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식공장장 Jan 18. 2018

닌텐도 라보, 닌텐도의 놀라운 접근방법

이슈에 접근하여 해결법을 찾아내는 기술

https://labo.nintendo.com/


닌텐도가 조용히 지내는가 싶더니 대형 뉴스를 발표했습니다. <닌텐도 라보> 프로젝트를 시동한 것입니다.

닌텐도 라보 프로젝트란 닌텐도 스위치의 게임 소프트웨어인데, 이게 좀 많이 특이해서 게임 소프트와 페이퍼 크래프트를 동봉한 형태입니다.


이렇게 게임에 동봉된 설명서대로 동봉한 종이를 잘라서 이어붙이면 [출처 : 닌텐도]


피아노, 낚시대 등 다양한 놀이기구가 만들어집니다 [출처 : 닌텐도]


또한 영화 리얼 스틸처럼 로봇을 조종할수도 있죠. [출처 : 닌텐도]

다들 많이 감탄하신 모양인데, 글들을 읽어보면 그분들과 저는 포인트가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감탄하는 포인트는 창의성이지요. 하지만 전 이 창의성과는 별도로 닌텐도라는 기업에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영상은 직접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X-RLOcV9L68



놀란 이유 1 : 마케팅 실패에서 배우는 방법

닌텐도 Wii U라는 게임기를 아시는지요? 닌텐도 Wii U는 2012년에 발매된 닌텐도의 거치식 하드웨어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기는 초반부터 잡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출처 : 닌텐도

바로 이렇게 생긴 게임기인데, 엄밀히 말하면 닌텐도 스위치의 과도기적 형태 하드웨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하드웨어를 축소해서 컨트롤러에 집어넣고, 양쪽을 분리해서 놀잇감을 늘린 것이 닌텐도 스위치니까요.


하지만 닌텐도 스위치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휴대용과 거치기의 통합>으로 명확했던 반면, 저 기기는 콘셉트가 진짜 애매했습니다. 닌텐도는 기존의 서드파티가 제작하는 게임마니아용 게임도 이식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서 서드파티의 참여를 유도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사람들은 저 커다란 컨트롤러에 주목해 버렸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게임이 나올 때마다 저 크고 걸리적거리는 컨트롤러를 활용하는 게임인지 아닌지에만 집중했고 이는 저 컨트롤러가 꼭 필요한 게임이 사실상 0개라는 닌텐도 Wii U의 현실과 맞물려서 처절한 매출을 낳았죠. 결국 Wii U는 VR을 표방했던 버츄어 보이를 제외하면 가장 실패한 하드웨어가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닌텐도 스위치도 Wii U의 전철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스위치가 발매되기 전에 나온 보도자료나 관계자 인터뷰를 보면 VR에도 대응하는 게임기, 기존 마니아도 닌텐도 팬도 만족할 수 있는 게임기 등 갖은소리가 다 튀어나왔는데요, 이걸 다 종합해보면 닌텐도 스위치는 어중간한 게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닌텐도는 닌텐도 스위치를 낼 때 집에서도 즐길 수 있고 그대로 밖에서도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그런데 제가 정작 신경 쓰인 소프트웨어는 크게 홍보하기는커녕, 부각도 안 시키는


출처 : 닌텐도

<닌텐도 원투 스위치>였습니다. 


이 게임은 기존의 스위치 게임들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다른 게임들, 게임 사상 걸작으로 남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와일드, 슈퍼마리오 오디세이가 기존 게임 유저를 위한 게임이라면 저 게임은 전 CEO인 고 이와타 사토루 씨가 추구하건 '남녀노소 게이머가 아닌 사람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VR이라는 하나의 신흥시장이 강조하는 체험에도 걸맞은 게임이었죠. 


그런데 닌텐도는 다른 경쟁사가 PS VR이니, MS 홀로그램, 키넥트 등을 내놓으면서 VR에 집중하고, 동작인식을 홍보하는 와중에서 이를 잘 활용한 좋은 게임을 내놓고 철저히 묻어버렸어요. 이유가 뭘까요?


닌텐도는 Wii U에서 했던 마케팅 실패를 답습하지 않은 겁니다. 여러 가지 콘셉트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워집니다. 원래 이런 식의 마케팅은 닌텐도가 업계를 독점하던 시절에도 안 하던 마케팅인데 이후 이와타 사장 체제의 <게이머 + 일반인> 대상 마케팅이 자리를 잡다 보니 Wii U에서 헛짚은 것이죠.


그래서 닌텐도는 과거의 실패를 깨닫고 닌텐도 스위치 발매 당시에는 저런 콘셉트의 게임을 내놓고도 쓱 묻어버렸습니다. 그게 먹혔는지 스위치는 기존 게이머 사이에서 확실히 보급되었고, 그렇게 시장에 안착하자 이번에는 <닌텐도 라보>를 내놓은 것이죠. 

IT제품에서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은 마니아를 확실히 끌어들여서 시장을 다져놓고 일반인들을 체험을 통해서 유입시키는 겁니다.


Wii U도 그랬고, 3DS도 그랬고 마케팅 대상을 너무 광범위하게 잡아서 정작 타깃시장이 애매했었는데 이를 깨닫고 극복했습니다. 이번에는 정확히 핀포인트로 각 대상을 공략하고 있어요. 이게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닌텐도처럼 일본 교토기업 = 꽉 막히기로 유명한 기업에서는 말이죠.



놀란 이유 2 : 신규 시장에 접근하는 방법

게임 하드웨어에서 <주변기기>를 활용한 체험 소프트는 판매량을 높게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주변기기를 구매하는데 추가 금액이 들어가고 이것이 소비자 부담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죠.


소니의 PSVR, MS의 키넥트는 초기 발매가가 각각 399, 199달러였습니다. 게임기 가격이 299~499달러라는 걸 생각해보면 30~60%에 달하는 추가금액이 필요한데요, 여기까지 갈 것도 없이 건슈팅 게임에서 필요한 건 컨트롤러는 39~49달러 수준임에도 소비자는 부담으로 느낍니다.




이걸 소프트웨어 제조사도 모르지는 않아서 보통 10~20달러 낮은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내지만 그래도 부담으로 여겨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주변기기를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게임 중에 게임 판매 순위 50위권 안에 들어간 게임은 한 손에 꼽습니다


그런데 닌텐도 라보는 접근방법이 색다릅니다. 초기 작품은 두 가지로 발매됩니다. 우선 6980엔인 버라이어티 킷은 피아노, 집짓기 놀이, 무선 벌레 인형 등등이 들어있습니다. 7980엔인 로보 킷엔 아예 로봇형의 등짐, 발판, 페달이 들어있습니다.


이걸 기존의 게임 제조사가 만들면 일일이 금형을 사출 해서 전자부품을 집어넣은 컨트롤러로 내놓을 겁니다. 실제로 PSVR의 경우, VR구매 가격은 399달러, 조종간인 무브 구매 가격은 129달러, 건슈팅을 위한 컨트롤러는 39달러 등 전부 별매하죠.


하지만 닌텐도 라보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종이로 구현하면 됩니다.


동영상을 유심히 볼 때 종이 자체에는 어떤 기기장치도 없는 듯합니다. 닌텐도도 그걸 강조하려고 일부러 공장에서 사출 하는 장면부터 보여주는 거예요. 단가는 필연적으로 낮습니다. 제조사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에 맞는 모양만 종이로 찍어내면 됩니다. 카드보드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요? 괜히 구글이 VR을 카드보드로 보급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저러면 기존에는 제조단가의 벽에 부딪혀서 낼 수 없었던 수많은 아이디어는 물론, 역시 공간과 제조비용의 문제로 가정용 게임화하지 못했던 다양한 상품도 닌텐도 스위치로 발매가 가능합니다. 


기존의 주변기기를 파는 마케팅 방식은 고객이 필연적으로 <나중에 대응 게임이 안 나와서 짐이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닌텐도 라보>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로보 킷에서 나온 암 페달, 풋페달, 등짐 다 합쳐봐야 원가는 얼마 안 됩니다.


그 게임만을 위한 오리지널 아이템을 만들어도 비용 부담이 낮습니다.
창의성과 실리 양쪽을 모두 잡았습니다.



놀란 이유 3 : 고객을 놀이로 끌어들이는 방법


요즘 고객들은 제조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을 좀처럼 싫어합니다. 일례로 중세시대 공성전을 자유자재로 벌일 수 있는 게임을 만들 때 제조사는 기껏해야 창의적으로 투석기, 성벽이나 쌓아주길 기대했겠지만


출처 : 비시즈

정작 사람들은 저런 걸 만들어서 놀고 있습니다. 


닌텐도 라보는 우선 만드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닌텐도는 동영상에서도 보여주듯 굳이 자신들이 제공한 프레임대로만 놀라고 하지 않습니다. 동영상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색칠한 라보 제품들이 수 놓입니다.


아마 구조상 지정된 형태에서 너무 벗어나면 정상적인 작동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자유로운 창의품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당장 닌텐도 라보 로보 킷만 해도 퍼시픽 림, 리얼 스틸, 건담을 재현하겠다는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를 위한 접근방법도 이채롭습니다. 이 게임은 버라이어티 킷, 로보 킷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버라이어티 킷은 딱 봐도 아이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건반 장난감, 벌레 장난감은 취학 전 아이들이 으레 거쳐가는 통과의례 같은 제품이죠. 


반면 로보 킷은 딱 봐도 조립 난이도 자체가 만만치 않습니다. 고무줄을 이용한 다양한 구동부와 옵션 파츠는 저 같은 청년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아마 제품이 나오면 저 구조를 활용해서 오리지널 구동부가 들어가는 자작품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닌텐도는 고객에게 한 차원 높은 놀이를 선물했습니다.
조립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자 콘텐츠입니다.




마치며

사실 닌텐도 스위치는 VR에도 대응한다는 발표를 듣고, 원투 스위치라는 결과물을 봤으면서도 '기껏 해봐야 외부 장비를 발매해서 스크린을 장착시킨 물건'일 거라고 우습게 봤는데 결과는 놀랍습니다. 


경쟁자보다 훨씬 저렴한 저가격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체험을 제공합니다.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서 놀 수 있습니다.


정작 걱정스러운 건 경쟁사 들일 겁니다. 가장 낮은 가격으로 체감형 게임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가장 합리적이면서 즐거운 버츄얼 리얼리티를 제공했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새 하드웨어에 맞는 개발비를 들일 필요 없이 카드보드에 맞는 게임만 내면 되니 비용 부담도 재고부담도 줄어들게 될 테고요. 소비자 입장에서도 지원 게임이 앞으로 안 나올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만약 닌텐도 라보가 실패해도 게임하나 값이니 큰 부담이 안되거든요.


물론 절대 실패 할리가 없습니다. 닌텐도 라보는 제조사, 소비자의 손을 모두 들어준 게임입니다. 또한 게임이 추구하는 한 차원 높은 창의성을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저도 스위치가 갑자기 사고 싶어 졌습니다. 닌텐도 라보 만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시민 작가 비트코인 일침, 정재승 교수가 놓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