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3시간 취침 후 다시 출발한다!!
"5월 2일 06시 39분입니다."
강한 햇빛이 하얀 텐트 안을 눈부시게 밝힌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크게 하는 히맨.
늦게 자도 이 시간에 눈이 떠지네요
"더 자고 싶어요. 물소리가 나고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나고 하는데, 이소리 때문에 오히려 더 푹 잘 잔 거 같습니다. 자연의 소리라고나 할까요?"
"피곤해~ 빨리 빅 베어로 가고 싶습니다."
잘 잤다면서도 피곤하다고, 더 자고 싶다고 말하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다. 그럼에도 아주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코펠을 꺼낸다. 오늘 또한 야간 운행이 계획되어 있어 아침을 먹는 시간이 여유롭다. PCT에서의 주 아침 메뉴인 히맨만의 또띠아 먹는 법을 고프로를 세워두고 찍는다.
"아침식사를 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먹는지 보여드릴게요."
재료 : 또띠아 2장, 딸기잼, 땅콩버터, 우유 파우더, 코펠, 스푼, 물
1. 또띠아 한 장에 딸기잼을 펴 바른다.
2. 땅콩버터를 또 다른 또띠아에 펴 바른다.
3. 딸기 잼과 땅콩버터를 바른 면이 맞닿게 합친다.
4. 코펠에 우유 파우더를 붓고 물을 부은 후 저어준다.
5. 한 손에 또띠아 한 손에 우유!
- 히맨의 아침 메뉴 레시피 : 또띠아 中
"음~ 좋아!"
또띠아와 우유를 자랑하듯 양손에 들고 내보이고서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침식사를 즐기는 히맨. 식사가 끝난 후 커피 타임을 갖는다. 왼손으로 머리를 괴고 침낭을 덮은 채 옆으로 누워 새끼손가락을 치켜든 오른손으로 커피가 든 코펠을 기울인다. 한 모금 들이킨 히맨이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린다.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널 가둔 그 벽을 부숴
알고 있었던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
Just breath in & breath out
- BGM : Nell- Ocean of light 中
조금씩 텐트 안의 공기가 뜨거워진다. 몸이 서서히 달궈지는 것이 느껴졌는지 몇 번 뒤척이더니 이내 텐트의 지퍼를 당겨 문을 열어젖힌다. 바로 옆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한밤 중 운행을 마치자마자 정신없이 텐트를 치고 눕느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계곡이다. 물이 있다는 것 외에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피곤한 히맨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물이 흐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룻밤 머물 곳으로는 충분한 아니 훌륭한 사이트다. PCT하이커에게 사막 구간에서 물이 흐르는 사이트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오늘 하루 물 걱정 없이 걸어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이 있다는 것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눈을 비비며 텐트에서 나온 히맨이 계곡 한가운데 돌 위에 앉는다. 알록달록한 아쿠아 슈즈인 알록 스킨슈즈가 눈에 띈다. - 히맨이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 REI에서 산 파랑 휴대용 타월을 계곡물에 담가 적시더니 머리 위에 얹고 앉아 자리를 잡더니 손에 들고 나온 코펠에 차가운 계곡 물을 뜬다. 딱 한 사람이면 족할 600ml 용량의 코펠은 히맨에게 따뜻한 밥솥이자 밥그릇 그리고 커피잔과 가끔은 술잔이 되어 주기도 한다. 발포 비타민 분말을 뜯어 붓고는 휘 저어 타 먹는다.
'아~좋다!'
이 맛을 가장 가깝게 나타내는 음료를 말하자면 환타 정도 될까? 비싸서 몇 개 사지 못 한 탓에 정말 먹고 싶을 때만 타 먹는 비타민은 다음 재보급지인 빅베어 시티에서 몇 개 받아 볼 수 있다.
히맨의 뒤로 형이 스마트 워터 페트병에 물을 받으려 계곡에 발을 담근다. 여유롭게 고프로를 가지고 이리저리 촬영을 해본다. 영락없이 계곡으로 피서 나온 하이커의 모습이다.
"5월 2일 09시 05분입니다. 계곡에서 놀고 있습니다."
언덕 아래 그늘에 앉은 형이 뭐라 한 마디 한다.
"좀 더 크게 얘기해야 돼요~ 하우징 때문에..."
고프로는 방수 하우징을 낀 상태에서는 소리가 잘 녹음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형이 큰 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새벽까지 운행하고 원래 자야되는 시간인데 해가 뜨거워서 깼어요."
"아 근데 계곡 옆이라서 엄청 시원한 거 같아요."
그건 아닌 것 같다. 시원한 건 계곡 물뿐이다.
"맨날 좋은데 만날 때마다 여기서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가 떠나야 될 땐 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이딜와일드부터 지기 앤 베어, 화이트 워터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그리고 맘껏 늘어져 있어도 좋을만한 좋은 장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곳을 떠나와야 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히맨.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일 운행 기록을 하면서 디테일하게 잡은 운행 계획에 압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결코 여기 놀러 온 것이 아니다! 완주와 기록이 유일한 목표다!'라고 되뇌고 또 되뇌던 히맨이기도 하다.
"오늘도 30km 이상 갈 거 같은데 걱정은 안 되시나요?"
히맨이 인터뷰하듯 형에게 질문을 던진다.
"완전 걱정돼~ 졸릴까 봐. 저는 완전히 바른생활 사나이라서... 6시 기상 10시 취침이라서 빨리 시차 적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어떻게 되든 내일 꼭 빅 베어 시티에 도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히맨은 계속해서 이어질 야간 운행이 걱정인 모양이다.
"내일 가면, 4시까지 가면 갈비가 기다리고 있어요. 갈비 먹으러 가요."
형은 갈비 먹을 생각에 신이 나있다. 데이비드 김 선배님은 PCT 출발 전 처음 만나 함께 베이든 파월 산(Mt. Baden Powell)을 오른 인연으로 둘을 응원 차 만나러 오신다고 했다. 만나기로 한 곳이 빅 베어 시티. 이렇게 일정을 맞추려 살짝 무리하며 운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늘어지는 PCT 초반 운행이 걱정이었던 히맨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네. 그렇다고 우리가 맨날 노는 건 아니에요 맨날 이런 것만 찍어. 힘들 땐 힘들어서 못 찍어."
신이 나있는 건 맞장구치며 멘트를 날리는 히맨도 마찬가지.
오랜만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점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형은 강렬한 해를 피해 텐트 플라이를 그늘막처럼 치고서 그 아래 해를 피해 누워 낮잠을 잔다. 자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곰 같다. 다시 보기 힘든 그 모습을 고프로에 담는다.
히맨도 한숨 자야겠다며 매트리스를 펴고 앉아 고글을 쓰고 엠피쓰리를 귀에 꽂는다. 그리고 누우며 물에 적신 파랑 수건을 얼굴 위에 덮는다. 이 모습을 바로 앞에 세워둔 고프로가 찍고 있다. 몇 초 안돼 일어난 히맨이 촬영 종료를 위해 다가와 셔터를 누른다. 그렇다 연출이다. 이렇게라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이제 진짜로 낮잠을 자려 눕는다.
'뜨겁다!'
사우나라고 생각하며 뜨거움을 참아보려 애를 쓰지만 그리 쉽지 않다. 1시간도 안돼 일어나 다시 텐트로 들어간다. 텐트 안은 훨씬 뜨겁다. 옷을 전부 벗고 쇼트만 입은 채 매트에 누워보지만 잠은 더 이상 자기 힘든 모양이다. 아이패드를 들고 영화를 튼다. 영화는 <국화꽃 향기>. 매번 봐야지 하면서 미루다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패드도 더위를 먹었는지 오락가락한다. 3년간 아이패드를 쓰면서 처음으로 온도 경고 알람을 보게 된다.
'사우디에서도 멀쩡했던 아이패든데...'
열을 식혀볼까 하여 지퍼백에 아이패드를 넣고 차가운 계곡물에 담근다. 그런데 웬걸 물에 담근 잠깐 사이에 밑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 게 보인다. 화들짝 놀라며 들어 올려보지만 이미 침수된 아이패드. 오작동을 일으키는 화면을 쳐다보며 허탈해하는 히맨. '마르면 괜찮겠지?' 하며 매트 위에 내팽개치듯 던져 놓는다.
그러곤 계곡에 앉아 밥을 준비한다.
"아~ 냉면 먹고 싶다."
밥을 하고 있는 히맨을 본 형이 냉면을 먹고 싶다며 "냉면 냉면 냉면~" 하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여전히 더운 날씨에 그냥 계곡에 계속 앉아 밥을 먹는다.
이제 곧 출발할 시간. 더위 때문인지 생각보다 꽤 길게 느껴진 휴식이 끝나고 슬슬 배낭을 꾸린다.
"17시 40분. 금일 운행을 시작합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길게 새벽까지 운행할 예정이고 거리는 조금 더 늘려서 30km 이상 운행할 예정입니다."
야간 운행을 시작한다. 이제 밤에 걷는 일이 익숙해진 듯하다. 길 또한 앞으로 쭉 뻗어있어 길을 잃을 일이 없을 것 같다. 그저 달빛을 즐기며 여유롭게 걸어나간다.
"20시 05분. 이제 막 해가 완전히 저물었고요. 정확히 한 시간 걷고 10분 쉬는 운행 방식으로 새벽 2시까지 적어도 30km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이동 중입니다. 가민 포러너 210 장비 손목시계 장비를 사용해서 페이스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페이스란 1km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페이스가 13분이다 하면 1km 가는 데 13분이 걸린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현재 목표는 1시간에 4km를 가는 건데요 그렇게 되면 15분 페이스로 꾸준히 이동을 해야 합니다. 가민 장비의 페이스를 계속 체크를 하면서 최대한 15분에 가깝게 1시간에 4km를 이동할 수 있도록 유지하면서 이동 중에 있습니다. 월광도 어제와 같이 상당히 밝은 편이고요..."
헤드램프를 켜고 바닥을 살피며 걷다 멈춰 선다. 바닥에 솔방울로 만든 하트가 히맨의 눈에 들어온다. 이 길 위에서는 종종 다양한 하이커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 작품을 만드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매력적인 재료가 솔방울이다. 솔방울 하트를 지나 얼마나 갔을까. 새벽이 되면서 둘 다 졸린 모습이기는 하지만 내일이면 마을에 들러 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며 걸어나간다.
"5월 3일 02시 53분입니다. 운행을 종료합니다. 약 9시간 운행했고 30에서 31km 운행했습니다. 애초 계획했던 대로 잘 진행됐고 철저하게 1시간 운행 10분 휴식 지켜가면서 성공적으로 운행을 마친 것 같습니다.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 후에 내일 오전에 운행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일단, 오늘 종료합니다."
이제 30km 이상의 장거리 운행에도 몸이 어느 정도 많이 적응된 듯하다. 히맨은 운행 종료보고를 한 후 형과 다음 운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내일 아니 오늘 낮에 우리를 마중 나오시는 선배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오전 일찍 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빅 베어 시티(Big Bear City)가 얼마 남지 않았다!
히맨은 텐트를 치고 들어가자마자 서둘러 펜과 다이어리를 꺼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잘 시간을 쪼개 잠시라도 기록을 하려는 모양이다. 오늘의 다이어리 마지막 문장에서 결연한 의지가 보인다.
'이제 우리는 3시간 취침 후 다시 출발한다!!'
- 장거리 야간 운행 후 뻗기 직전...
눕기 전 히맨은 타이레놀을 하나 입 안에 털어넣는다. 불규칙하고 무리한 운행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함께...
WRCS0230(Campsite near Mission Creek, 369.37)-near RD0249(399.96)
by 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