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맨 이즈 인 제주_Day#3-2_20170427
그럼 방금 올랐다가 내려온 그 길은 뭐란 말인가? 한참 뒤에야 혹시 그 길이 근처에 있는 한 오름인 것 같다며 추측할 뿐이었다. - 지금 찾아보니 붉은오름이다. -
다시 임도와 숲길이 짧게 반복되는 천아숲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조금 전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던 붉은오름의 길과 비교가 되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기에 더욱 속도를 높여 걸었다. ‘빨리 끝내 버려야지.’
천아숲길의 끝이 어딘지 참 애매했다. 그렇다. 다음 이어지는 코스인 돌오름길에 벌써 진입해버렸다. ‘분명 빠질만한 길이 있지 않았는데...’ 그저 속으로 한숨을 내뱉을 뿐이다. 다시 멈췄다. 지도 앱을 꺼내들었고 근방의 도로로 탈출하는 길도 그다지 짧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냥 5.6킬로미터의 돌오름길까지 걷기로 한다. 좀 전에 천아숲길 500미터 남아서 완전 좋아했는데 말이다. 5.6킬로미터 늘어나니 참 기분이... 에휴... 다른 것보다도 지금 저녁 7시가 다됐는데, 곧 해가 질 텐데... 야간 산행이 위험하거나 무서워서가 결코 아니었다. 밤이 되면 길 영상이 의미가 없음이 더 난감했다. 어차피 걷는 길 예쁘게 잘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데... 그렇다고 걸은 길을 다시 걷는 건 그다지 땡기지 않았고...
‘길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중간중간 영상을 끊어가며 어두운데도 잘 나오는지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하늘이 열려있어 늦은 시간까지 어느 정도 볼만한 길을 보여줬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또다시 멈춰 방금 촬영한 영상을 확인해보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보여야 할 화면에는 시커먼 그림자같은 나무와 바닥이 화면의 절반이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에이 여기까진가 보다 검은 거 찍어봐야 쓸데도 없을 거고...
'엇 잠깐만!'
"헐 이거 꿈에서 봤어~!"
데자뷰. 제주도 오기 전 짐을 밤새 꾸리고 새벽 4시에서야 잠든 날이었나? 그때 꿈속에서 나는 날이 어두워져서 더 찍을 수가 없다며 철수했었다.
앞으로 보이는 숲길은 마치 어두운 터널과 같았다. 그 터널에서 뭔가 싸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낮은 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가며 그 바람과 맞부딪혔다. 바람이 귀를 휘감으며 들려오는 소리는 온 몸을 오싹하게 했다. 마치 칠흑 같은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모든 감각들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PCT에서 야간 운행을 나홀로 할 때의 기억을 회상할 뿐이었다. 그리고 배가 고플 뿐이었다.
‘아~ 치킨먹고 싶다. 어서 운행 끝내고 먹어야지!’
드디어 산길이 끝나고 도로가 나왔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서귀포 자연휴양림이다. 어둠 속이었음에도 미국에서 보던 꽤 규모있는 캠핑장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데크 사용은 지금 안 되나요?’
직원들은 나를 재워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태워주진 않을까 은근슬쩍 기대하며 근처 가까운 마을 등을 물어봤으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그래도 가까운 마을과 잘 수 있을만한 장소를 알려준다. 텐트 칠거면 도로 따라서 한 3킬로미터 내려가면 폐교가 나온다며... 학교 근처에 가면 잘만한 곳이나 상가들이 있겠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의 운행 보고와 현재의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사무엘님에게 전화를 했다. 가까운 머물만한 곳을 찾아주셨는데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텐트를 칠만한 곳이 있었다. 도로를 따라 내려온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영업이 끝나 불이 꺼진 매점이었다. - 아 매점을 털고 싶다는 생각이... - 거린사슴 전망대 데크에는 망원경이 있었다. 통화중에 이곳이 야경과 별 촬영장소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참 사이트로써의 사용이 사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깔끔해 보이는 화장실의 창고에 위치한 콘센트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망대 데크와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좀 있어 어둠을 뚫고 오가야 했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거지처럼 전기를 구걸하듯 화장실 소변기 앞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연결하고 고프로 배터리를 연결했다.
‘이제 어서 텐트치고 밥 먹어야지.’
“아 오늘은 밥 두 개 먹어야 겠어요”했는데 짬뽕라면밥 하나 먹으니 배가 불러온다. 제주도 가면 한번 들러야지 했던, 구글 지도에 찍어놓았던 오픈컬리지가 생각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도로만 따라 내려가면 있다며 내일 만나기로 했다. 내일은 여행이야기나 나누며 오늘의 피로를 풀어야겠다. 근데 그러려면 도로를 또 6~7킬로미터 걸어야한다. 뭐 이 정도는 동네 마실이지!!
그나저나 밤하늘에 별이 수도 없이 많다. 이제껏 본 밤하늘 중에 손에 꼽힐 정도였다. 여지없이 고프로를 꺼내 이리저리 찍어본다. 각도를 맞추고 셔터 스피드를 조절하고...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별을 찍기 위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차량들 덕분에 멋진 별 타임랩스는 더 늦은 새벽시간이 되어서야 제대로 찍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텐트에서 어느새 꺼져버린 배를 달래기 위해 야식을 준비하고 - 그래서 결국에는 밥 두 개를 먹고 만다. - 글을 쓰고 영상 다이어리를 남겼다.
“오늘 운행거리 40킬로미터입니다. 24킬로미터 예상했는데 예상 거리보다...”
별 사진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다시 화장실 바닥에 앉아 찍은 사진으로 영상을 만든다. 정말 결과물을 빨리보고 싶긴 했나보다. 혹은 빨리 자랑하고 싶었거나...
어느새 새벽 3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아... 언능 자야지...’
히맨 이즈 인 제주_Day#3-2_20170427
정자 to 거린사슴오름 전망대
20170428_01:29@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서
by 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