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본 졸업 09화

4. 와(和): 일본인의 족쇄 2편

by 지식공장장

‘와’가 일본에 끼친 영향

‘와’의 실체는 권력을 지지하는 부품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튀는 사람을 잡아 누르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250년간 에도 막부가 권력을 유지한 비결이었고, 변혁을 주장한 메이지 정부도 이를 계승하여 사회를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니 이런 시스템이 오늘날의 일본에 계승되었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21세기 일본에서 ‘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신분제가 법적으로 사라진 일본에서도 와는 조직의 규율을 벗어난 구성원을 앞다투어 배제하여 권력자를 키우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무라하치부(村八分)란 단어가 있다. 열 가지 풍속 중 여덟 가지를 배제한다는 뜻으로, 집단의 <와>를 깬 대상을 배제하는 풍속이다. 만약 집단의 규율을 어긴다면 화재, 장례를 제외한 출산, 병간호, 성인식, 결혼식, 집수리, 수해, 명절, 여행 등을 도와주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메이지 전까지 ‘구니(国)’로 나뉘어 졌다는 걸 감안하면 한 국가에서 개인이 버림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일본은 개인의 능력, 자격보다는 집단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인은 집단밖에 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리고 구성원이 집단에서 튀는 것도 싫어한다. 집단의 평화를 깨는 것은 터부시 되는 행위이며 이런 일련의 행위는 ‘민폐(めいわく 메이와쿠)’로 간주된다. 민폐를 끼쳐서 집단의 와를 깨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제제가 이뤄진다. 이게 그 유명한 ‘집단 괴롭힘'이다.


집단 괴롭힘은 다수의 와를 깬 '소수자'를 처벌함으로써
소속 집단의 결속력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회 현상은 5~10년 주기로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당연히 집단 괴롭힘도 일본에서 수입되었다. 목적은 권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다만 양상이 살짝 다르다. 한국의 경우 집단 괴롭힘의 배경에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권위의식, 경쟁이 있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 자신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권력과 힘을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왕따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상대적으로)가난한 사람, 해당 조직에서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 자기에게 반항할 수 없는 대상을 괴롭혀서 힘을 과시하여 힘을 확인하고, 그 힘을 인정받으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설령 갑이더라도 조직의 분위기를 깬다 싶으면 괴롭혀서 배제하려고 한다. 현재 일본의 지존이라는 나루히토 덴노의 딸, 일본의 공주인 ‘아이코(愛子) 내친왕’조차 학교에서 괴롭힘 당할 정도다.


2.jpg 차기 왕까지 따돌리는 보통이 아닌 국가...?


그런데 만약 이 괴롭힘을 누군가 방해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의 경우는 우열을 확인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방해자가 자기보다 갑이라면 왕따를 멈춘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그 사람에게 어지간한 역량과 힘이 없다면 ‘와’를 무너뜨리는 이물질로 간주, 새로운 먹이감이 된다. 시스템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이때 괴롭힘에서 보호받은 사람은 어떻게 할까? 자기를 지켜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을까?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무리에 섞여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다시 괴롭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이 상황을 조직 시스템에 다시 들어가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와’, 조직을 중시하는 행동이 꼭 부정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사회 질서를 지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거리를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좌측통행, 우측통행 구분이 없다. 앞에 사람이 느리면 좌측으로 넘어서 가로질러간다. 거리에서 우측통행 마크를 당당히 밟고 좌측 통행하는 사람은 이제 희귀한 대상도 아니다. 도로는 말할 것도 없다. 단속카메라가 없으면 파란불에 가속 페달을 밟는 운전자가 부지기수다. 좌/우회전 깜빡이를 안 켜는 사람이 많아서 차량의 움직임을 신호가 아닌 움직임으로 파악해야 한다. 지하철 역에는 통행방향이 분명히 표시가 된 곳이 있음에도 그냥 자기 편한대로 밀고 들어온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사람들이 통행 방향을 철저히 지킨다. 개인적으로는 도쿄 시부야의 교차로가 인상깊었다. 신호가 바뀌자 모든 차량이 정지선에 칼같이 맞춰 서고 사람들이 신호에 맞춰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호가 끝나면 사람이 빠지고 일제히 차량이 움직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일본이 보통 이렇다. 심지어 공중도덕이 잘 안 지켜진다는 오사카의 쇼핑가도 사람들이 열을 맞춰 걷는 판이다. 조직을 중시한다는 것이 장점이 되는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빛과 어둠이 있듯이 일본의 ‘와’도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5C6C284A82DD7A60.jpg 신호에 칼같이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시스템의 양면성

요즘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꼭 필요한 스트레스가 ‘엄마 커뮤니티’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정보와 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다. 정시 퇴근은커녕 야근이 일상적이라 이런 커뮤니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정보는 물론 아이가 무리에서 멀어지는 효과가 생긴다. 만약 속 좁은 엄마

의 질투라도 산다면 더 피곤 해진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같은 경제시스템을 사용한 국가들이 다 겪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문화, 원조가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이것이 유아시절부터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이른바 ‘공원데뷔’라는 문화다. 일본에선 새로운 지역에 이사가면 소위 공원데뷔라는 그 지역의 시스템에 신고식을 해야 한다. 만약 이 신고식을 하지 않으면 혼자 살면 몰라도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면 상당히 피곤한 일이 벌어진다. 커뮤니티가 아이 옷의 공유부터 장난감, 학습도구, 육아용품을 물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급한 사정이 있을 때 아이를 맡아 주기도 하는 요람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병원 검진이라도 받으려면 그 동안 아이를 맡겨야 할 것 아닌가?


데뷔도 보통 일이 아니다. 막상 공원에 가보면 어머니들의 파벌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이 중 한 파벌에 속하면 나머지 파벌의 엄마는 가볍게 목례는 받아줄지 몰라도 절대 상대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엄마와 아이가 살아남는 일은 그 두목 엄마에게 절대 충성하는 것뿐이다. 만약 두목엄마의 눈 밖에 나서 조직의 눈 밖에 나면 행동은 물론 금전면에서도 부담이 생긴다. 즉 리더의 눈 밖에 나면 밀려나면 육아고통이 극이 되는 것이 일본 사회다. 다른 조직에 가면 안되냐고? 어림도 없다. 두목의 신뢰를 잃는 순간 그 엄마와 아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외톨이가 된다. 두목에게 충성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무리한 요구가 있더라도.


이렇게 옹알이를 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본인은 조직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잘 나타내는 비극이 있다. 2016년, 일본 최대의 글로벌 광고기업, 일본청년들이 취업을 꿈꾸는 선망의 대기업 ‘덴츠(電通)' 의 신입사원인 다카하시 마츠리(高橋まつり)씨가 입사 1년만인 24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배경에는 잔업시간이 무려 정규 근로시간의 약 170%인 105시간, 하루 수면시간이 고작 2시간인 지옥 같은 직장생활이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카하시씨가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회사와의 계약관계는 퇴사통지로 인해 종료된다. 처자식이 딸린 중년이라면 모를까, 20대 초반의 도쿄대를 나온 재원이면 다른 직장 구하는 건 일도 아니니 퇴사하고 다른 기업에 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일본 사회에선 힘들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채용문화 시스템이 있다. 일본의 ‘와’는 안정적인 성장과 매출을 꿈꾸는 기업에도 침투해 있는 것이다.


그녀를 옭아맨 것은 신입연령에 관한 조항일 것이다. 한국의 경우 졸업 후 1~2년내가 아니면 대기업의 신입이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TV뉴스에서 모 대기업 인사팀이 직접 밝혔던 내용이다. 일본은 더 엄격하다. 일본은 징병제가 없다. 그래서 남녀 졸업연령이 같다. 안정적인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기업은 이 나이를 기점으로 일정수준의 인재를 뽑아 일정기간에 따라 교육, 훈련, 현장투입을 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렇게 자사에 맞는 평준화된 인재를 예측이 가능한 범위내에서 양성한다. 당연히 예측이 불가능한 인재는 배제된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MBA를 나왔다고 급여, 직위는 고사하고 채용에도 가산점이 붙지 않는다. 자신들이 정한 규격밖의 스펙이니까.


그러니 이런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적어도 졸업 후 바로 취업해야 하며 늦어도 1년을 넘으면 안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좋은 기업엔 취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구직자들은 철저하게 시스템에 맞춰 움직인다. 취업시즌이 되면 남녀 공히 ‘리쿠루트 슈츠’라는 것을 맞춰야 한다. 남성과 여성을 위한 검은색 정장, 하얀 와이셔츠를 말한다. 남성은 검은 구두, 여성은 살색에 가까운 옅은 스타킹 등의 기준이 정해져 있으며 이 이외의 복장을 입으면 사실상 채용에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일본의 이런 채용시스템은 용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회사근무를 한 사람을 ‘경력직(經歷職)’으로 채용한다. 외국에서는 ‘Experience, Career’로 표기한다. 지금까지 해온 ‘경험’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경력직은 중도채용(中途採用)이라는 말을 쓴다. 회사 생활을 도중에 멈춘 사람을 채용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경우 정말 회사가 필요로 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마침 그 회사의 시스템이 위협받을 만한 인재가 퇴사하지 않는 한 심지어 종신고용이 사라진 지금 일본에서도 새 기회를 얻기는 힘들다.


만약 마쓰리씨가 덴츠에서 퇴사하고 새로 구직활동에 나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적어도 덴츠정도의 회사에 입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그녀는 일본회사의 신입기준에서 벗어나서 채용시스템에 맞지 않은 인재가 되기 때문이다. 퇴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조직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결격사유 = 시스템 부적응자라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채용 시스템에서 퇴사는 그녀 기준에서 인생자체를 무너뜨리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 사회의 부작용이다.


안정된 시스템은 외부자극이 강하면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그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이야 해외의 신 문물이 배를 타고 수개월, 수년에 걸쳐 전달되었지만 요즘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수초만에 전달되며 이것이 SNS라는 쌍방향 교신수단을 통해 순식간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식의 수명이 짧아지는 바람에 기술의 수명이 짧아지고, 기존 권력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대표적으로 언론, 미디어, 출판이 그 희생자 되겠다.


안정된 시스템을 추구하는 일본은 그런 혼란을 겪을 때마다 무너진 경우가 많다. 강력한 세력이 정해진 전국시대는 노부나가의 철포 부대로 인해 흔들렸고, 250년 철통권력을 휘두른 에도 막부는 미국의 흑선이 쏜 ‘공포’ 몇 발에 항복선언을 했다.

무균실에서 자란 생물이 외부 세균에 지나치게 취약하듯
강한 시스템은 외부 자극에 턱없이 약하다.


일본이 현재를 발전시키는 개선에는 강하지만 미래를 만드는 개혁에 약한 이유는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전을 위해 시스템부터 탄탄하게 만들어 놓고 시스템을 위해 발전을 포기하는 역사를 밟아왔으니까.


일본취업-덴츠-768x1024.jpg 아예 야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 최대광고 덴츠의 위용. 정부기준 블랙기업에 분류되었음에도 이런 사풍을 바꾸지 않았다.


시스템에 종속된 사회

한국 사회는 식민지배의 여파가 아직 남은 탓인지, 이 식민지배의 수혜자가 아직도 권력을 유지하는 탓인지 유난히 일본을 띄우고 한국인을 깔아 내리는 문화가 강하다.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일본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는 이야기, 회사, 조직에서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살할 정도로 책임감이 뛰어난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듬뿍 담긴 책과 글이 한 두건이 아니다. 물론 한국 작가가 한국에서 출판한 책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일본인이라고 별 것 없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시스템에서 벗어났을 때의 충격이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스템에 벗어났을 때 받는 타격은 한국보다 높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필사적이다. 일본에는 ‘KY’라는 말이 있다. KY는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空気を読めない)’는 일본어의 발음을 딴 약자로 개인이 사회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헛도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시스템을 못 읽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다.


일본인은 조직의 의도를 항상 읽어가며 행동한다. 심지어 여고생이 다쳐서 쓰러진 채로 도움을 청하는데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사건도 있다. 일종의 공기읽기다. 그들은 매순간 공기를 읽을 것을 강요받는다. 보통 핸드폰은 전화를 거는 게 주목적 아니던가. 그런데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기사가 날 정도로 그들은 분위기 파악을 열심히 한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의 소설 정의파(正義派)는 아이가 지하철에 치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가관이다. 기관사와 회사 그리고 경찰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이를 우발적인 사건으로 몰고간다. 원인을 밝혀내서 다음 사고를 막기 보다는 사고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야, 부주의했던 철도회사와 안전조치에 미흡했던 경찰이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야 조직의 안정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한 선로 인부가 기관사가 브레이크를 늦게 밟은 것을 증언한다. 이렇게 밝혀진 진실, 하지만 인부들에게 돌아온 것은 오랜 시간 동안의 가혹한 취조 및 쓸데없는 일을 벌였다는 주위의 따가운 비난이었다. 이걸 보고 일본인들도 참 너무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 남 말할 것 없다. 한국에서도 내부고발자는 가혹한 시련에 내몰린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기행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단순한 일본에 대한 비난이 아닌 반면교사를 삼아야 하는 이유다.


때로는 너무 공기를 읽으러 들어서 곤란해지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최근에 문제가 되는 ‘알바테러(バイトテロ)’ 다. SNS가 활성화되는 일본에서는 바캇타(バカッター)라는 현상이 있다. 이는 바보(バカ)와 트위터(ツイッター)의 합성어로 자신이 속한 폐쇄형 SNS(한국의 단톡방)에서 주목을 받아서 집단 시스템에서 소속감을 확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는 이게 사회 테러의 영역까지 넘본다는 것이다.


2018년 일본 오사카 북부의 모리구치 아울렛에 있는 스시 체인점 ‘쿠라스시’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생선을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도마위에 올려놓고 칼질하는 영상이 SNS를 강타했다. 이렇게 그들은 단톡방 주목을 넘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기업에게는 재앙이었다. 이 영상 때문에 쿠라스시의 시총은 하루만에 1.95%, 약 300억이 증발해버렸다. 매출은 물론 환산할 수 없는 브랜드 이미지 손상마저 입었다. 결국 사건의 장본인들은 대기업 법무팀에게 억대 민사소송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다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방 체인점 빅 에코(ビッグエコー)에서 튀김을 바닥에 문지른 후 그대로 튀겨서 고객에게 제공하는가 하면, 패밀리 마트의 직원은 파는 오뎅을 입에 넣었다가 도로 집어넣는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가 소속감 때문만은 아니다. 낮은 급여에 대한 불만, 교육문제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하지만 굳이 이를 영상증거로 남긴 이유는‘공기를 읽어서 주류에 편입하겠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BBTPnAW.jpg 한 가게를 무너뜨리고, 일가족을 실업자로 만들고서도 사과 한 번 없었다는 가해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시스템

그렇다면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시스템을 변혁하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일본 사회에선 변혁은커녕 혁신조차 어렵다. 의존도가 높은 만큼, 내부 저항이 만만찮은 것이다. 당장 앞에서 말한 ‘덴츠’만 해도 다카하시씨 자살 사건 이후 정부/민간이 만든 블랙기업 리스트에 오르고 사장이 사임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는데 가혹한 근무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당히 유지하는 판이다 .


일본에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만든 사람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행위마저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생보호법’이다. 이 법은 2차 대전 때 제국주의 국가들이 열성적인 유전자를 배제한다며 앞다투어 실시했던 법의 일본판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나치가 장애인을 학살하기 위해 만든 ‘T4 프로그램’이 있다. 문제는 다른 나라가 세계의 눈을 의식하고 2차대전 이후 이런 법을 폐지한 반면 일본에서는 이 법이 무럭무럭 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1996년까지 48년간.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정부가 유전자검사를 했을 때 열등한 유전자가 발견되면 강제로 불임수술을 하는 법안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과했다. 이 시스템을 위해 불법과 편법이 거리낌없이 동원된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불임처리를 해야 하니 수술의 목적을 거짓말로 말하거나, 강제로 해도 좋다는 조항까지 만들 정도였다. 때문에 8~9살 때 동의없이 강제로 수술을 받아서 자신이 왜 불임인지 모른 채 결혼한 사람마저 나왔다. 이렇게 G7에 들어가는, OECD상위권에 들어가는 나라에서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법이 운영되었다.


이렇게 48년간 법이 운용되는 동안 2만 5천여건의 불임시술이 이뤄졌다. 동의없이 실행된 것은 1만 6천 5백건이었다. 수술대상자 중 총 70%가 여자였다. 보육원에서 원아들 간의 성관계로 인한 임신을 막기 위해 쓰기도 했다. 한센병 등 질병을 겪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일본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서 벗어난다면 수술대상이 되었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말살하는 법이 태연히 시행되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시스템이 국민의 권리를 말살한 순간이다.


그만큼 일본에서 ‘와’를 지키기 위해 만든 시스템은 강력하다. 심지어 이 법이 96년에 밝혀져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음에도 없애지 못하고 모체보호법(母体保護法)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시행될 정도면 말 다 했다.


변혁, 혁신에 대해 “전례가 없던 일이다”라며 거부하는 것은 어느 사회나 안고 있는 부조리다. 그래서 사회의 발전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투쟁할 때 비로소 이뤄진다. 정부의 부정에 목소리를 내야 하고 사회의 악습에 발벗고 나설 때 비로소 사회가 발전한다.


그런데 과연 일본이 그런 사회일까? 아니라고 본다. 사회 구성원을 위해 만든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을 위해 사회구성원을 희생시키는 것이 일본사회이며, 이에 대해 쉽사리 변혁, 혁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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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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