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닌가?

히맨 이즈 인 제주_Day#3-1_20170427

by 히맨

지난 밤. 잠이 쉬이 들지 않았다.

분명 멋진 사이트였지만 누군가 와서 여기 자면 안된다고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진 바람소리와 덜그럭 소리는 그 느낌을 증폭시킨다. 덜그럭 소리가 감지될때마다 몸은 어쩔수 없이 긴장을 하고 있었다. 불안을 덮어버리려 이어폰을 꽂은 나는 타이머 30분으로 맞춘 음악을 두번이나 반복해 듣고도 잠은 오지 않았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일찍 눈이 떠진 건 역시 불안감 때문일거다. 또 다른 불안이 있었다.


'오늘 길을 잃지 않고 잘 갈 수 있을까?'

내가 길치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PCT에서 이미 증명됐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여기가 아닌가?”


솔직히 실망이었던 임도만으로 이루어진 노루손이 오름은 내려가는 길은 그냥 산길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비가 되지 않은 만들다 만 길 같았다. 결국 길을 잃었다. 나는 왜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지 않았을까... 나는 참 걸어온 길을 다시 걷는 걸 싫어한다. 그리고 잘 못 든 길을 고집스럽게 어떻게든 뚫어보려 붙잡고 또 붙잡는다.

‘하... 뒤쪽 길이 맞나?’ 고개를 뒤로 돌린 순간 하얀 무언가가 몸을 숨겨 달아났다. 뭐지? 귀신인가? 아직 시간이 좀 이른데... 개의치 않고 내 직감대로 – 길치인 주제에 직감은 무슨... - 내려간다. 그냥 무식하게 뚫고 간다. 그런데 도저히 이건 아닌 거 같다. 분명 길처럼 보였는데... 뒤늦게 깨달았다. 키가 큰(?) 내가 지나갈 수 없는 걸 보니, 이제서 보니 짐승 발자국이다. ‘내가 속았구나.’

“앗 따거~!” 가시나무가 내 팔을 찌르고 다리를 찌르고 바지를 붙잡는다. 바로 밑이 입구 도로인데 왜 내려가질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여기서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아직 메인 코스인 한라산 둘레길은 진입도 못했는데...

한라산 둘레길에 접어들기 전에 충전과 급수가 필요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한울누리공원이 있다. 공원이라길래 진짜 공원인 줄 알았지 추모 공원일 줄이야. 오르막 도로를 한 500미터를 올라야 본 건물이 있는데 오르면서도 왠지 뭐 없을 거 같아서 다시 돌아갈까 고민했다. ‘에이 몰라 가보자’ 건물에 들어서자 어떻게 왔냐 묻는 직원의 말에 화장실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콘센트가 있는지 여부부터 스캔한다. 하지만 직원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 바로 옆인 그곳에서 충전하기에는 좀 그랬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보니 입구에 정수기가 있었고 콘센트도 있었다. 일단 작은 물통에 물을 받고 머리를 굴렸다. 바로 앞에서 너무 대놓고 어마어마한 장비들을 충전하기엔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었다. 바로 뒤편 직원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벽에 콘센트를 발견했다. 복도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플러그를 꽂는다. 완충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직원들 눈치도 봐야 했다. 그리고 2시에 입산을 제한한다는 한라산 둘레길 홈페이지의 정보는 내게 오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 밥을 먹고 싶었는데 거기서 물을 끓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라산 둘레길의 첫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천아숲길로 향했다. 지도에는 검색도 안 된다. 유일하게 검색되는 천아수원지 입구 버스 정류장을 목표로 걸었다. 도로를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아 이러다 도로만 찍고 돌아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도로는 이렇게 고생해서 찍을 게 아닌데...’

드디어 한라산 둘레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을 발견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런데 아래 한 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겹게 왔는데 입구까지 아직 2.2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다니... 물론 블로그 글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음에도 점심을 건포도로 때운 지친 나는 힘이 더 빠질 수밖에...

도로를 또 걷는다. 중간에 갈라지는 길이 있는데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 그냥 직진 그리고 도로의 끝. ‘왜 아무런 안내도 없는 거야!’ 확신은 없지만 오른쪽 임도로 내려간다. 산행 후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부부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이 길이 맞단다. 동시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어딜 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 길이 없었다. ‘아 저쪽인가 보다.’ 나는 뒤편에 난 길로 내려갔다. 언뜻 보기에는 분명 그 길 밖에는 안 보인다. 그러니까 걸었지 꼭 내가 길치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내려가서 보니... ‘아니 길이 없는데???’ 또 헤맨다. 돌을 밟고 미끄러지고 비틀대면서 나아가는데 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두리번댔다.

‘아 저긴가 보네’

처음부터 오르막이 계속되기에 근처에 있다고 알고 있던 오름인가 하면서 올랐다. 5분 정도 올랐나? 산약초 연구단지라며 접근하지 말란다. ‘이런... 여기도 아닌가벼~’ 출입제한 구역으로 막혀있지 않았다면 나는 하염없이 거길 계속 올랐을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아까 그 이정표로 돌아온다.

'도대체가 여기서 뛰어내리라는 거야 뭐야'

도저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길이 아닌 곳을 가리키고 있는 아무 생각 없는 듯한 이정표에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정표 뒤편으로 길도 없는 곳을 잠깐 헤치고 올라가 보다 포기하고 다시 내려오기도 하고 한참을 헤맨 끝에 돌계단이 있는 걸 발견한다. 하... 깊은 한숨은 무언가 복합적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니 잘 찍어봐야지 하며 셔터를 다시 새로 누르고 각도도 다시 확인한다. 아까 그 이정표보다는 알아보기 쉬워 이제 지도 보며 안 가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이제부터는 생각의 시간이다. 아니 불평의 시간인가?

‘이놈의 충전만 아니면 참 좋을 텐데...
아 그리고 길도 그다지...
접근도 너무 힘들고...’


배터리에 대한 스트레스에 잠깐, 몸이 피곤해지니 내가 생각한 진행은 이게 아닌데 하며 짜증이 났다.

영상 촬영에 대한 피드백을 생각하고 또 그 앱에 대한 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건 왼쪽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오르고 오르는데 이건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오지 같은 느낌이었다. 외국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아니 PCT의 어느 한 구간과 많이 닮아있었다.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렵지 않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길이었다. 기분 좋게 발 영상도 잠시 찍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텐트를 친다면 정말 대박인 정상의 사이트도 찾으면서 기분이 많이 풀어졌다. 이런 길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모은 영상을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제 내리막이다. 신나게 내려왔다. 그런데 초입과 끝부분에서 발견된 쓰레기는 참 안타까웠다. 초입에서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은박지와 비닐봉지를 보고서는 김밥을 먹었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끝부분에서 발견된 그것도 같은 구성이었다.

‘같은 팀인가 보네.’

그런데 같았던 것은 팀이 아니라 길이었다. 그렇다.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다시 원래의 길로 합류한 거다. 내려오면 거의 길이 끝나 있을 줄 알았는데 둘레길이 아닌 주변의 다른 길이었다. 결론적으로 8킬로미터 남은 지점으로 다시 복귀한 거다.

‘하... 제자리라니... 이젠 한숨 내쉴 힘도 없다...’


히맨 이즈 인 제주_Day#3_20170427_1

히맨 이즈 인 제주_Day#3-1_20170427

정자 to 거린사슴오름 전망대

20170428_01:29@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서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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