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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Oct 25. 2017

책이라는 중심을 지켜낸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

1.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면서 공포문학을 주로 투고하던 한 작가는 자신의 헌책방 아르바이트 경험을 살려 쓴 소설로 일약 주류 작가 라인에 편입한다. 바로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으로 유명한 '미카미 엔(三上延)'의 이야기다.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이 책은 초창기에 출판사와 작가의 기획의도가 충돌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의 흐름을 보면 영락없는 소설이고 라이트 노벨적 요소는 가볍지만, 마케팅과 편집은 엄연히 라이트 노벨이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라이트 노벨의 마케팅을 활용한 중편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흔적이 책을 읽다 보면, 특히 원서를 읽다 보면 정말 역력히 나온다. 라이트 노벨과는 달리 집필 방식이 무거운데 일러스트는 라이트 노벨, 마케팅도 라이트 노벨이다. 그런데 작품이 본격화되는 3권부터 분위기가 바뀐다. 1, 2권에 사용되던 중간 일러스트는 아예 빠져버렸으며 내지 일러스트도 일반 소설의 포맷으로 바뀐다.


그래서일까 한국어 라이센스판에서는 이 후반부의 집필 방식을 존중, 라이트 노벨이 아닌 중편 소설로 편집했다.


2. 가마쿠라에 사는 고우라 다이스케는 어느 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평소에는 미인 주인을 바라보면서 그저 지나칠 뿐이던 '비블리아 고서당'에 가게 된다. 하지만 주인장인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병원에 입원 중, 뭐에 홀렸는지 병원에 직접 찾아간 고우라와 시오리코의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트라우마로 책을 읽지 못하는 청년 고우라와, 책에 한해서라면 무한대의 지식을 자랑하는 시오리코가 활약하는 미스터리 시리즈의 시작이다.


[사진출처 : 미디어웍스 작품 홈페이지]

이 시리즈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화제가 된 것은 주인공 '시노카와 시오리코'였다. 긴 머리에 검은 테 안경, 하얀 피부의 여주인공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인상, 야마토 나데시코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었다.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캐릭터를 정립하기 어렵지만, 실패하기도 어려운 마케팅 팀의 고뇌가 들어간 디자인이었다. 즉 라이트 노벨 홍보를 위해 전형적인 '팔리는 코드'를 도입한 것이다. 


이런 캐릭터를 살리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 달렸다. 그리고 이 누구나가 선호하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캐릭터는 일본산 미스터리의 탐정 중에서 확실히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3. 이 책에서 높이 살만한 점은 작품의 중심에 책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일본에서 라이트 노벨로 기획된 책이 생산된 방식은 어찌 보면 공장제 수공업과 비슷하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모아서 캐릭터를 만들고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만들어 이야기의 줄기를 만든다. 시리즈를 구성하는 이야기는 존재하지만 각 권의 이야기는 그 한 권 만을 보면 완성되도록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을 취하다 보니 라이트 노벨에선 중심 소재가 빠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한 권의 주제가 작품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로 튀는 것이다. 풀 메탈 패닉에선 SF 밀리터리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슬레이어즈에선 마법 판타지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활용된다. 읽는 사람은 재미있지만 작품적으로 보면 산만하다. 


반면 이 책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이라는 키워드를 지켜낸다. 우선 두 사람의 만남은 책으로 이어지고, 모든 사건은 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에피소드가 소재가 된 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는 점이다. 


한 예로 2017년 8월에 출간된 마지막권의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폴리오'였다. 폴리오란 셰익스피어의 글이 처음 만들어진 책을 말하는 것인데, 수십억 대의 가치를 가진 귀한 판본이다. 책을 추천하고자 하는 글에서 내용을 적을 수는 없으므로 간단히 정리하자면 7권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나오는 4대 비극을 그대로 답습한다. 폴리오의 가치는 수십억 대에 달한다. 이는 자산인가 책인가? 과연 이 '물건'의 본질은 어디 있는가?


7권의 이야기는 책의 본질을 지키는 주인공들과, 자산의 본질을 추구하는 악역의 이야기다. 악역은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본분을 잊은 광대와 같이 처참하게 무너져나가고, 자신의 광대 같은 모습에 전율하게 된다.


4. 이 책의 미덕은 '책'이라는 소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 중심이 된다면 에피소드의 중심은 만년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만년의 테마에 집중한다. 설령 작품에서 언급된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후에 읽어보면, 그 에피소드, 때로는 본 주제와 너무 닮았음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 '책'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게 출판사 미디어웍스(카도카와)가 라이트 노벨로 기획한 책을 노선을 수정해서 소설로 진행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책의 최대 미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 속에서 책을 만나고 싶은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PS: 안타까운 점을 들자면, 이 책의 한국어 버전 초판은 오류가 유난히 많다. 이 작품은 책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고, 이야기 자체가 소재인 책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작가의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서술 트릭도 굉장히 정교한 작품인데 오타, 오역이 이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6권은 부록 때문에 초판을 샀는데 아예 똑같은 문단이 두 번 나온다던가, 이름이 잘못 나와서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다.


그래도 2쇄, 2판 정도가 되면 꼭 수정해서 내주니, 만약 소장하고 싶다면 나중에 나온 판본을 구매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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