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잘 살면 안 될까요?
<본 글에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화제의 영화 <기생충>을 봤습니다.
확실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 마니아가 전율할만한 영화 같아요. 황금종려상을 받을만합니다.
물론 제 취향은 아닙니다. 시계를 자꾸 보게 되더군요. 하지만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영화이기도 합니다.
언론, 미디어는 이 영화는 빈부격차로 인한 모순을 그리는 영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빈부격차가 소재긴 하지만 이 모순을 다룬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는 영화예요.
기생충은 <선(線)>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다루는 평론의 방향성은 각기 다릅니다. 하지만 모든 평론이 이 선을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잠깐 스쳐가면서 일부분이 나와서 잘 모르지만 영화 중반, 가족들의 반지하방이 침수가 되자 그 집의 가훈이 비로소 나옵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성공의 꿈, 신분상승의 꿈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봉 감독은 사람과 사람이 대할 때는 선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모두 몰락합니다.
반 지하 가족
- 아들은 과외선생이면서 미성년자 학생의 손목을 잡습니다. 그리고 사생활이 담긴 일기까지 손대죠.
- 딸은 기존 구성원들을 해고한 후 자기 가족들을 집어넣기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지릅니다.
- 엄마는 자신이 지켜야 할 집에 가족들을 들였다가 문제를 키웁니다.
- 아빠는 자꾸 고용주에게 부인의 사랑에 대해 묻더니 이젠 사모님의 손까지 덥석 잡습니다.
- 애초에 과외 알바를 소개해 준 친구도 가르치는 아이와 사귈 거라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선을 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부잣집 가족
- 부잣집 딸은 선생을 연애 대상으로 삼습니다.
- 부잣집 아들은 친한 사이끼리도 이야기하면 실례가 되는 최대 금기인 사람의 냄새를 언급하질 않나
- 부잣집 사모님은 냄새나는 맨발을 앞좌석에 걸쳐놓지를 않나, 주기로 한 급여를 반절하지를 않나
- 부잣집 사장님은 사람을 상대하면서 코를 틀어막지요.
가정부 가족
- 가정부의 남편은 지하에 숨어 살 되, 절대 밖으로 나와선 안되는데도 나오는 바람에 한 아이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겨줍니다.
- 방공호에 사는 여자는 사모님을 깨우거나, 이야기를 엿들을 때부터 선을 넘더니 결국 이미 넘어선 선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음을 실토합니다.
그 외
- 젊은 운전수는 딸의 집을 직접 물어봅니다. 개인 사생활의 선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을 넘습니다. 그렇게 서로서로를 상처 주고 이것이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영화는 계속해서 선을 넘지 말 것을 말합니다.
- 가족들이 남의 집에서 술파티를 하다 도망쳐서 반지하 집으로 가는 영상은 무수한 선의 향연입니다. 그들이 무수한 선을 넘어왔음을 대변합니다.
- 반지하에서 수해가 났을 때 변기에서 오물이 나옵니다. 이것도 일상의 선을 넘어선 불청객이죠. 딸은 이를 억지로 틀어막습니다. 그 표정으로 볼 때 본인도 선을 침범당한 게 불쾌한 모양이군요.
- 부잣집 사장은 운전기사가 뒤로 넘어온 것이 불편하다, 나는 선을 넘는 사람이 싫다, 이건 일의 연장이다라는 식으로 선에 대해 계속 강조를 합니다.
- 친구들이 왔을 때 부잣집 사모님은 벤츠만 나갈 수 있으면 되니까 너희 차(BMW 쿠페)는 대충 넣으라고 말합니다. 그녀도 사람을 선을 그어 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 그 이어서 나타난 친구는 모범택시를 타고 왔군요. 부잣집 사모님이 만든 선에 자신을 맞추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사람들은 선을 넘어서는 바람에 파국을 맞는군요. 선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부잣집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고 있었습니다. 냄새를 언급하고 그 딸을 조롱하더니 결국 코를 틀어막는 바람에 죽는군요. 단 그렇게 사람을 죽인 남자, 본인이 선을 넘었습니다. 그 냄새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그가 선을 넘어서 고용주의 집에서 고용주의 술로 술파티를 한 것이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을 넘지 말라고 말이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선을 넘어서서 일어납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선을 지키면 될 것을 그의 인격까지 침범하는 바람에 갑질이 일어납니다. 한 공무원은 일만 잘하면 될 것을 선을 넘어 공공기관에 있는 정자를 떼어 자기 집에 가져다 놓는군요. 심지어 누군가는 대통령의 지인이라는 선을 넘어 대통령을 통제하는 실세가 됩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창궐합니다.
봉 감독은 단순히 빈부격차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같이 잘 살자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기서 <같이 잘 살자>는 것은 우리 모두 부자 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서로 인격으로 존중하고 선을 지키자는 겁니다. 선을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일도, 부정한 방법으로 약탈을 할 일도 없으니 약자에 대한 선을 넘은 증오도, 갑질도 일어날 리가 없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 빈부격차는 다 선을 넘어가서 생기는 행동임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제는 선입니다. 처음의 수석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선으로 가득 찬 이야기군요.
이런 메시지 전개는 그야말로 황금종려상에 걸맞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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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