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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Oct 12. 2017

오마주의 원전

블레이드 러너 (1982)

1. 이 영화의 원전은 필립 딕 K의 SF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이다. 하지만 영화화로 기획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설정과 등장인물 외에는 모두 바뀌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 영화로 기획되기도 했지만 원작자 딕이 고른 것은 원형을 거의 파괴하다시피 한 지금의 각본을 골랐다.


재미있는 것은 감독인 리들리 스콧도, 각본가인 햄턴 팬처, 데이비드 웹 피플스도 소설을 안 읽고 각본을 썼다는 것이다. 이래도 되는지 싶지만, 그런 세계도 있다고 이해해보자.


지금 시점에선 <파이널 컷>만 보면 다 해결된다


2. 하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고 만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데 난 이 원인을 <영화의 방향성>에 두고 있다. 


우선 처음에 나온 결과물, 후에 나온 감독판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편집된 파이널 컷은 어찌 보면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방향성의 차이가 있다. 원본과 파이널 컷의 결말은 어둡고 비장하지만 감독판의 결말은 희망에 가득 차 있다. 


게다가 각본가는 주인공 '데커드'가 복제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각본을 썼다. 하지만 감독은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라고 생각하고 연출을 했다. 감독과 각본가의 의견이 다 다르자 해리슨 포드는 자신만의 결론을 찾아 연기했다. 이렇게 보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이 대중적으로 흥행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3. 하지만 이런 해석은 마니아들에게는 높게 평가되는 모양이다. 블레이드 러너에 쓰인 각종 설정과 세계관은 굉장히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단순히 미래사회가 이럴 것이라고 상상하고 쓰인 게 아니라, 현재 사회의 흐름을 보고 미래의 모습을 예견했다.

영화를 보면 거리에선 일본인 요리사가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거대 광고판에는 게이샤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80년대는 일본의 버블이 절정기에 달하던 시절로, 대기업 신입사원의 급여가 1천만 엔이나 하던 시절이었고 일본 소니가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의 땅에 자기 건물을 세우던 시절이었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미국의 경제는 일본에게 잠식당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당시의 흐름 하나하나가 2016년의 미래, 당시에는 꿈같이 여겨지는 미래를 묘사하고 있다. 이런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의 묘사는 여러 사람을 자극해서 일본의 크리에이터 코지마 히데오는 '스내처(1988)'이라는 비디오 게임에 주인공 데커드와 복제인간이라는 요소를 아예 들어다가 오마쥬 해버렸으며 일러스트레이터 아사미아 기아는 '사일런트 메비우스(1988)'이라는 만화에 아예 블레이드 러너가 그린 디스토피아를 들어다가 썼다.

<사일런트 메비우스>는 스피너라던가 도시의 전반적인 풍광을 아예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져다 썼다. 오늘날 같았으면 워너브러더스의 법무팀이 당장 출판사에 소송을 걸었을 거다.

그 외에 베데스다의 폴 아웃,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2 같은 게임은 물론 한국영화인 '지구를 지켜라'에까지 블레이드 러너의 각종 요소가 오마주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의 각종 요소는 낯설지 않다.


이 영화는 오마주의 원전이다.


4. 2016년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는 2017년을 거의 다 보내고 2018년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블레이드 러너의 디스토피아를 경험하고 있지 않다. 대기업이 통제하는 미래사회를 살고 있지도 않고, 복제인간의 위협에서 떨면서 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 봐도 그들이 그려낸 사회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2016년이 이렇게 되었어도 결코 이상하지 않는다.


이것이 오마주의 원전의 힘이다.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해석을 곱씹으며 콘텐츠는 생명력을 더해가고 사람들의 사고와 역사에 자리매김한다. 설령 영화는 실패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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