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부정하고픈 사람들
1. 조선어학회 구속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평론가 평이 '정형화된 패턴', '템포가 느리다' 같은데 많아서 조금 긴장하고 봤습니다만 의외로 제겐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이후 여러 리뷰 및 평점을 찾아보니 전형적인 평론가 평점이 안 좋고, 관객 평점이 좋은 영화더군요. 비슷한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2018)>이 있지요.
손익분기가 300만인데 첫 주에 가볍게 100만을 넘는 걸 보니 흥행은 확실할 듯합니다.
2. 이 영화의 소재인 <조선 어학회 사건>은 1942년 일본이 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을 한글 사용 금지를 어겼다는 사유로 집단으로 체포 및 투옥했던 사건입니다. '한글학회 사건', 또는 '한글학자 집단 체포 사건' 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현 한글학회에서는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지칭하고 있죠.
교과서에서 조차 다루지 않는 이 사건의 여파는 의외로 컸습니다. 사업이 중단되고 원고가 사라지는 바람에 이후 해방된 뒤 다시 작업이 시작되어 무려 1957년이 되어서야 <우리말 큰 사전>의 편찬이 완료되었습니다.
3. 사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에게 당혹감을 주기 딱 좋은 나라였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50여 개 국으로 잘라져서 싸우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강자에게 병합되면 말없이 따르는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런 방식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통치 후 수십 년이 지나면 다들 잠잠해집니다.
하지만 조선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병합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1919년 3월 1일에 3.1 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1926년 6월 10일에는 6.10 만세운동, 1929년 11월 3일에는 광주 항일학생운동 등 꾸준한 독립운동이 펼쳐집니다. 그 외에도 독립선언, 물산장려운동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운동이 계속 일어났지요. 일본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탄압하고 회유해도 세력이 줄어들지를 않아요. 나중에는 아예 해외에 기지를 세우고 독립 준비를 하기까지 합니다.
4. 그래서 일본은 본격적인 탄압을 개시합니다.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주관하에 진행된 내선일체가 진화(?)한 모습이죠. 대표적으로는 한국어, 한국사를 의무교육에서 폐지하고 일본어 교육 및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 일본식 이름을 쓰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을 주고 (어떤 분은 이에 저항하고자 덴노 쿠소야로 = 빌어먹을 천황이라고 지으셨다죠) 신사 참배를 의무화시켰습니다.
즉 일본인과 완전히 동화하라는 건데, 사실상 이게 동화라고 하기도 뭐한 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거든요. 즉 자기들 멋대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영화는 이 조선어학회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그 내용은 극장에서 보시면 되고요... 실제 사건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조선어를 쓰던 여학생을 친일 조선인 경찰관인 야스다(안정묵)가 체포, 고문하면서 우리말을 편찬하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캐내면서 터집니다.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자신들은 우리말 연구와 사전 편찬을 했을 뿐,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변론했지만 애초에 신민회 사건에서 그랬듯, 한 번 죄를 주려고 작정한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1943년 4월까지 총 33인의 한글학자들을 체포, 모진 고문 끝에 이 중 16인은 치안유지법에 근거하여 '내란죄'를 죄명 삼아 함흥형무소로 수감시켰고 12명은 기소유예 처리했습니다. 이 중 한글학자였던 이윤재, 한징은 형무소 수감 중 옥사(獄死)하기까지 했죠. 나머지 사람들은 해방이 되면서 석방됩니다.
6.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강점기 말의 다른 사건들과 함께 첨예한 논쟁에 시달리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름 저명한 작가, 학자들이 조선어학회 사건 + 조선어 탄압사건은 없었으며 일제는 조선인도 동등하게 교육시켰다고 주장을 하거든요.
하지만 이 주장들을 깰 증거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조선인 문명화론. 일본이 문맹 국 조선을 교육시켜서 일깨워줬다는 내용인데요, 이건 해방 후에 미군정이 조사한 자료에서 문맹률이 80%라는 점에서 간단히 깨집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일본의 교육>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정말 교육은 시켰어요. 그런데 그게 국어 전해 운동을 위시한 기본적인 교육에 그쳤습니다. 여기서 국어전해운동이란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를 말합니다. 최소한 공장에서 부려먹거나 전쟁터에 밀어 넣으려면 運べ(옮겨!), 突撃(돌격!) 정도는 알아먹어야 하니까요. 즉 소모품으로 쓰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만 시킨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조선어학회 사건은 생각 외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친일파가 그렇게 덮고 싶어 하는 사건 중 하나기도 하지요. 애초에 조선어학회 사건을 수사한 인원 8명 중 5명은 조선사람이었거든요.... 뭐 덮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심지어 영화의 시나리오는 원래 픽션인데도 영화에 있었던 일은 허구라며 조선어학회 체포 사건도 허구라는 글도 보이는 판인데요.
그래서 어느 게 진실이냐고요? 여러 박물관에는 당시 조선어를 썼다고 구타당하거나 순사한테 끌려간 사람들의 증언이 동영상으로 남아있으며 심지어 당시에 이를 겪으신 분들이 아직 살아계십니다. 게다가 사건 정황 및 기록자료 맞춰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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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