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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Nov 01. 2019

<날씨의 아이>에서 희생자들의 절규를 듣다

이 영화가 주목받던 이유


<너의 이름은.>으로 대한민국에 재패니메이션 붐을 일으켰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 외적인 면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이유는 한일관계입니다. 아베 정부의 명분 없는 무역규제로 인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 영향력은 엄청나서 일본 여행은 작년 동기 대비 57% 감소, 유니클로는 작년 동기 대비 매출이 61% 감소 (출처: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 일본 맥주는 무려 99% 수입이 감소되었습니다. 


이게 애니메이션에도 여파를 미쳤습니다. 초 인기 작품인 <도라에몽>은 개봉 연기, <명탐정 코난>, <엉덩이 탐정>은 흥행 참패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영화업계 전반에 앞으로 일본 영화가 과연 히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솟아난 거예요.

그래서 영화 관계자, 배급사는 이 작품을 주목하고 있어요.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이 한국에서 371만 명으로 대 히트를 쳤거든요. 이 작품마저 흥행하지 못하면 일본 영화는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는 한 흥행 불가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는 겁니다.


우선 보고 온 지인(영화 관계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흥행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전작의 열화 자기 복제에 가까운 작품이며 영상과 음악만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네요. 사실 그런 영화가 흥행한 적이 없는 건 아니죠.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QUEEN과 비교할 수 있나요.


저는 정확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에요(제가 준비하는 책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온 지인에게 물어보고 확신을 얻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출처: 날씨의 아이 홍보 페이지>


햄버거 사회

최근 히트하는 영화, 아니 문화 콘텐츠 들은 유난히 빈부격차로 인한 그늘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이 연이어 히트하고 있어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등이 그런 영화죠. 빈부격차로 인해 나눠진 세상을 보여주고 이 계층이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씨의 아이도 이 테마, 빈부 격차를 그대로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거든요.


<날씨의 아이>는 정크 푸드에 기뻐하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호타카와 히나가 가난한 것도 <너의 이름은.>과 다른 요소입니다. 사회가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이죠. 

일본은 가난해졌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는 게 당연한 사회예요.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살던 집은 꽤 살기 좋은 일본식 고택이에요. 그때는 그걸로 좋았죠. 하지만 <날씨의 아이>가 만들어진 시대는 다릅니다. 지하철 선로 옆의 집은 기본이고 PC방에서 노숙하는게 일수에요.

<너의 이름은.>은 팬케이크에 기뻐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정크푸드에 기뻐하는 이야기예요.



팬케이크가 정크푸드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빈부격차를 다룬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서민 경제는 위험 수준입니다. 아니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험합니다. 국채를 발행해서 버텨오지만 국채 금리가 -0.2%로 떨어지면서 이것도 한계가 왔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세를 10% 올렸고 조만간 3년 내에 14%로 인상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소비세가 5%에서 8%로 오른 게 2013년, 즉 10%로 오른 게 불과 6년 만인데 평균 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 대였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어른들은 도쿄가 훌륭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도쿄의 인프라를 활용해서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준생인 '스가 나츠미'는 일자리를 잡지 못해 고생하고 있습니다.


네? 지금 일본은 고용률 100% 아니냐고요? 그건 잘못된 기사입니다. 최소한 모든 단면을 보여준 기사가 아닙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수입은 천지 차고 그나마 정규직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물론 정규직이 되면야 선배들보다 높은 초봉으로 입사가 가능하지만 그 사람들의 비중은 40%도 되지 않습니다. 


이게 아래로 내려가면 더 비참합니다. 한 달에 숙식제공 3천 엔에 부려 먹히는 호타카,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미성년임에도 나이를 속이고 유흥업소에 뛰어들려고 하는 히나 (미수였지만)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젊은 사회에게 짐을 지우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너의 이름은.>은 달랐어요. 운석이 떨어져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도 다시 일어나자는 희망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너의 이름은 에서 비치는 도쿄가 아름답고 활기찬 사회였다면 날씨의 아이에서의 도쿄는 전혀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닙니다(매일 비 내리는 날씨를 통해 묘사됩니다).

 

일본 사회는 젊은 세대를 희생시키면서 버티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답습하는 암울한 사회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암울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어린 소녀 히나를 희생시켜서 안정을 얻으려던 어른들의 시도가 실패했거든요. 결국 도쿄는 3년 내내 비가 내려 반이 잠겨버리는 암울한 도시가 됩니다. 이는 장기불황,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사회로 인해 병들어가서 구제받지 못하는 일본 사회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외치죠. 

어린 사람을 희생시켜서 버티는 (일본) 사회라면 망해버리는 게 낫다. 



후쿠시마의 눈물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른들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라면 400% 강수량을 기록하는 도쿄는 암울한 자연재해 그 자체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감독은 전작에서 거대한 재앙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그래도 살아나가자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하는 말은 다릅니다.


소수의 사람들을 희생시키느니 그냥 버텨나가자.

아베 정부는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이미지를 떨궈내고 싶어 합니다. 그 순간 일본은 우수한 기술을 가진 국가, 훌륭한 시스템을 가진 국가, 건강한 국가라는 이미지 모든 것을 잃어버렸거든요.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원전 사고를 수습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지역에 주민들을 돌려보내서, 올림픽 선수들에게 그곳의 농산물을 먹이고 야구 경기를 벌여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외국 선수들이야 단기 피폭이니 빠져나갈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평생을 살아야 할 주민들은 어떻게 되나요?


체르노빌은 30년, 영국은 60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불과 8년 만에 완전 복구가 될 리 있나요? 


신카이 감독은 말합니다. 


다수의 주민들의 마음의 평온을 위해 후쿠시마 주민들을 희생시키지 마라

정부는 후쿠시마를 부흥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후쿠시마가 자급자족해야 원전 사고 처리비용을 지자체가 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먹어서 응원하자>며 후쿠시마 농산물 사 먹기 캠페인을 벌입니다. 전 세계에 후쿠시마는 완전히 수습했음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을 돌려보냅니다. 이렇게 본인들의 권력을 위해 소수를 당연한 듯이 희생시킵니다. 감독은 이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지 말합니다. 그리고 말하죠. 


그냥 받아들이자고, 소수를 희생시키지 말자고.

정신 차려라 어른들

지금 일본 정부의 정책은 결코 제대로 된 게 아닙니다. 권력자의 정치적 이익과 이해관계자의 이득을 위해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후쿠시마 주민들을 죽음의 땅으로 몰아넣고 있어요. 그런 암울한 상황, 이기적인 인간의 아집이 이 작품에선 그대로 배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렬히 비판합니다. 다만 영화 전체적인 평을 보니 감독이 아직은 서툴렀나 봐요. 


너의 이름은 에서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스쳐가면서 서로를 못 알아보던 시기는 2021년, 이 작품의 배경도 2021년입니다. 그때 희망을 노래하던 감독은 지금은 일본의 절규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는 일본의 정치인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도 좀 봤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절망적인 상황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미 올라선 곳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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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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