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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Dec 06. 2017

반성과 용서의 이야기

바람의 검심

1. 1994년 이전까지 칼싸움을 그리는 '챤바라'물은 찬밥이었다. 인기도 없었기에 굳이 미디어로 표현하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할까? 이런 틈새시장을 와츠키 노부히로라는 신인 작가는 바람의 검심(るろうに剣心 -明治剣客浪漫譚-)으로 공략했고, 결국 이 만화는 찬바라의 부활을 알리는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그 서막이 2017년 홋카이도 편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2017년, 작가가 불미스러운 일로 체포되면서 이 작품은 3개월만에 연재종료되고 진행되던 영화,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전부 중단되고 말았다. 이렇게 추억을 가로지르는 작품이 끝나니 한번 돌아보고 싶어졌다.


2. 소년점프에 연재된 만화는 인기를 끌면 편집부가 강요해서 연재를 이어가게 하는 바람에 줄거리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드래곤볼이 그랬고 최근에는 산으로 가는 원피스가 그렇다.


이 작품도 원래 단편으로 기획된 것을 장편으로 바꾸는 과정, 초보작가의 역량부족으로 인해 주제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97년 당시의 만화탄압 과정에서 이 작품을 '군국주의의 미화물'로 묘사했다. 주인공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라는 점을 근거로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작품은


켄신이 저지른 죄의 참회록이다


2.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주인공 측을 보면


사노스케 : 유신정부의 흠결을 덮기 위해 관군을 사칭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적보대의 생존자

카오루 : 아버지가 무진 전쟁에 참전해서 사망. 즉 메이지 유신의 희생자

야히코 : 아버지가 바쿠후 무사 출신, 유신지사 토벌전에서 사망

메구미 : 고향 아이즈번은 유신지사에게 반항하다 멸망당함


그리고 주요 빌런을 보면


시노모리 아오시 : 메이지정부로 주군을 잃은 오니와슈의 두령

시시오 마코토 : 켄신을 대신한 유신지사의 암살자

유큐잔 안지 : 불교 탄압과정에서 학살을 자행한 '폐불훼석'의 산증인


주인공 켄신은 유신지사측의 암살자이자 지사로 활동하며 메이지 시대를 열었다. 그로 인해 일본은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만 이는 제국주의라는 파멸로 향하는 길이었고, 작가는 이를 직간접적으로 묘사한다. 


개혁의 이름으로 민초들의 희생을 강요한
메이지 유신에 대한 반성이 주제다


그러나 작가가 초보인데다 명랑만화적인 감각이 강해서 이 부분이 묻히고 말았다. 이 부분이 가장 잘드러난 것은 바로 만화책판 '인벌편'이다. 이 인벌편에는 켄신의 과오를 그대로 비추는 '유키시로 에니시'가 나온다. 이 청년은 켄신때문에 누나를 잃고 가족을 잃은 비극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단순히 더티 히어로로만 그려진다. 자신에게 정을 베풀던 가족을 학살하기도 하는 등 인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리더십조차 결여된 인물로 나온다. 본문에서 '검술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묘사까지 곁들여지면서 그는 켄신의 죄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에니시를 모든 것을 잃고 그것만을 위해 절규하지만, 신 다른 사람에겐 일절 피해를 안주지만 켄신을 괴롭히기 위해선 뭐든 다하는 광인이 되었다면...?  작품의 향방은 바뀌었을까?


애니메이션 사에 길이 남을 '추억편' [출처: 바람의 검심 추억편]


3.오히려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것은 OVA로 제작된 '바람의 검심 추억편'일 것이다. 고아인 켄신은 유녀들과 이동하다가 산적떼의 습격을 받는다. 무차별 학살에서 켄신도 죽음에 직면하지만 마침 근처에 있던 천재 검객 히코세이 쥬로가 살려준다. 


쥬로가 켄신을 살려준 이유는 단순한 변덕이었다. 당시 그는 지켜져야 할 여자와 아이들이 돈때문에 학살당하고, 백성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개혁을 빌미로 백성을 학살하는 현실에 절망해있었다. 그리고 검을 갖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절망해 있었다.


하지만 그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변덕을 부려 구한 아이는 일행뿐만이 아니라 도적들의 묘까지 만든것이다. 그는 켄신에게서 일그러진 세상을 구할 도량을 본다. 그리고 그에게 최강의 검술 '비천어검류'를 가르친다.


하지만 켄신은 이 훌륭한 스승에게서 뭘 배웠는지 메이지 정부의 암살자로 전락하다. 세상을 구한것이 아니라 일그러뜨리는 소용돌이가 되고 만다. 이 소용돌이는 결혼을 앞둔 자경대의 청년을 죽인다. 그리고 이 청년의 약혼자 '유키시로 도모에'는 청년을 찾아 교토로 올라오고, 도모에에게 켄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이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무간지옥으로 빠진다.


검은 흉기, 검술은 살인술 - 히코세이 쥬로
당신은 피의 비를 내리시는 군요 - 유키시로 도모에


켄신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는다. 그는 도모에를 사랑하게 되자만 시대는, 켄신이 만든 소용돌이는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태풍이 된다. 어느날 죽인 한 청년이 남긴, 피가 멈추지 않는 칼자욱은 사랑하는 도모에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제서야 켄신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깨닫는다. 그리고 도모에는 과오에 절망한 그의 뺨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낸다. 

이 상처로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그러니 괴로워하지 말아요.


아마 도모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출처 : 바람의 검심 추억편


4. 하지만 작가가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추억편이 최고의 명작으로 칭송받으면서도 이 반성과 용서의 이야기는 이어지지 못했다. 추억편의 대히트를 계기로 만들어진 속편격인 '성상편'은 켄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약자를 괴롭히는 전쟁 '남경대학살'에 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제대로 마무리지을 기회조차 잃어버린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슈에이샤는 작가가 범죄로 인해 체포되자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지속적인 언론의 노출로부터 출판사와 작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어이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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