하고 독립에 기여하기는 했지만 독단적인 행동으로 독립의 중추세력, 집단세력과는 마찰을 빚어왔다. 이는 그의 성격이 꽤 독단적이었던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노선 자체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 너무 독단적이었다.
그는 1919년 대한인국민회의 부탁을 받고 윌슨과 강화회의에 청원서를 쓴 일이 있는데 이때 아무하고도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한다.
연합국 열강은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한다는 조건하에서 일본의 통치로부터 한국을 해방시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하에 두는 조처를 하도록 해달라.
이승만 입장에선 나름대로 현실적인 타협안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3.1운동의 물결이 거셌고, 독립인사들은 완전한 자주 독립을 노선으로 놓고 활동하고 있었다. 이는 분명히 국민의 민의는 물론 다른 동지들을 무시한 노선이었다. 이후에도 독단적인 정책으로 조직은 물론 때로는 독립운동까지 방해한다.
둘, 너무 돈을 밝혔다.
그는 독립자금을 횡령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이것이 탄핵의 원인이 된다) 하와이에서도 박용만이 구축한 기관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갔다.
한 예로 대한인국민회는 하와이에 교육사업을 위해 부지를 확보했다. 이때 이승만은 대한인국민회에 이 땅을 '이승만 명의로 해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국가 대계를 위해 여러 사람이 십시일반해서 산 땅을 개인에게 넘겨달라는 뻔뻔한 요구는 당연히 묵살되었지만, 이승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지지세력을 모아서 결국 교육용 부지를 사유화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재정고문인 이승만이 수많은 자금을 착복한 것이 대한인국민회의 4인 조사단에 의해 드러나자 이들을 살인미수로 미국경찰에 고발한다. 그것도 그들이 미국에 위험한 불순분자라고 직접 증언하기까지 하면서.
하지만 미국 경찰이 바보인가, 당연히 말도 안되는 논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재판은 기각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끈질긴 노력끝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는 결국 이승만의 사조직으로 전락하고 만다. 당연히 관련 시설의 명의도 함께.
셋, 너무 자리를 밝혔다.
이승만은 이상할 정도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대한인국민회가 슬슬 자리를 굳혀갈 시점에서 이승만은 연합단체의 총리로 임명된다. 아직 정부의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 그런데 이승만은 총리직함이 아닌 대통령 (President)로 칭하고 다녔다. 심지어 구한국의 조약국에게는 자신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공문을 보냈고, 다른 독립인사들을 부하직원 다루듯 부렸다.
이에 안창호가 보다못한 나머지 '현재 단체에는 대통령직이 없으며 이는 헌법위반이니 자중하라'라고 서한을 보내자 '이미 대통령이라고 알렸는데 어쩌라고?'라는 입장을 보냈다.
이렇게 대통령을 칭하며 상하이 임시정부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고 멋대로 조직을 설립한 정부 총리 이승만, 결국 안창호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통령제에 기반한 내각책임제를 구축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단합을 추구한 결과였다.
이렇듯 이승만은 굉장히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행보를 일삼았다. 이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다른 사람들이 고초를 겪으며 활동할 때 워싱턴에서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면서 권력을 남용하다 탄핵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저런 독단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입지는 낮아지지 않았고 낮아질 수 없었다.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박용만이 이승만보다 세력이 셌고 미주 지역 전체로 보면 안창호의 지위와 성과가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이승만이 지지를 모은 이유는 윌슨의 민족자결회의 때문이었다.
당시 여러 독립인사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식민지들의 권리에는 관심도 없었고 특히 조선의 경우 조선의 'ㅈ'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입장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절실하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게 가능하려면 영어가 가능하고 미국에 줄이 있어야 했다.
이승만은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 출신인데 당시 이 학교의 총장이 우드로우 윌슨이었다.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민족자결주의를 외친 사람이다. 이런 국제적 정세에서 이승만을 빼놓고 일을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강대국이 조선에 관심없는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입지가 결국 대한민국의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만다.
우선 해방이후 한반도의 정세를 보려면 관점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때 '1945년 일제의 압박으로 부터 해방되었다'는 결과만을 배우는데 사실 이는 마냥 좋은 일이 아니었다.
국제사회의 입장으로 볼 때 조선은 없는 나라, 엄밀히 말하면 이 땅은 일본영토였고 연합군의 입장에서 조선땅은 일본의 영토에 불과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에선 무엇을 하겠는가? 그동안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에게 알아서 하라고 자리를 내줄까, 아니면 일본땅을 신탁통치하는 플랜에 집어넣을까? 당연히 후자였다. 그리고 후자라면 말도 안통하고 입장도 다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권한을 주느니 말도 통하고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이승만의 의견을 듣는 것이 더 나았다.
해방은 자주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실권자가 된 이승만, 당연히 자신과 사사건건이 부딪히고 자기 하는 일에 발목을 잡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제약을 걸어버린다. 그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귀국하는 것을 막아버린다.
즉 민간인으로 귀국하라고 한 것이다.
이후 이승만은 자기에게 반발하는 언론이나 사람은 모조리 친일로 몰았다. 대통령 선거때 경쟁자인 민주당인 신익희 후보에게도 '친일일 가능성이 있다'고 대놓고 여론전을 펼쳤고 장면 후보와 선거전을 할 때도 '그의 지지자가 그렇게 많다니, 이 땅에 친일용공세력이 그렇게 많은가'라며 편가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정작 친일의 중심축은 이승만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패전국인 일본영토중 일부인 조선을 통치해야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효율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처음에는 일본인 관리를 그대로 자리에 앉히려고 했을 정도다.
아무리 친일파가 세력이 드세고 돈이 많아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권력을 얻을 수 있다. 행정편의주의적인 미국, 그리고 그 미국의 민의를 대표하는 이승만은 그들이 비비기 아주 좋은 언덕이었다. 1948년 이승만은 미군정과 한민당과 결탁, 독립인사들과 대립하는 입장에 섰고, 친일파는 이후 독립인사를 '좌익용공인사'로 몰아서 처단한다는 노선으로 갈아탄다. 이렇게 이승만과 친일파는 국제정세를 틈타서 세력을 잡고 만다.
이것이 이승만과 친일파가 권력을 잡고 독립인사들이 배척받는 경위를 '최대한 읽으시는 분 정신건강에 좋게' 적은 것이다.
미군정의 입장에선 일본의 일부로 점령한 땅을 독립국처럼 여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듣는 이승만과 친일파들에게 칼을 주는게 훨신 좋았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을 합리화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왜 회사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지 아는가? 윗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이런 문제가 있는데 괜찮나요?' , '그거 사양산업인데 괜찮나요?', '그 업체 부도날거 같은데 거래하면 안됩니다.' 같이 발목걸고 넘어지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감수하고
조직을 다양한 색으로 칠할 수 있는 뛰어난 리더는 소수에 달한다.
그리고 한 번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은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친일을 선택한 사람은 그때는 우리가 힘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참고 기다렸다가 해방후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기여했다라는 괴상한 논리를 펼친다. 회사도 별반 다를게 없다. 정신차려보니 일 잘하는 인재는 다 나가고 어벙이 떠벙이만 남아서 아부를 하고 있어도 이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회사가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래서 회사에 기회를 잘 잡는 기회주의자들이 남아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덕분에 회사에는 이상한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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