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히맨 이즈 인 제주_Day#7_20170501

by 히맨

어제 싸우는가 싶었던 개들은 야영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잠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했다. 역시 개들은 나보다 인기가 좋다. 앨리는 약속시간보다 늦었다. 늦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가 문제였다. 나는 기다릴 수 있었으나 배터리는 그녀를 기다릴 인내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나면 금방 충전할 곳으로 이동할 줄 알고 배터리를 펑펑 써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간만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텐트 안에서 뒹굴... 하지만 해는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뜨거운 햇빛에 텐트는 바짝 마른 반면 그 안의 나는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더 빈둥대기에는 너무 더워 일단 짐을 꾸린다. 바로 옆의 원앙폭포나 구경하고 돌아오면 대충 시간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와~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별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때우려 접어든 그곳에서 온 몸이 시원 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작은 폭포는 투명한 초록 빛깔의 물속으로 연신 시원하게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깊을까? 나도 다이빙을 하고 싶었다. 주변으로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인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또한 시원함이 느껴진다. 나도 맨발을 흐르는 물에 슬쩍 담갔다. 역시 예상대로 차가운 물은 PCT를 걸을 때 부은 발을 가라앉히려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갔던 때를 떠오르게 했다. 내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곡을 따라 내려다보이는 울긋불긋한 나무와 들판들 그리고 하늘은 그저 아름다움을 뽐낼 뿐이었다.

‘아 다이빙하고 싶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더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물에 들어갈까 생각을 두세 번은 한 것 같다. 하지만 앨리가 금방이라도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커다란 배낭을 다시 지고 움직이기가 귀찮아 그저 시원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바위 끝에 걸터앉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 고프로를 설치하고 이리저리 찍어본다. 오랜만에 의도한 연출 샷. 이럴 때마다 찍어주는 누군가가 없음이 아쉽다. 스마트폰은 꺼지기 직전이다. 20분이면 온다던 앨리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폭포에서 쉬고 있겠다고 이쪽으로 오라고 해놓기는 했는데... 누워서 자고 싶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많이 기다렸지~?”


막 잠이 들려는 순간에 깼다. 원래는 쨍쨍 님과 함께 셋이서 사려니숲길을 걸으려 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서로의 일정은 내일 쨍쨍 님의 집에서 맞춰질 것 같다. 그렇게 앨리와 둘이서 사려니숲길을 향해 달렸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주차장 근처 도로가에서 발견한 푸드트럭에서 수제 버거와 아메리카노를 사다가 차 안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 햄버거는 언제나 맛있다. 차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어깨를 압박하던 배낭 없이 걷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처음으로 고프로만을 가슴 앞에 단 채 걷고 있다.


“모든 길을 찍기는 하는데
그 속에 정작 나는 없더라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간만의 대화 상대가 생긴 듯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너무 나만 떠드는 거 같은데?’하면서도 나의 입에선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말 심심했나? 외로웠나?’ 어느 쪽이건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내가 한번 찍어볼까? 걷는 모습 나오면 되잖아.”

덕분에 길을 걸으며 카메라에서 처음으로 해방되었다. 찍히는 기분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누군가 계속 이렇게 찍어주면 좋겠다. 물론 고프로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 촬영 각도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계속됐다. 내가 무얼 할 때 좋은지, 그리고 무얼 할 때 내 존재를 느끼고 살아있음을 깨닫는지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건 그렇고 싫어하는 건 뭐야?”

희한하게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시로 말하고 다녔지만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이렇다 할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게 없다는 건 아닌데... 아무튼 바로 답하기 어려웠다. 그냥 떠오른 이미지는 ‘굴과 같은 해산물’이었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질문이 짧고 간단할수록 답은 어려웠다. 결코 바로 떠오르는 답이 없었다. 역시 또 즉흥적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그냥 ‘맥도날드’였다. 역시나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분명 다른 행복한 순간들이 많은데 말이다.

“그럼 넌?”

“음... 자는 거?”

음... 생각이 생각보다 싱겁다.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건만... 그 대답을 들으니 급 나도 생각났다.

“아, 텐트 안 침낭에서 잘 때가 행복하기는 해”

그래 나는 이거면 충분히 행복하기는 하다. 그런데 뭔가 더 없을까? 분명 있기는 할 텐데...

사려니숲길은 여러 번 와보기도 했지만 이전에 촬영으로 와서 2번이나 모든 길을 걷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혹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특색인데 문제는 길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 자칫 지루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바로 이전에 한라산 둘레길의 세 번째 코스인 동백길을 걸어서인지 그 지루함이 더 클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어차피 걷기로 했던 길이니까...’ 그래도 산길로 된 숲길은 역시 좋다. 다만 짧아서 아쉬울 뿐... 본격적으로 사려니숲길에 접어들기 전에 지금까지 본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길게 걸을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지는 않았던 앨리에게 전했다. 우리는 슬쩍 들어갔다가 슬쩍 나와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기나긴 나의 수다와 함께 두 시간은 걸은 것 같다.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바라본 풍경은 빨갰다. 제주도에 와서 그 어느 때보다 빨갛고 동그란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행복해 지금 이런 순간.”

앨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쨍쨍 님 집에 머물려던 일정이 내일로 밀리는 바람에 오늘은 산에서 자기로 했다. 앨리는 자신의 집이 고근산에서 가깝다고 했고, 이미 한 번 오른 적이 있는 그곳의 정상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는 나를 국밥집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순한 맛의 장터국밥을 먹었고, 나는 얼큰한 걸 먹었다. 편의점에 잠시 들러 맥주 한 캔과 과자 하나를 산 뒤 배낭에 넣었다.


“내일 9시에 고근산 아래에서 보자.”

산속으로 향하는 입구 아래의 도로가에서 나는 나의 집으로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안개가 잔뜩 낀 흐린 밤이다. 하지만 곧 날이 밝아오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나는 행복하다. 무엇보다 오늘은 맥주가 함께였고 배터리를 맘껏 쓸 수 있는 풍족한 밤이니까.

히맨 이즈 인 제주_Day#7_20170501

히맨 이즈 인 제주_Day#7_20170501

돈내코 야영장 - 사려니숲길 - 고근산

20170501@고근산 정상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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