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거예요?

히맨 이즈 인 제주_Day#11-1_20170505

by 히맨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오고 있으면 의욕이 꺾인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 오후까지 그냥 이러고 있을까?’

하지만 오후까지 버틸 물이 없었다. 배터리도 없었다.

‘스마트폰 없으면 버스도 못 타는데...’

무엇보다 이 비는 오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아~ 오늘 사전 투표 마지막 날인데...’

이번 여정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아 이번 대선은 사전 투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낭을 메고 제주도에서 투표하는 추억(?) 혹은 장면을 연출하고도 싶었다.


‘그럼 이제 탈출을 해보자.’


비올 때 가장 큰 문제는 내 통짜로 된 내 배낭에 있다. 텐트를 배낭 바깥이 아닌 배낭 안쪽 가장 아래에 패킹하는데, 때문에 텐트를 가장 먼저 넣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모든 짐을 먼저 텐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런 후에 텐트를 철수하고 텐트를 아래에 깔고 하나 둘 짐을 쌓아 올린다. PCT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나의 프로세스는 악천후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져 결국은 젖은 텐트를 가장 나중에 배낭 위쪽에 넣기로 하고 텐트 안에서 최대한 짐을 꾸렸다. 큰마음을 먹고 텐트 문을 열고 재빠르게 뛰쳐나와 팩을 뽑는다. 플라이를 걷자마자 배낭에 넣고는 이너텐트와 폴을 분리한다. 마찬가지로 배낭에 패킹한 후 레인커버를 씌워준다. 이전 같으면 레인커버를 쓰지 않았을 텐데 많은 전자장비와 특히 노트북이 걱정됐다. 출발.

이번 제주 여정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뛰듯 걷는다. 얼마 가지 않아 모자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15% 정도. 최대한 열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버스 정류장을 찾으려면 수시로 방향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금세 만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식당과 함께 있는 주차장이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젖은 배낭을 풀어헤쳐 급한 대로 화장실 콘센트에 스마트폰 배터리를 꽂는다. 하지만 빨리 버스를 타야 했기에 시간을 많이 가질 수는 없었다. 버스 정류장 위치만 다시 파악한 후에 다시 도로로 나선다. 이제 잔여 배터리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차들은 바로 옆으로 쌩쌩 달려 나가며 내게 빗물 샤워를 선사한다. 가끔 이럴 때면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내가 어찌할 방법이 있겠는가 하면서, 차에 치이는 그런 상상도 한다. 그리고 무섭게도 ‘될 대로 되라지~’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 그걸 또 ‘배낭을 멨으니까 충격이 좀 덜 하려나? 아니야 그래도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날아가겠지?’하는 생각은 사실 한 두 번이 아니다.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젖을 대로 젖은 바지는 스멀스멀 내려간다. 바지를 수시로 추켜올리며 빗속을 걸어간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전화는 꺼졌다. 혹시나 다른 정류장이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노선도 등을 살폈는데 다행히 맞게 온 거 같다. 정류장에 지붕이 있어 다행이다. 배낭을 내리고 서 있는 나의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의욕도 뚝뚝 떨어지지만 그래도 정류장에 도착했다는 건 영상으로 보고를 하고 싶어 가슴에 달린 고프로를 분리해냈다. 그런데 켜자마자 바로 꺼진다. 이럴 때 제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터리를 주섬주섬 꺼내어 교체하고선 다시 기록을 남긴다. 15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비속에서 모습을 나타낸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름도 생소한 ‘6 광장’이라는 정류장을 얘기한 내게 기사님은 어디로 가는 거냐 물으셨다. 아마도 이 날씨에 갈만한 곳은 안 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목적지는 있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스마트폰이 꺼지기 직전 확인한 또다시 버스를 갈아탈 정류장 이름만을 기억할 뿐이었기에. 그저 방향만을 바라보고 갈 때 구체적인 목적지를 물으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냥 제주시요”

“이거 제주 터미널까지 가는데?”

기사님은 내가 애먼 곳에 내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하긴 나도 갈아타는 건 귀찮아서... 원래 내리려던 곳이 번화한 곳이면 내리고 아니면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터미널로 가기 직전의 큰 거리에서 내렸다. 커다란 카페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좌석이 있는 빵집을 선택해 들어갔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찾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낭을 내려놓고 바로 전자기기들을 꺼냈다. 꺼진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연결한 후에야 카드를 꺼내 주문을 하러 나선다. 꽈배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순식간에 해치우고서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장비들이 충전되기까지 여유를 즐긴다. 여유란 게 별거 없다. 노트북을 펴고서는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글을 쓴다. 또 방금 빗속을 뚫고 걸으며 찍은 영상을 편집하고 있는 나란 사람... 참 별나다. 영상이 다 만들어져 업로드될 때쯤 젖었던 내 몸도 거의 말랐다.


‘슬슬 투표소를 찾아볼까?’


히맨 이즈 인 제주_Day#11-1_20170505

서중천 - 제주시 창섭이형 차방

20170505@창섭이형 차방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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