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
최고의 딜레마이자 일본이 과거만을 바라보게 된 이유
일본은 두 차례 전 세계의 롤모델이 된 적이 있었다. 한번은 메이지 정부였다. 열강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일본은 제국주의에 시달리던 전 아시아 국가의 롤모델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 희망을 증오로 바꾼 것은 바로 일본 자신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패전으로 대가를 치렀다.또 한번은 고도경제성장기이다. 패전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일본은 특유의 근면성으로 미국 다음가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 영광 또한 자신들 스스로 잃어버린다. 이렇게 잃어버린 영광은 세월이 지나면서 증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증오가 향한 곳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KBS스페셜 '욕망과 혼돈의 도쿄, 1991년’에서 마지막 나레이션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버블을 통해서 공짜 점심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는 경제의 대원칙이 재확인됐다.
버블 안에 있을 때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버블이 한 번 발생하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본의 ‘버블붕괴’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다.
1945년, 소련이 남하하면서 패전한 일본의 운명은 바뀐다. 당초 GHQ는 일본을 반으로 갈라서 힘을 못쓰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련에게 일본이 먹히면 아시아는 완전히 공산주의가 점령,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세력을 남기기 위한 도구로 일본이 선택되었다.
일본을 키우기로 결심한 미국은 당초 계획과 달리 한반도를 분단, 소련에게 넘겨줌으로써 불만을 달래게 된다.
이 선택은 한일간의 운명을 가른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모든 것을 일본에 빼앗긴 한국은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마저 뿌리 뽑혔고 반면 다 무너져갔던 일본의 산업체계는 순식간에 부활했다. 불과 10년만에 전쟁피해를 벗어 던지고 1960년대엔 세계경제규모 3위까지 성장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이후 일본에게는 꽃 길이 열린다.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이자나기 경기 대호황, 1964년 도쿄올림픽, 1970
년 오사카 엑스포 등을 성공시킴으로써 우수한 인프라를 전 세계에 자랑했고 1971년 국제통화위기, 1973년도의 제 1 차 유류파동도 반도체 등의 3차 산업 진출로 멋지게 극복해냈다.
1980년대는 일본 최고의 황금기였다. 1984년에는 GNP가 1만 474달러로 미국을 66%까지 추격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확실한 기본기를 갖추지 못한 채 자본에만 의존하여 성장하는 바람에 그에 해당하는 내실을 갖추지 못한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로 무너졌고, 다시 살아나려는 참에 2001년 IT버블 붕괴로 맞았고 이후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남은 가능성마저 뿌리 뽑히고 말았다.
이렇게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영광의 힘을 소모해가며 버티는 처지가 되었다.
‘시마 코사쿠(島耕作) 시리즈’는 만화가 ‘히로카네 켄시(弘兼憲史)’의 대표작인 인기 기업경영 만화다. 시리즈 첫 작품인 시마과장은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만화잡지인 ‘주간 모닝’에서 연재를 시작,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같은 잡지에서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으며 자매지인 격주간 이브닝에서는 그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의 입지다. ‘만화 주인공인 시마의 승진이 일본 주요 일간지/경제지’에 대서 특필된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이게 단순히 일본이 만화강국이기 때문일까?
자본주의에서 미디어라는 비즈니스는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만을 보여준다.
시마 과장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의 삶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따라가고 있다. 만화에 나오는 모든 기업은 실존 기업이 모델이며 스토리도 당시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 시마조차 실존인물이 모델이다. 바로 작가 자신이다. 작가 ‘히로가네 켄시(弘兼憲史)’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마쓰시타 전기(파나소닉)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시마는 와세다 대학 졸업 후 하츠시바 전기에 입사한다. 만화의 하츠시바 전기의 모델은 마쓰시타 전기가 모델이다.
굳이 현실과의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 시마의 운일 것이다. ‘사원 시마’에서 그는 무려 일개 사원의 몸으로 하츠시바의 기업 시스템에 대항한다. 당시 일본은 이타이이타이 병, 미나마타병이 이슈화되기 전이라 환경관련 규제자체가 없었다. 공장은 폐수를 그대로 강에 방류하고 폐자재를 마구잡이로 자연에 버렸다. 마찬가지로 당시 가전제품회사들도 수거한 폐가전을 산, 들, 강에 버리며 비용을 아꼈다.
하지만 시마는 이에 반발한다. 기업이 책임지고 안전하게 처리해 줄 것을 주장한다. 이게 실제 일본회사라면 그는 조직의 ‘와(和)’를 깨는 존재로 간주되어 괴롭힘을 당하고, 출세도 막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우연히 지나가던 회장(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모델)이 이 이야기를 듣고 기업도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며 시마의 편을 들어준다. 이렇게 좀 작위적인 운 덕분에 시마는 좀처럼 자리가 안 난다는 최고인기부서인 판촉홍보과에 들어가게 된다.
이 만화의 패턴은 항상 이런 식이다. 실제 있었던 일본 근대사를 그대로 따라간다. 주요 사건들도 똑같이 일어난다. 그는 일본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승승장구한다.
이 만화는 일본인이 품은 동경과 그리움을 보여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시마는 외모도 괜찮고 처세술도 뛰어나며 영어능력도 뛰어나다. 이런 면이 부러움을 산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쉽게 하는 이유는 그가 지극히 일본인답기 때문이다. 앞에서 선임의 잘못된 행동에 반발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시스템에 자신을 맞추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
동료들의 위기가 와도 정말 친한 사람이거나 자기에게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으면 철저하게 방관한다. 경영위기가 오자 제일 먼저 사원복지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수행한다. 튀거나 능력 있는 사원은 전체주의에 물들도록 유도하며 그래도 안되면 온갖 간계를 써서 몰아내는 전형적인 일본식 관리자이기도 하다.
그는 난세에 어떤 흐름을 타야 할지 잘 아는 행동하는 일본 비즈니스맨이다.
감정이입하기 쉬운, 동경의 대상이 일본의 황금기를 살아가는 모습, 일본의 중, 장년은 이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작품이 시작된 1983년부터 버블이 끝나는 1990년까지 일본은 정말 굉장했다. 세계의 Top 기업 대부분을 일본 기업이 차지했다. 마쓰시타전기가 만든 액정TV는 미국에서 무려 40%의 점유율을 차지했고, 타임스퀘어에 광고가 나가고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무려 개인자격인 일본인 부동산 자산가에게 팔려 나갔다. 거대 국가인 미국이 일본의 공세에 맥을 못 추는 상황, 작품에서 시마는 미국시장 시찰 후 다음과 같은 발언까지 한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 (미국에게서) 일본이 배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1위 국가를 이렇게 평가한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이를 인정할 정도였으니 한국의 취급은 알 만하다. 한국 삼성에서는 소니의 브라운관을 자사 TV에 넣기 위해 갔다가 거절을 당했고 한국내 최상위권 그룹의 경상이익을 다 합쳐도 게임회사 닌텐도의 경상이익을 못 따라갔으며 소니는 아예 넘어설 수도 없는 벽이었다. 방송은 일본의 예능을 베끼고 광고사는 일본의 광고를 베꼈다. 일본 방송이 잡히는 부산 여관방은 그들의 성지였다. 이렇게 그들의 입장에서 한국은 그저 우스운 나라였다.
그런데 연재가 시작되면서, 시마 시리즈가 장기화되면서 한국이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한국이 본격적인 조역으로 등장한 것은 전무가 된 시마가 기술진에게 업무보고를 받는 장면이었다.
“한국제품의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잘 팔리는 TV제품이 전시되는 코너 한 가운데에 한국제품들이 있고, 일본 제품은 그 위나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그건 놀랍군, 하지만 난 우리 제품이 더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보네.”
이 대화에서 키 포인트는 <더 뛰어난 기술>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급성장을 한 배경은 이미 해외에서 나온 기술을 잘 <개선>해서 더 <뛰어난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구권에서 만든 TV가 999달러라 치자. 일본은 이를 399달러에 낸다. 물론 품질은 안 좋다. 하지만 이렇게 팔면서 기술개발을 열심히 해서 서구권의 제품보다 좋은 기술의 브라운관을 만든다면 누가 일제를 안 사고 배길까? 이런 기술발전은 일본경제를 성장시키는 한 축이고,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기술개발이라는 혁신에만 매달려서 개혁을 주저하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기술위주의 사고방식은 한국에게 직격탄을 맞는다. 인재가 세계를 넘나들고, 기술이 발달된 정보망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는 마당에 기술격차에만 집착했으니 후발주자인 한국, 중국과 거리가 벌어질 리 없다. 만화에선 섬상(삼성)이 하츠시바(파나소닉)를 위협하는 최고의 적으로 나오고, 배터리 산업을 위해 고요(산요)를 인수 합병할 때 최대의 적으로 PG전자(LG전자)가 나온다. 이들 조직은 일본이 나아갈 미래를 부당하게 빼앗는 적으로 나온다. 당연히 작품 속 묘사도 은근히 스파이짓, 매수, (거의) 범죄를 일삼는 악의 조직처럼 나온다.
이는 한국의 급성장에 대한 일본인의 불안감을 나타낸다.
처음부터 이렇게 묘사되지는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부품판매망, 상품 판매망이던 시절에는 호의적인 시선이 강했다. 물건 사주는 고객이니까. 하지만 이들이 거대 경쟁자가 되자 입장이 바뀐다. 중국에 대한 묘사는 이를 잘 드러낸다. 초창기 작품은 중국을 (일본을 성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라며 극찬한다. 파트너 중국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묘사도 많다. 하지만 중국이 거대 시장에서 거대 경쟁자로 행보를 바꾸자 갑자기 부정적인 묘사가 늘어난다. 그 중국 하이얼이 파나소닉의 가전브랜드 ‘아쿠아’를 매입한 시기다.
1990년이 되자 일본의 경제는 거품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설비, 고용, 부채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고 일본은 끝없이 추락했다. 더 큰 문제는 10년이면 극복할 것만 같았던 위기가 무려 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잔인한지 상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일본 정부가 부채질했다.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바람에 대응에 실패했다. 버블경제의 후유증으로 그동안 밀어내기식으로 진행한 대출이 악성대출이 되었고 채권회수에 늦어진 은행들이 파산하기 시작한 상황이 되어서야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덕분에 투자, 소비가 동시에 줄어들어서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소비자가 돈을 풀지 않자 정부가 예전처럼 대규모 공공 인프라로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지만 대부분이 실패했다.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지 않고 규모만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효용성 없는 건설이 이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들의 지역구 챙기기까지 끼어들어 대도시는 인프라가 부족한데 지방도시는 한번도 쓰지 않는 인프라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결정적으로 이걸 할 돈이 없어 국채를 발행해 빚까지 져버렸다.
이렇게 일본은 전 세계 1위의 부채를 짊어진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30년간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라도 사회에 큰 사고가 터지거나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지면 엽기적인 사회현상이 발생한다. 사회의 스트레스가 재생산되면서 사람을 지배한 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경악한 ‘여고생 콘크리트 포장 살인사건’, ‘이치카와 4인 가족 살인사건’, ‘연쇄 유아납치 살인사건’등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이며, 미성년자의 자발적 성매매인 원조교제, 불량 청소년들이 무리 지어 샐러리맨을 퍽치기하는 범죄, 동급생을 감금 , 고문치사한 것도 이 때였다. 급기야 최악의 종교단체 학살사건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 등의 폭주도 이 때 일어났다.
버블붕괴는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국민의 인간성마저 붕괴시킨 것이다.
이런 사회 변화는 IMF 외환위기 후 붕괴되고 변질된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한국인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IMF외환위기를 꼽는다. 사고의 중심이 가정과 기업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옮겨갔고 이렇게 개인주의 세대인 ‘밀레니엄 세대’가 등장한다. 밀레니엄 세대에 대한 기성 세대의 반발이 꼰대로 간주되는 계기도 바로 IMF를 경계로 나뉜다. 그리고 강력범죄가 유난히 다발한 것 또한 이 시기이도 하다.
사회의 붕괴는 그만큼 강력한 충격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분노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버블 경제가 붕괴하자, 일본 국민들은 분노한다. 자민당의 38년 일당 통치가 무너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 없고, 이에 계속 1년 단위로 총리가 바뀌면서 올바른 정책은커녕 인기에 힘입은 정치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국민들은 다시 자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우노선을 대변하는 고이즈미, 아베 두 총리의 임기가 장기화되자 일본 정치도 그에 맞춰 변한다.
1. 일본의 정치가들은 일본의 유권자들의 성향이 민족주의, 국수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극우행보의 정치가들이 높은 지지율을 얻었기 때문이다.
2. 경제적인 불만이 민중의 불만을 야기. 정권을 교체한다고 인식했다. 1993년 정권교체의 배경에는 버블경제 붕괴, 2001년에는 IT산업 진입 실패, 2009년엔 외환위기 그리고 2012년 정권교체의 배경에는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있었다. 모두 일본 경제에 타격을 준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3. 혐오할 대상을 만들고 이를 공격하고 힐난하면서 일본의 우월성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려 했다.
자연스럽게 정치가들이 선거철만 되면 피해국, 특히 한국을 자극하는 말을 쏟아내게 되었고 이것이 좋은 지지율과 의석으로 이어지자, 아베 정부는 아예 혐한을 부추겨서 정권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수단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혐한만으로 정치를 끌고 갈 수는 없다. 그 근원에는 무너져가는 국가경제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이를 잘 아는 아베 총리는 집권할 때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다.
일본의 부흥(復興)
일본의 여러 콘텐츠에서 ‘부흥’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로 그려진다. 만화속의 시마 코사쿠는 국내 〮국외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 이를 돌파하는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그도 일본경제 추락, 파나소닉의 붕괴는 막아내지 못했다. 그만큼 ‘부흥’이 어려운 현실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 포장하면 매력적인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KBS의 토크프로그램인 ‘대화의 희열’에서 ‘유시민’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치인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 주는 자리다.
즉 일본 유권자의 마음을 휘어잡으려면 대다수의 일본인이 원하는 ‘부흥’을 외치는 것이 최고다. 아베 신조 총리가 ‘부흥’을 정권목표로 내 건 이유다. 문제는 과연 부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베 정부가 이 부흥을 위해 내 건 정책은 ‘아베노믹스(アベノミクス)’다.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위적인 엔화를 무한정 찍어내 엔화의 가치를 낮추는 환율조작이다.
이렇게 일본 정부는 물가가 3% 올라갈 때까지 무제한으로 화폐를 찍어냈다. 심지어 이를 반대하던 일본은행 총재를 해임하면서까지. 이유인 즉 물가가 미국 = 달러를 기축 통화로 소유한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엔고가 되기 때문에 정책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경제를 살리느냐 나라가 무너지느냐가 달린 치킨게임을 한 것이다.
이는 일본 경제에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장단점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잘 풀려도 일부 산업이 희생당하게 되는 것이다.
엔고
장점: 해외여행이 저렴 해진다. 수입물가가 낮아진다.
단점: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다. 수출실적이 줄어든다. 급여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수가 낮아진다
엔저
장점: 외국관광객이 늘어난다. 수출실적이 늘어난다. 급여가 늘어나서 세수가 올라간다
단점: 수입물가가 상승한다.
아베노믹스 실시 후 1년, 실제로 닛케이지수는 급등, 일본의 주가가 올라가서 기업의 가치와 실적이 올랐고,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때마침 중국에서 농민공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이 맞물려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출주도 국가를 벗어난 일본인지라 수입물가까지 급등해서 서민들의 소비력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에 아베는 소비세를 인상해서 세수를 올리는 방법을 쓰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것이 단기 정권유지를 위한 것인지 일본을 살리려는 참된 지도자의 마음인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아베 노믹스는 실패했다. 만약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려면 2013년부터 물가 상승률이 크게 올랐어야 하는데 물가가 잠깐 반짝하더니 2015년을 기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경제정책을 다시 세워야 하는데도 아베 노믹스를 밀고 나간 것이다.
한번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소비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일본의 서민금융의 거의 반이 노년층에 모여있는데 이 노년층이 지출을 극도로 아끼고 은행예금, 국민연금, 공공근로로 살아가고 유도해버린 것이다. 이에 젊은 사람들의 임금을 올려 세수를 늘리려했지만 기업들은 대놓고 반발했고 이것이 전반적인 소비시장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엔고로 경기둔화가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일본인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정부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역사가 말한다.
한 국가에 위기가 오면 권력자는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리고 일본은 국가적 경제위기를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극복한 경험이 많다. 유일하게 지배당했던, 제일 만만한 한국에 날을 세우는 일본의 움직임이 신경 쓰이는 이유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이 열릴 때, 일본회의의 멤버이자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을 운영해서 한국에도 유명한 사사카와 요헤이가 이끄는 일본재단은한반도 전쟁에 관한 비공개 세미나를 개최했다.
미군의 군사력 사용 등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한반도 유사시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실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한국, 미국, 일본 3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따져보는 시나리오였다.
한국의 전직 관료들도 참석한 이 모임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일본재단’의 성격이다. 우선 이 재단의 임원진 대부분이 ‘새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멤버로 활동, 역사교과서 왜곡에 앞장서고 있으며 전 세계의 연구자들에게 후원금을 제공, 일본의 이익에 맞는 연구를 시키는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때 아베 내각은 국가안전보장회의(NCS)를 중심으로 한반도 사태시 일본인의 피난,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좋게 보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전쟁이 날 것을 확신하는 분위기다. 아니 없는 전쟁도 일으킬 분위기다. 일본은 그런 로비력과 힘을 갖춘 나라니까.
인류역사상 전쟁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 될 때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을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반드시 일어난다.
이미 터진 한일간의 경제전쟁이 가볍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