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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Oct 20. 2017

이야기는 그때마다 다르게

키다리 아저씨

1. 만약 이 브런치 주인이 글을 조금이라도 맛깔나게 쓴다고 생각한다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읽을 맛이 난다고 생각하신다면 난 그 영광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돌리고 싶다. 이 책의 톡톡 튀는 문체, 신분상승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유머감각이 글을 쓰는 것도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해 국민학교 3학년의 나이로 서울시의 독후감 대회에서 입선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듣는 사람의 눈은 가자미눈이 된다. 


그거, 응, 애들이 읽는 책 아냐?

2. 한국 독서 문화 중 많이 안타까운 것이 바로 '세계명작동화' 징크스다. 세계명작동화 징크스란 70~80년대에 일본판 서적을 가져다가 번역해서 일본식 번역체가 남은 채로 나오거나, 그나마 시리즈가 있으면 다른 시리즈는 묵살당하고 1권만 알려지는 것을 말한다. 조반니노 과레스끼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 국내에 1권만 소개된 케이스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일본명인 암굴왕으로 개작되어 편집 발매되었고, 이 책도 거의 비슷한 운명을 걸어서 2권은 국내에 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판매되기 시작했다.


진 웹스터는 주인공 주디 애보트가 그렸다는 설정으로 일러스트를 그려 넣었는데, 초판본에선 영어문장 그대로 실린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3.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책을 여러버전으로 사게 되었고, 최근에는 그럴듯하게 제본된 책을 구했다. 즉 초등학교 때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읽었다는 건데 그때마다 책을 보는 느낌이 계속 달라지는 게 희한하다. 


우선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 때는 그 글의 문체가 재미있었다. 그 글을 자꾸 흉내 내다가 선생님한테 혼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주디 애보트의 삶은 진 웹스터가 이 소설을 쓰던 시절의 여성지위를 생각해보면,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참 비참한 삶인데 그런 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주디 애보트는 운명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운명을 개척하려는 전향적인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드디어 최초 출간된 2권 (아예 띠지에 한국 최초 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을 읽으면서 다시 읽어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자립의 의지를 갖고 목표를 이뤄낸 진취적인 한 사람의 삶, 그리고 그제야 행간에 숨겨진 고아원 출신의 소녀의 어두운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이가 들다 보니, 첫 번째 버전의 영어 문구가 그대로 실린 버전이 궁금해졌다. 원래 그림에 글이 적혀 있으면 그 글도 하나의 일러스트를 구성하는 요소다. 그게 한국어로 바뀌면 보기는 편해도 그 일러스트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원서를 샀다.


원서를 읽다 보니 대뜸 튀어나오는 게  'socialist'라는 단어다. 풀이하자면 '사회주의자'라는 뜻이다. 주디를 키다리 아저씨로서 지원하고, 고아원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저비스 펜덜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빠졌다'라면서 숙덕거리는 장면에서 나온다. 


왜 이게 눈에 들었나 하면, 70~80년대 판에 이 부분이 제대로 번역된 책과 안된 책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짐작이 간다. 당시만 해도, 아니 오늘날에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제대로 구분 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당시에 공산주의는 입 밖에 내기도 힘든 단어였으니 번역자가 고심 끝에 '처치'한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읽다 보니 또 새로운 게 들어온다. 저비스 펜들턴, 즉 키다리 아저씨는 엄청나게 질투가 많다는 점이다. 작품 내에서 그가 주디와 충돌을 일으키거나, 무언가 오해가 생길 상황에서 거의 원인제공은 이 사람이 한다. 이 편지를 읽다가 주디에게 빠져서 질투가 커지다 보니 그게 역으로 터져 나온다. 그래서 키다리 아저씨가 누군지 알면서 읽다 보면, 어른의 감성으로 보다 보면 띠동갑 처녀를 사랑하는 질투에 빠진 한 청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동료처럼 느껴진다.


4. 좋은 책은 언제 읽어도 새롭다. 새로움은 책에서 숨겨진 가치를 성장한 내가 새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명작이다. 그러니 굳이 어른이라고 멀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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