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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Feb 12. 2019

왜 독립운동은 이제서야 조명받는가

[3.1 운동 100주년 특집 (프롤로그)] 

경향신문 테스트: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1. 얼마전 경향신문에서 나는 어떤 독립운동가였을까? 하는 테스트를 했습니다. 저는 74.5%의 확률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나왔고 54.5%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나왔네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본론, 결과가 재미있어서 주변에 좌악 뿌렸는데요, 많이 들리는 이야기가 우리가 모르는 독립운동가가 너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결과를 보니, 저도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았네요. 


왜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분들이 많을까요?


2. 1945년 8월 15일, 일본 히로히토 천황이 항복을 발표하자 한국에 있던 일본인들은 큰 불안에 떨었습니다. 물론 수십년간 잦아들기는 커녕 더욱 거세지고 조직적이 되어가는 독립운동, 조선인들의 반발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의 국제정세에 대한 개념상, 무주공산이 된 한반도를 점령할 것은 1907년 일본에게 수모를 당한 '러시아'가 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전한 철수를 위해 여운형에게 '철수할테니 그 동안 일본인을 학살하지 말아달라'고 조건을 걸고 여운형은 이를 수락하지요. 


하지만 상황은 또 바뀌고 바뀌어 북측은 러시아가 장악하고 남측은 일본에게 승리한 미국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독립을 인정한다는 카이로 회담의 결과마저 무시한 결과였지요 (무려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인정했거늘). 


그러자 일본은 태도를 바꿉니다. 여운형과의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일본에 붙어서 친일을 하던 세력의 뜻이기도, 미국의 주차군 사령부인 GHQ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친일파는 어떻게 든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했고, 미국은 도저히 파악조차 안되는 점령지 조선의 사정을 잘 아는 일본관료 + 친일파 조선인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독립운동가가 지금 받는 이유는 정치논리에 다름 아닙니다


3. 광복이 이뤄졌지만 독립운동을 한 그들을 위한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의열운동의 주축이자 의열단의 수장, 1925년부터 대중적 무장투쟁 운동을 주도한 약산 김원봉은 친일고문경찰인 노덕술이에게 뺨을 맞는 것을 시작,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북으로 도피합니다. 이후 미국의 매카시즘의 영향을 받은 반공논리를 정권이 잡음으로써 그는 독립운동가는 커녕 입에는 담아서도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2019년에도 서훈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것도 조부가 친일행위로 유명한 국회의원이 주도하고 있죠.


약산 김원봉이 천만 영화에 나온 건 이게 최초 아닐까요? <출처: 암살>


김구 선생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60~70년대에 출간된 책에서는 '빨갱이'로 표기된 책이 많았습니다. 그가 남북분단을 막고자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북한에 간 사실이 있고, 결국 정권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영화 밀정으로 유명한 김시현(영화상에선 김우진)도 이승만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이유로 인해 서훈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놓고 친일행적이 밝혀진 사람들도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판에, 유관순 열사처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YTN의 조사에 의하면 아예 3.1 운동 유공자 중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의 비율이 30%도 안됩니다.


사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똑똑해서 그런지 일부 국가들과는 달리 반민족 행위자가 사회전방위를 아우르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않아요. 조상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변호하는게 고작입니다. 하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그들이 뭉쳐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차지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업적조차 알려지지 못한 채 사그러 들어버렸죠.


4. 저는 작년 말에 <조선 리더십 경영>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책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역사속 인물을 현대의 관점에서 분석, 우리가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지침을 만든다.


였습니다.


그래도 책이 제법 팔린지라 2권을 궁리하던 중에 제법 모아둔 자료가 많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었어요. 마침 올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을 기념하기에 적절한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정치논리, 이념의 논리로 헌신조차 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 이건 원균이 이순신 제독보다 윗선인 선무 2등공신이 된 것 이상으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나라가 바로서려면 이런 것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봐주시길.


이메일: inswrite@gmail.com

브런치: https://brunch.co.kr/@hdyoon

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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