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맨 이즈 인 제주_Day#4_20170428
“어머 여기 사람있는 건가?”
해가 밝자 다시 전망대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네.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누운 채 숨죽이고 있었다. 별 사진찍고 영상만들고 글쓰고 하다 보니 2시간 밖에 못 잔거 같다. 평소대로면 늦장부리며 뒹굴 댔겠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어 아쉽다. ‘에이 관리자 오기 전에 언능 접자.’
‘아~ 나 오늘 안 걸으려고 했는데...’
거린사슴오름 전망대 옆으로 난 길 위를 어느새 걷고 있다. 이제는 뭐 뚫린 길만 보이면 별 고민없이 향한다.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걸어야 하는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이 길을 걸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없어졌다. 그만큼 내 발이 지면에 붙어 방황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여기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온 김에 갈 수 있는 길은 다 가봐야지’
이런 생각 혹은 변명은 이제 나도 지겹다. 그런 일로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거든. 없어 보일지 모르겠다만 ‘그냥 궁금해서’가 정답이다. 이제는 호기심에 막 들어가는 거 같다. 일단 접어들면 이 길이 확실히 아니라는 걸 깨닫기 전에는 긴가민가하면서 끝까지 걸어 나간다. 그 길의 끝에서 왜 미리 안 알아봤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역시 ‘역시 내 감이 틀리지 않았어’라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 잠시 길을 샜지만 다행히 어렵지 않게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오름으로 오르는 길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진짜 길은 길인 듯 아닌 듯 보였던 작은 입구였다. 약간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 않은 적당한 높이의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오름이었다. 예정에 없던 아침 산책 덕분에 상쾌하게 하루가 시작된다.
6~7킬로미터 정도인 줄 알았던 중문까지의 길은 거의 10킬로미터다. 도로를 따라 쭉 직진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1100 드라이브 도로라고 불리는 1139번 도로는 이름처럼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것 같다. 도로 양 옆으로 야생이 펼쳐진다. 나쁘지 않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오전 중에 중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에 딱 좋은 시간이지.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한 고기국수집에 들어갔다. 이번 제주도 여행 중 처음으로 사먹는 음식. 꽤 만족스러웠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좀 씻고 싶었다. 사우나는 4500원. 와 싸다. 찜질방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샤워 후 아쉬운대로 탕 옆에 있는 플라스틱 베드에 누워 눈을 붙였다. 약속했던 1시를 넘겨 2시 되기 전에는 가겠다했더니 그럼 그냥 4시에 오란다. 붕 뜬 시간 동안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정리할 게 많다보니 시간이 참 잘 간다.
오픈컬리지에서 처음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PCT에 대해 들려주었다. 어쩌다보니 여행 중에 PCT 강연을 하게 된...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보여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신나서 힘겹게 만든 나의 영상까지 보여준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사람들은 하나 둘씩 각자의 일정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법환포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 작가님 행사하는데 같이 가볼래요?”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는 물론 어디서 잘 지도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제안이 반가웠다. 그렇게 이번 여행 처음으로 차를 타고 법환포구로 향한다. 운전석에 앉은 그녀는 제주에 여행 왔다가 아예 눌러 앉아버렸다고 했다. 나도 제주에서 이러고 돌아다니다 보면 아예 눌러 앉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안에서 곧 있을 행사만 아니면 나는 이곳에 더 있으려고 했다.
흔한 게스트 하우스 같지 않은, 일관성있게 잘 디자인 된 그곳의 거실에 사람들이 둘러앉아있었다. 뭔가 되게 튀는 알록달록을 입은 쨍쨍님은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였다. 정말 많은 여행이야기가 있었다. 50살부터 본격적으로 진짜 여행을 시작한 그녀의 인생을 즐겁게 살고 계신 모습이 좋았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선생님 시절 아이들과의 추억이었다. 우스꽝스럽게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했던 한 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선생님답지 못하다고 하는 다른 선생님들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왜 재밌는 수업에 나는 함께 하지 못하죠?”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아니 이미 그 전에 결정했다. 이 밤에 걸어서 당장 사이트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또 처음이다. 이번 여행 중 첫 실내 취침. 얼마만의 게스트 하우스인가. 좋다. 나도 이런데서 사람들에게 밤늦도록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침대로 돌아온 나는 다이어리를 쓰겠다며 호기롭게 노트북을 펼쳤으나 꾸벅 꾸벅하며 외계어를 써댔다. 결국은 컴퓨터를 끄고 눈을 붙이기로 했다.
히맨 이즈 인 제주_Day#4_20170428
거린사슴오름 전망대 to 오픈컬리지
@말짜하우스
by 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