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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May 30. 2018

변화하려면 정말 바꿔야 할 것을 바꿔라

4차 산업혁명, 생존전략 이야기 : 닌텐도 편 (1)

* 제가 직접 쓴 책, <역사 컨설팅(가제)>이 2018년 10월에 출간됩니다. 역사에서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린 책입니다. 기대해주세요!


4차 산업혁명, 생존전략 이야기 : 닌텐도 편 (1)


창의성을 이식하라


최근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의 이야기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골자만 분류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 기업은 중국과 인도의 추격을 받고 있으며, 이들을 떨쳐낼 수 있는 아이템도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는 아이템도 없다.


한 마디로 성장동력에 문제가 있으며, 새로운 먹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선업 1위의 신화가 깨졌고,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이 크게 추락하더니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의 세단의 분기 판매량이 만대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이걸로 무너질 회사들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가긴 무서운 상황이다.


그래서 기업의 화두는 창의성을 확보하는데 쏠렸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구글과 애플 등 실리콘밸리 회사의 업무공간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창의성을 기업의 발전을 이용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뿐만 한 지자체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기도 하고, 유명 유통기업은 1페이지 보고서를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로 조직문화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이 역시 창의성과 자율성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로 이상한 정책이다. 예를 들어 전교 수석권에 있다가 최근에 성적이 떨어진 아이가 있다 치자. 이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전교 1등 아이와 같은 공부환경을 준비해줬다면 그 아이의 성적은 바로 전교 1등이 되는가? 그전에 향상되는가?


환경을 바꾸더라도 환경을 만든 요인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만약 환경을 바꾼다고 그 동력이 생긴다면, 교육은 굉장히 간단한 작업이 될 것이다. 우선 전교 1등 하는 아이의 방을 그대로 찍는다. 그다음에 그 방의 모든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공부하면 된다. 환경을 바꾼다고 동력이 생기면 그 방에서 공부하면 누구나 1등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럴리는 없다. 그렇다면 교육은 참 싸게 먹히는 일일 것이다.


 제대로 성적을 올리게 하려면 그 학습법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배워서 그 사람에 맞게 적용애야 한다. 전교 1등 아이가 공부 공간을 만든 이유, 효율성 여부를 따지고 이 과정에서 그의 공부방법을 벤치마킹해야 비로소 성적이 올라갈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저런 공간을 만든 이유는 창의성을 위한 것이 맞다. 그런데 저런 공간이 창의성을 만들어준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저런 공간이 있으면 서로 다른 조직의 사람들이 어우러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분야의 사람과 소통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게 한 것이다.


한 분야만 아는 전문성은 창의성을 낳지 못한다


즉 창의성의 본질은 놀이 공간이 아니라 친목에 있었다. 


페이스북은 이를 잘 이해했다. 그래서 아예 친목을 위해 주거공간과 업무 공간을 합쳐버렸다 [출처 : 페이스북]

위의 기업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놀이 공간을 도입한 기업은 정작 업무시간에는 이를 사용하게 하지 못했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만 쓸 수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라면 모를까, 야근 마치고 거기서 놀다 갈 사원이 몇이나 될까? 


유연 출근제를 실시한 지자체는 정작 민원인들의 업무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기존 문화가 아니면 어색한 고위 공무원들의 압력으로 9 to 6을 강제적으로 지키는 꼴이 되었으며 1페이지 보고서를 도입한 기업은 보고서는 1페이지지만 보완서류가 40페이지가 되었다. 즉 41페이지 보고서는 변함없다는 것이다. 상세 데이터까지 확인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상부의 업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안 바뀌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가져와도 쓸모없다



그럼 다른 기업 시스템을 이식할 수는 없는 걸까?


기업의 문화는 사람이 만들며 사람이라는 것이 각각 다르다 보니 기업의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는 요즘이야 개성을 추구하지만 예전에는 관리시스템으로 통제하는 산업구조로 개성이 있는 사람을 시스템으로 제어해가며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업의 매뉴얼이 생겼고, 이 매뉴얼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MBA(Management Business Administration)이라는 학문이 생겨났다. Administration, 관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배우는 사례연구(Case Study)는 이 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한 산업군의 시스템을 빌려 쓰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애플의 아이폰, 삼성의 갤럭시는 모두 스마트폰이고 iOS와 안드로이드라는 운영체제 군에서 제일 잘 팔리는 제품들이다. 그래서 얼핏 생각해보면 사업모델과 시스템을 그대로 본따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설령 본뜨더라도 그 회사와 똑같아질 수는 없다. 애플은 1999년도부터 개발한 OS에 관한 노하우가 있다. 물론 바다 OS도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되기 시작한 OS다 이렇게 수치만 놓고 보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결과가 다르다.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비결을 따라잡지 못한 채 바다 OS는 단종되었다. 그동안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겪은 역사, 참여한 사람들의 성향, 거래처의 성향 그리고 경영진의 생각이 다른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리콘밸리라는 환경의 차이가 컸을 것이다.


 저자는 편의주의적인 인용, 벤치마킹을 경계한다
차라리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편의주의적인 시스템 도입은 오히려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차라리 자신의 강점으로 정면 승부를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닌텐도의 정면 승부

닌텐도는 교토기업 중에서도, 일본 기업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기업이다. 엔터테인먼트, 그것도 어린이 완구라는 니치 마켓을 공략, 일본 최대, 세계 유수의 기업이 되었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 완구시장의 비중이 1~2조대로 협소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규모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평가를 받는다.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으로 90년대 경상이익이 1200억 엔대를 넘었고, 직원당 경상이익은 1억 엔을 기록한 회사다. 당시 ‘후지쯔’가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 후지쯔의 직원이 약 5만 명인 반면 닌텐도의 직원은 760명에 불과했으니 독보적으로 특이한 기업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여러분의 상상 속에서는 게임회사, 창의적인 기업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고 닌텐도도 창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일본 내에서도 보수적이고 엄격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이며 규정도 엄격해서 오죽하면 일본 기업에서 닌텐도와의 사업을 관리했다는 말을 할 정도면 바로 인정받을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회사는 이 보수적이고 엄격한 시스템을 가지고도 승승장구한다.


혹자는 본사 건물이 보수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한다고 말한다. [출처 : 닌텐도]


닌텐도가 2006년 한국에 한국닌텐도라는 마케팅 사무소를 차리며 정식 진출했을 때의 일이다. 다른 동종업 선두주자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현 소니 인터렉티브),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사업 부문은 한국시장에 맞춰 유통방식이나 판촉 방식을 바꾸는 등 나름대로의 사업방식을 현지화했다. 


그런데 닌텐도는 반대로 닌텐도의 시스템과 전략을 그대로 들고 왔다. 철. 저. 하. 게. 심지어 한글로 매뉴얼이 번역이 안된 정책은 시행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외국계 회사가 실패하는 이유가 본사의 정책을 잘 받쳐주는 현지 정책을 못 만들어서이다. 외국계 회사가 성공하는 비결은 본사의 매뉴얼을 잘 따르면서 이를 잘 받쳐주는 한국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생각 외로 쉽지 않다. 2003년, 일본에 처음 진출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엑스박스, 하지만 드라이브가 디스크를 상처 내는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에 소비자들이 항의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에 문제가 없으니 교환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문제는 일본 소비자는 디스크에 상처하나 안 내고 보관하는 성향이 짙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게 이슈화가 되어 초동대응에 실패한다. 이후 일본 지사장을 해임하고 정책을 바꿨지만 때는 늦었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사례가 월마트(Wall Mart)다. 한국 특유의 구매 문화를 반영하지 못해서  2006년, 한국 진출 8년 만에 철수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 본사 정책과 로컬 문화의 간격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닌텐도는 우직하게 본사의 전략을 그대로 들고 왔다. 매뉴얼과 업무시스템, 마케팅 전략 심지어 유통전략까지 일본의 그것과 똑같았고, 인재 채용도 이를 잘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이뤄졌다. 이래서야 괜찮을까 싶었고, 당시 기업 전략 컨설턴트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동안 본사 매뉴얼만 밀어붙이고, 본사의 고집을 꺾지 못해 고생하거나 철수한 외국계, 외자계 기업이 한 중대는 되기 때문이다. 아마 본사를 그대로 이식한 닌텐도의 실패를 예측한 사람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한국에서도 고집쟁이 닌텐도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뭣이 중 헌디? 뭣이 중 헌디?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가 일본, 미국에서 선보일 때 같이 발매된 소프트웨어는 걸작으로 이름난 슈퍼마리오 64의 이 식판이었다. 워낙 마리오의 상징성이 뛰어난 데다 작품성이 이미 검증되었고 닌텐도 DS의 기기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 발매된 게임은 ‘매일매일 두뇌 트레이닝’, ‘영어 삼매경’이라는 소프트웨어로 다른 나라와는 다른 라인업이다. 왜 닌텐도는 마리오를 진출시키지 않았을까?


이와타 사토루 사장이 신제품을 발매할 때마다 ‘가족(어머니)이 싫어하지 않는’이라는 내용의 멘트는 자주 나온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라 게임은 어머니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 학부모 특히 어머니는 보통은 자녀들이 사달라는 것에 약하지만, 때로 굳세 어질 때가 있다. 


자녀의 공부에 방해된다고 판단되면 절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여기서 닌텐도의 영악함이 드러난다. 한국 닌텐도는 마리오를 숨기고 '교육 게임'을 론칭한다. 이 론칭 타이틀 중 하나는 영어공부를 하는 게임이고 또 하나는 머리가 좋아지는 게임이다. 


교육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어머니와 어떻게든 어머니가 게임기를 사도록 설득해야 하는 아이들과의 합의점이 생긴다. 이렇게 부모들은 공부하는 게임기를 사준다. 이미 닌텐도 브랜드와 슈퍼마리오가 유명한 다른 나라에서는 써먹을 수 없지만, 게임에 관심이 없고 지식도 없는 학부모들이 많은 시장이니 써먹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게임, 단순히 게임시장만이 아니라 출판, 교육시장까지 뒤흔든 열풍이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사례에서 한 가지 더 무서운 것이 있다. 일본의 업무시스템까지 그대로 들고 온 고지식한 닌텐도가 론칭 타이틀은 망설임 없이 바꿨다. 


닌텐도는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회사다.


다른 기업들이 매뉴얼과 현지 시장의 차이점을 극복하느라 소모되는 와중에 닌텐도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른 기업들이라면 명작 게임 '슈퍼마리오'를 초기에 마케팅하지 않는다면 아마 큰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쿨하다. 본사 매뉴얼은 지키는 거고 바꿀 생각도 없다. 잘 팔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시장에서 잘 팔리는 교육적인 게임을 판매한다는 명제를 빨리 끄집어냈다. 사전 준비 9개월, 출범 6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쯤 되면 굳이 어설프게 바꾸지 않아도 무엇이 중요한지만 간파하면 걱정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다른 회사 같았으면 인기 타이틀 슈퍼마리오의 발매를 미룬다고 했다간 지사장이 본사에 불려갔을 것이다 [출처 : 슈퍼마리오64]


앞으로


저자의 PC에 한 15년 동안 모아놓은 여러 가지 사례가 잔뜩 있다. 


이 사례를 정리하고 연구하면서 느낀 건데, 안 맞는 문화를 도입하면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기업 또는 개인이 제법 된다. 물론 시도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 문화가 문제가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개선해나가는 것이 건전한 기업이 아닐까?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공부를 잘하게 만들려면 공부법을 연구해야지 잘 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따라 하면 안 된다. 이건 조직문화 및 기업전략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물론 기업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어려우니까 가장 돈이 덜 들고, 힘이 덜 드는 것을 바꾸는 것뿐이다. 


한국 닌텐도는 다른 외국계, 외자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의 특수성, 이해관계는 용인하면서 마케팅 정책을 그대로 가져오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본국이나 다른 시장에서 먹힌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났고, 그래서 닌텐도 DS는 한국 시장 최초로 100만 대 판매한 하드웨어가 되었다


앞으로 연재될 내용은 변화의 시대에 생존해 나간 이야기를 정리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 후발주자의 추격 그리고 종전을 앞두고 변화하는 시대에서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해볼 만한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첫 번째 주자는 닌텐도고 다음 내용은 역시 닌텐도다. 이 기업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는 것이 자기에게 좋은지 본능적으로 아는 기업이다. 이는 무턱대고 창의성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기업, 조직 그리고 개인에게 좋은 사례가 되리라 본다.


이메일 : ins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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