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본 졸업 11화

2. 입신양명의 꿈: 출세하지 못하는 사회

by 지식공장장

일본이 <부흥>을 그리워하는 이유.
하지만 <부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

요즘 한국사회, 아니 국제사회의 주요 키워드는 신분의 고착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사실상 신분이 나눠진 사회, 그 신분끼리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슬픔을 다뤘다. 이는 이미 문화 트렌드가 되어 영화 <조커>, <날씨의 아이> 등에서 다루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국가에 비해 국민이 가난한 일본, 그들에게도 성장하고 싶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제약이 가득한 사회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한 번 사회가 정해준 레일에 타면 다른 레일로 바꿔타는 것이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왜 일본은 그런 사회가 되었을까? 그런 사회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인간은 나은 미래의 꿈을 꾸는가?

요즘은 아니라고 하지만 서점을 둘러보거나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성공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자기개발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키워드만 제공하여 판매할 뿐
그 키워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자기개발서의 원조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자기개발서 왕국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하는데 선수다. 워낙 출판 시장이 발달한 나라인지라 (인구 1%만 책을 사도 약 120만부, 문해율도 전 연령층이 다 높다) 시장에 맞는 마케팅만 잘하면 판매가 보장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퀄리티까지 보장되는 건 아닌지라 대부분 ‘당신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다!’만 짚어주고 만다.


자기개발서가 잘 팔린다는 것은 자기 환경을 개선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뜻도 된다. 안 좋은 현실을 변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도 되겠다. 이런 욕구는 일본의 경제성장 정체를 나타내는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을 넘어 30년을 향해가면서 더욱 강해졌고, 결국 의외의 인물이 수혜를 입었다.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일본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어도 공교육 시스템을 거친 한국인은 풍신수길, 가등청정, 소서행장 트리오에 익숙하다. 각각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로 임진왜란때 한국을 침략한 사람들이다. 그 중 리더인 히데요시는 한국 사람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사람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조차 히데요시의 악행은 세세히 알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히데요시가 한 때 일본에서 좋아하는 위인 1위를 차지했었다.


Toyotomi_hideyoshi.jpg

재미있는 것은 히데요시가 일본에서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 임진왜란의 비중은 엄청나다. 스토리도 재미있고 이후 조선의 국력이 크게 꺾인다는 비극성, 이로 인해 훗날 청나라, 일본에게 수탈당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순신이라는 불멸의 영웅도 나왔다. 여러모로 영웅담에 어울리는 스토리가 아닌가.


일본에선 반대다. 그들의 역사교육은 엄밀히 말하면 사회구성원으로써 일본인으로써 자긍심을 심어 주기 위한 교육에 가까울 뿐, 과거를 반성하여 미래로 나아간다는 기능은 없다. 당연히 임진왜란의 비중도 적다. ‘히데요시가 추진한 조선 정벌이 분로쿠의 에키(文禄の役)라는 정도로만 배운다. 역사에 관심이 좀 있는 일본인은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서 몰락한 권력자로만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대체 무슨 계기로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패자(敗者)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일본사회의 속성을 아는 입장에서 궁금할 따름이다.


일본 최고가 된 히데요시, 하지만 그의 권력은 불안했다. 우선 정적이 많았다. 서부의 강자 모리 모토나리(죠슈), 시마즈 요시히로(사쓰마)도 문제였지만 라이벌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는 얕볼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히데요시는 국가가 사회 시스템에서의 역할을 정해주는 법을 만들었다. 이를 ‘인소령(人掃令)’이라 한다. 무사가 상업, 공업, 농업에 손대는 것을 금하고, 농민이 농업 이외의 것을 하는 것을 막았다. 무기도 빼앗았다. 이는 조선의 양반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업을 제약하고 농업을 진흥한 것과 마찬가지 행위였다.


이렇게 1차적으로 자신과 같은 행운아가 두 번 다시 안 나오도록 막아 둔 히데요시는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 방법을 찾는다. 결국 그가 택한 길은 조선 침공이었다.



조선을 침공한 이유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한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앞서 말한 일본의 기록문화특성상 절대자인 히데요시가 말을 안 하면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와 인간의 습성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몽골의 침입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은 적이 있다. ‘가미카제(神風)', 신의 바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재지변이 알아서 외적을 무찔러준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외적을 막았으니 좋아 보이지만 문제는 사무라이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일본 같은 봉건국가의 균열은 ‘보상' 에서 일어난다. 적이 침입한다고 해서 전쟁에 동원 해놓고서 알아서 자멸했으니 보상이 없다고 하니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가마쿠라 막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일본인은 다른 건 몰라도 경제문제엔 민감하다.

히데요시는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을 죌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뭔가 먹여줘야 했다. 문제는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 나눠 줄게 없었다는 것이다. 땅도, 재화도 부족했다. 우선 온 나라가 쪼개져서 싸우는 바람에 물자가 바닥이 나 있었다. 이 와중에 무역적자까지 있었다. 중국의 비단과 원사, 조선의 면포, 곡물, 도자기를 사들일 때 은을 지불했는데 당시 기축통화가 은인 상황에서 은을 마구 쓰는 바람에 경제가 멈춰버린 것이다.


결국 히데요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가 필요했고, 무사와 농민들에게 부과하는 세금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부를 얻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다(이 상황은 21세기 오늘날 일본과 놀랄 만큼 흡사하니 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이에 히데요시는 명나라 공격을 개시한다. 대상은 ‘펑후’, ‘타이완’ 방향이었다. 하지만 명나라가 재빨리 방어망을 치는 바람에 해로가 막혀버리고 말았다. 결국 히데요시는 육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육로에는 조선이라는 관문이 있었다. 결국 히데요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조선을 먼저 치기로 결심한다.


1. 은의 확보: 함경도 단천(端川) 등에는 조선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개발되지 않은 대규모의 은광이 남아있었다. 기축통화가 은인 상황에서 이 은은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다.


2. 영지 확보: 히데요시의 영지 배분에는 문제가 있어서 하급 무사들에게 영지 배분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에게 나눠줄 토지가 필요했다. 조선 침공의 선봉에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등의 하급무사가 선봉으로 선 이유다.


3. 침공로, 보급로 확보: 원래 목적이 명나라 침공이었으니 해로가 막힌 상황에서 육로로 명을 침공하려면 당연히 조선땅을 밟아야 했다.


4. 기술 및 외화 확보: 일본은 조선에서 잡아간 도공 등 기술자를 특히 우대했다. 굳이 중국, 조선의 면직물과 도자기를 비싸게 살 필요없이 직접 만들면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가 은인데 은이 줄어드는 것은 일본에겐 악몽이니까. 물론 기술자의 입장에서도 대우가 좋으니 일석이조다.


5. 생존: 만약 무사들에게 보상을 해주지 못하면 셀프 보상을 하려고 할 텐데 그 대상은 1인자인 히데요시가 될 것이다.


역사라는 게 무섭다. 이런 형태의 침략형태는 19세기에도 그대로 반복되어 조선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고 국민들에게 배분할 자산확보를 위해 분쟁을 일으키는 역사는 오늘날 이뤄지고 있다. 아마 인간이 자신의 성공방식에 심하게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히데요시는 명은 고사하고 조선조차 지배하지 못했다. 오히려 본인이 몰락하게 되었다. 히데요시의 예상과 달리 조선과 명나라는 끈질기게 버텼고 이 과정에서 병력과 자원만이 줄어들었다. 이후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은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가 이끄는 서군(西軍)과 최강의 경제력과 무력을 가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東軍)으로 갈라져 싸운다.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 다. 그리고 여러모로 쇠약해졌던 서군은 도쿠가와에게 패배, 히데요시의 영광은 일장춘몽이 되었다.



히데요시의 성공

그가 마지막에 벌인 대업이 셀프 파산이어서 그렇지 그의 역량은 뛰어났다. 머리가 영리했고 전략에 뛰어났으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도 있었다. 게다가 사람의 심리를 읽는 능력도 탁월했다. 물론 그의 신분이 신분이라 치세였다면 그는 일개 병졸로 생을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모든 것을 말하는 난세였기에 그는 아시가루(足軽)라는 최하위 병사 계급부터 시작 일본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히데요시의 성공에는 노부나가의 파격적인 인사정책이 있었다. 이를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노부나가의 신발’ 일화다. 어느 겨울, 노부나가가 신발을 신을 때 항상 따듯한 게 이상해서 알아보니 히데요시가 노부나가가 따듯한 신발을 신을 수 있게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감명받아서 사무라이로 중용했다는 일화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생리, 조직의 생리면에서 보면 말 그대로 동화다. 일부 기업의 공채를 보면 매장 매니저로서 입사해도 우수한 실적을 내면 본사 사무직으로 전환배치가 가능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쉽게 사무직이 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이 아무리 매장매니저로 우수해도 사무직이 되면 신입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매장경력이 있는 만큼 임금을 더 줘야하는 신입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회사는 그들이 계속 매니저로 남아주기를 원한다. 그게 매출에 도움이 되니까.


노부나가도 마찬가지다. 히데요시가 신을 잘 덥혀서 눈에 들었다면 그는 노부나가의 시종이 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는 시종이 아닌 사무라이였다.


노부나가는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분이 아닌 능력만 본 사람이다.
히데요시가 실력만으로 출세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했다.


1570년, 오다 노부나가는 당혹스러운 일을 당한다. 에치젠(현 후쿠이현)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했다가 뒤에서 기습을 받아 퇴각한 것이다. 이 기습도 당혹스러운 판에 더 큰 문제는 그 기습의 당사자가 매제인 아자이 나가마사였다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판단력이 빨랐다. 눈 앞의 승리를 버리고 지체없이 후퇴했다. 문제는 적의 추격대를 막아줄 사람, 사실상 죽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자원한 것이 히데요시다.


사실상 죽는 게 뻔한 길, 그러나 히데요시는 아사쿠라의 추격대를 훌륭히 막아냈고, 나중에는 배신자 아자이를 처단할 때도 큰 공을 세운다. 이렇게 히데요시는 불리한 상황에서 승리를 거둔 전략가였다. 당연히 고속 승진해서 훗날에는 노부나가 진영의 2인자까지 오르게 된다. 가문과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덕에 실력을 인정받은 사례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히데요시는 두 가지 선택지를 눈 앞에 놓게 된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만족할 것이냐, 노부나가를 꺾고 그 위로 올라갈 것이냐? 하지만 노부나가는 성격상 히데요시의 배신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니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곳에서 얼결에 찾아온다. 1581년, 노부나가가 모리 모토나리를 공격하던 히데요시를 돕기 위해 혼노지에서 출병준비를 하다가 노부나가의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죽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히데요시는 재빨리 모토나리와 휴전한 후 아케치를 토벌하기 위해 회군한다. 다급해진 아케치는 히데요시를 막기 위해, 다른 영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군을 기습한 상황에서 명분은 떠나버린 뒤였다. 이후 아케치는 히데요시에게 간단히 제압되어 실력도 부족했음을 증명했다.


히데요시는 이렇게 노부나가의 세력을 ‘명분’을 바탕으로 접수했다. 노부나가의 적자인 산보시 =아무것도 모르는 3세를 옹립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실력 있는 노부나가의 혈육들을 처분하고, 노부나가의 업적, 흔적을 없애 영향력을 지우는데 골몰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짊어진 굴레를 모두 극복하고 입지전적인 출세를 이뤄냈다. 그를 모델로 한 코에이의 게임 이름이 ‘타이코 입지전(太閤立志伝)’이다.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출세를 이뤄낸 것이다.


036.jpg 주인공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


성공에서 몰락으로

히데요시의 인기와 삶은 공통점이 있다. 끝없이 치솟다가 갑자기 추락한 것이다. 이 인기추락의 배경에는 2014년에 방영된 NHK 드라마 ‘군사 칸베(軍師官兵衛)’가 거론된다. 군사 칸베는 히데요시의 군사였던 ‘구로다 칸베(黒田官兵衛)’의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뛰어난 지략으로 히데요시를 반석에 올리는데 기여한 그는 냉정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입체적인 성격 덕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고, 팬도 많다. 그런데 이 칸베가 히데요시의 인기를 올렸다가 주저앉힌다. 일본 사람들이 잘 모르던 패배의 역사, 임진왜란의 진실이 알려진 것이다.


임진왜란의 패배가 히데요시에게서 눈을 돌리게 했다.


나아지지 않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본인에게 히데요시는 자수성가의 롤 모델이었다. 이것이 노부나가와 료마를 제치고 히데요시가 한때 인기순위 1위를 한 이유다. 하지만 이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볼썽사나운 패배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잘 몰랐다. 기존의 나온 전국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는 히데요시는 불리한 환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까지 묘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 칸베에’는 달랐다. 히데요시의 부정적인 면까지 모두 보여준 것이다. 초반에 천재적인 군주로 나오던 히데요시는 나이가 들면서 논리조차 망가진 미치광이 전쟁광으로 나오고 임진왜란도 병력과 물자만 낭비한 전쟁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히데요시가 입신양명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기 손으로 패가망신도 한 것을 알자 그의 인기는 급격하게 식어버렸다. 그 순간 그에 대한 동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삶이 파격적으로 나아지길 바란다.
몰락한 패배자인 히데요시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일본의 나이든 세대에게 지금은 악몽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본과 한국의 개화는 불가 20여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이 숟가락 공장 하나 못 세울 때도 일본은 기술적으로 미국의 전투기조차 능가하는 ‘제로센’이라는 전투기를 만들어서 전쟁을 할 정도의 국가였고 전화를 극복, 세계 2위의 대국으로 올라섰던 나라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이 자동차 반도체를 만들어서 일본을 따라한다 싶더니 지금은 반도체 시장 70%를 잡아먹은 거대 기업이 나왔다. 경제력도 차이가 있긴 있지만 거의 따라잡은 수준이다.


일본이 30여년간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은 아직 강국이다. 한국보다 GDP(국민총생산), GNI(국민총소득)이 다 높다. IMF 2019년 기준으로 GDP는 한국이 32,775달러, 일본은 40,849달러이며 GNI는 한국이 38,460달러, 일본은 41,640달러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비교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구격차가 무려 3배이다. 한국은 5170만명, 일본은 1억 2640만명으로 일본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국민생산과 소득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정체기간이 너무 길다.


출산율이 낮고, 노인인구가 많아서 부흥책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줄 국민도, 이용할 국민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구성원 개인의 삶이 극적으로 나아지긴 어렵다.


남은 방법은 자신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노력을 통해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경제계층에 편입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이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일본사회에서 특히 어렵다.


일부국가에서 교육은 전인교육이 아닌 사회유지를 위해 운영된다.
일본의 교육도 구성원들의 사회역할을 정해주는 분류장치다.

대한민국에서 교육경쟁에 불이 붙은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이다. 97년을 기점으로 아무나 취업할 수 있던 나라가,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야 겨우 취업할 수 있는 나라로 바뀌었다. 이렇게 교육에 사회적 비용을 쏟아 붓는 치킨레이스가 펼쳐지자 나온 이야기가 소위 ‘일본을 본받자’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 ‘일본은 대학진학률이 50~60%밖에 안된다.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가업을 물려받거나 프리랜서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니 우리도 본받자’는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솔깃한 이야기지만 이는 일본 사회의 겉모습만 보고 한 소리일 뿐이다.

일본의 교육열은 한국보다 결코 낮지 않으며
심지어 고등학교 진학률은 한국보다 높다.


대학진학률은 낮은데 고등학교 진학률이 높은 이유는 뭘까? 이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사회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출세와 일본의 교육 그리고 시스템

한국에서 명문대 브랜드를 갖고 있으면 온갖 도전의 난이도가 내려간다. 그 자체만으로도 장학금이 쏟아지며 취업 등 여러가지 전형에서 드는 노력이 눈에 띌 정도로 내려간다. 대기업이나 유망 공기업에 들어가기도 쉬운데, 이런 곳에 들어가면 대출이 훨씬 쉬워지므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다. 즉 팔자 고치려면 명문대에 가야 한다.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도 그대로 일어난다. 한국이 ‘SKY서성한중경외시’라는 서열이 존재한다면 일본에는 MARCHI, 칸칸도리츠라는 서열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공부를 더 해서 최종학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유학을 가는 좁은 문이 남아 있지만 일본은 그것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한 번 탄 레일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고등학교 내신, 대학, 기타 요소가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준다면 일본은 중학교 입시에서 삶의 방향이 거의 결정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학교(초등학교)부터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탓인지 일본인들은 자식을 엘리트로 키우고 싶다면 늦어도 중학교부터는 사립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범위가 제한된다.


일본의 학교는 사학계열 따라 계단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면 그 계열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타고 갈 수 있는 반면 그 레일을 타지 못하면 레일에 들어가는 것, 레일 없이 성공하는 것 모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레일이 이후 삶에 영향을 준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학벌을 보는 기업이라도 부족한 학벌을 보완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확률은 뉴스가 될 정도로 희박하지만 입사가 불가능은 아니다(물론 한국에서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게 안된다. 일본은 시스템의 나라다. 사원을 일정기간 동안 교육시키고 일정 기간 동안 현장에 투입시키는 식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따라서 사람을 뽑을 때도 이 시스템에 걸맞은 스펙과 배경을 가진 사람만 뽑는다. 따라서 일정 급수의 회사에 일정 학벌 이하의 사람이 지원하는 것 자체가 민폐라는 공식이 존재한다.


지잡대는 대기업에 지원하지 말라고 하는 기업의 인식과
지잡대는 대기업에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지원자의 인식이
조화를 이룬 나라가 일본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신분제>가 사회 구성원의 인식속에 들어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본의 신분제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인, 중국인은 물론 같은 일본인인 부라쿠민,

아이누에 대한 차별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이는 사실상 태어나는 순간부터 벗어날 수 없는 제약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갖은 방식으로 신분을 나누고 차별방식을 만든다.


일본 사회는 구성원을 선별해서 사회 시스템에 분배하는데 익숙하다.

물론 시스템이 일본만의 제도는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일본을 시스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엄격한 매뉴얼로 시스템을 철저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버블경제 붕괴이후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가 정체되어 여유가 없어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이렇게 일본의 교육은 가르침이 아닌 능력을 검증해서 시스템에 <배치>하기 위한 시스템이 되었고, 일본에서 신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이런 <배치>는 다양한 일본의 문화 콘텐츠에서 엿보인다. 한국에도 수많은 팬이 있는 드라마 히어로(2001)의 주인공은 ‘쿠리우 코헤이’라는 중졸 출신 검사다. 그 중졸이라는 타이틀은 작품이 판타지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쿠리우의 행동을 제약하며 결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핵심 키워드다. 주인공 쿠리우는 뛰어난 머리와 실무능력 그리고 올바른 검사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도 중졸이라는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일본의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2013)’에서 주인공 한자와가 다니던 산업중앙은행은 버블경제 붕괴에 휘말려 파산, 도쿄중앙은행에 합병된다. 새로운 조직에서 한자와는 파란만장한 활약을 하는데, 이렇게 한자와가 회사에서 튈 때마다 꼭 나오는 대사가 한자와가 어디 출신인지 묻는 것이다. 도쿄중앙은행은 도쿄중앙은행에 바로 입행한 진골출신과 산업중앙은행 합병과정에서 입행한 성골로 나누어진 곳이다. 그래서 도쿄중앙은행 출신 간부들은 성골인 한자와가 활약을 할 때마다 불쾌해한다. 순혈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은 진골에 집착하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78d7f2d10838cb321691fc3d4e84fd74.png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사회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일본인의 속을 뚫어준 한자와.

인기 추리만화 김전일 시리즈의 최신작 ‘김전일 37세의 사건부(2018)’에서는 37세가 된 주인공들의 뒷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작중 능력과 실질적인 지능을 떠나서 학창시절의 성적에 맞는 급수의 회사에 배치되어 있다. 김전일은 아이큐가 180이 넘고, 대인지능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가 갈 수 있었던 곳은 수상해 빠진 블랙기업뿐이었다.


아르바이트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어서, 대학을 안 나와도 일자리가 있어서 그 일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올바른 이야기가 아니다. 각종 사회보장에서 벗어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할 리가 있겠는가? 반대로 일본사회는 시스템이 주어진 시기에 가능한 한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다.

아르바이트, 고졸로 살 수 있어서 사는게 아니다.
분류된 이상 뭘 해도 소용이 없어서 멈춘 것 뿐이다.


한국이 어느새 답습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시스템의 위력

한국 축구 팬들은 일본 축구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아니 축구에 관심이 없어도 한일전의 결과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그래서 축알못인 나도 한일전은 꼭 챙겨보는데 이때 자주 듣는 것이 축구의 조직력 이야기다. 중국의 경우 막대한 돈을 들이지만 선수들의 개인주의가 강하고 집단경기라는 의식이 약해서 조직력이 약하다. 그래서 중국축구는 동네북 수준이다. 일본은 정 반대다. 개개인의 역량이 떨어져도 시합의 방침, 목표, 전술에 맞춰 배치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일본인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크게 의식한다.


일본인은 계층과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스템에서 살았고, 역사를 거치면서 이 시스템은 더욱 강력해졌다. 히데요시 때 만들어진 인소령은 이에야스 때 더욱 강력해지고 메이지 유신 때 신분이 철폐되어도 남아있더니 나중에는 패전 후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어도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일본인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개인의 개성과 집단을 위한 자아를 구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상속의 출세가 실제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현실의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다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2. 이런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타국으로 이민을 간다

3. 만화가, 연예인 등 기존 룰에서 벗어난 직업을 고른다

4. 정치가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들어 주기를 원한다


시스템을 의식하는 일본인, 그래서 조직의 중간관리자는 자기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 업무효율을 개선하는데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개개인의 재량이 꽤 넓게 허용되는 회사는 그나마 낫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기업은 정말 보수적이다. 이러한 성향은 교육을 통해 꾸준히 계승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교육제도가 제공하는 교육은 인간의 가능성을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영에 필요한 부품을 만들기 위해 ‘기존 사회의 규범과 규칙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일본에서 출세는 한국 이상으로 힘든 주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가 신경 쓰는 것은 과연 이런 시스템이 잘 유지되어 정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패전 이후 거의 정권을 독차지한 자민당의 입장에선 이는 중요한 이야기다. 그리고 내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일본 사회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원전으로 인해 방사능이 유출되어 전 도도부현에서 시위가 한번씩 일어났지만 이것이 통합된 목소리가 되어 정부를 위협한 적이 없다. 한국인처럼 국민이 목소리를 내서 권력을 굴복시켜 본 적이 없어서 좀처럼 목소리가 커지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까? 아니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생기면 아무리 시스템을 따르는 일본인이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방사능이 유출되어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일본인들이 고분고분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일본인이 분노를 직접 표출한 적도 있었다. 바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다. 일본 역사에서 강력한 무장봉기, 폭동은 경제위기가 왔을 때 일어났다. 그러니 권력자가 정권을 유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잘되지 않아서 30년간 경제성장이 멈춰버렸다. 그래도 국민들이 행복하다면 상관없지만 당장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부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 건 것을 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정치가가 유권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을 제시할 리 있겠는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일본은 손꼽히는 강국이다. 하지만 국민이 가난한 나라다. 경제규모에 맞는 혜택을 국민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경제대국 3위 임에도 생활수준이 1위인 미국의 1/4~1/7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소득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생활물가는 한국보다 낮다. 하지만 주거 및 교통 등 ‘버블경제 이전에 형성된 인프라’는 그렇지 않다. 운임자체가 한국보다 높다.


버블의 절정인 부동산쯤 되면 말할 것도 없다. 사회 초년생 급여의 대부분이 주거비, 교통비로 날아가버린다. 이런 현실이 한때 히데요시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도 오래가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결국 실패한 사람이며, 실패가 죽음으로 이어진 역사를 경험한 일본인에게 실패한 사람은 절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시스템으로 인한 제약은 히데요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상 최고실권자인 관백(關白)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 율령하의 최고 관직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은 ‘덴노’가 다스리는 나라다. 덴노의 신하로서 절대 권력을 잡을 자격이 있는 것은<왕실과 혈통이 닿는 미나모토씨(源氏)의 일족>뿐이다. 맨 손으로 올라간 농부 아들인 히데요시가 그런 핏줄과 인연이 있을 리 없다. 제 아무리 히데요시라도 당시 일본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시스템에 맞춰 최고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타이코(太閤)’이라는 기존에 없던 직위를 만들어 붙였다. 이후 자수성가형 총리인 ‘다나카 가쿠에이’가 오늘날의 타이코라는 ‘이마타이코(今太閤)’라는 별명을 붙임으로써 ‘타이코’는 자수성가한 사람을 칭하는 별명이 되었다.

정말 지독한 시스템의 나라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계기는 역시 경제위기였다. 1993년 버블경제 붕괴로 인해 일본의 총리는 자주 갈리게 되었고, 자민당의 독재는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정권을 잡은 아베, 아니 일본회의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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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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