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게 더 강한 자극을 강요하고 있다.

히맨 이즈 인 제주_Day#11-2_20170505

by 히맨

창섭이 형이 알려준 차방 주소에서 가까운 곳에 사전 투표소가 있었다. 2~3킬로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거리라 버스 대신 걷기로 했다. 배낭을 멘 채 투표장에 들어섰다. 기표소에 들어가니 배낭이 절반 정도 걸치는 느낌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배낭이 가려줄 테니... 봉투에 넣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데 바로 앞의 안내하시는 분이 말을 건다.

“산에서 내려오셨나 봐요? 한라산?”

하긴 배낭을 메고 투표하러 온 사람이 흔치는 않았을 거다. 서둘러 인증샷을 찍고는 서둘러 창섭이 형의 차방으로 향했다. 가겠다고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었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몇 번 봤던 창섭이 형의 차방은 길에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거의 다 와서 살짝 헤매다 드디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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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차락’

입구에서 발견한 그 장소의 이름은 창섭이 형의 차방이라는 것에 확신을 주었다.

“저 왔어요~”


“들어와”

스스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차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가 보였다. 형은 지인으로 보이는 한 신사 분과 차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배낭을 내리자마자 얼마 만에 만나는 거냐며 자연스레 자리에 앉은 내게 형은 차를 내주었다. 차분한 듯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 움직이며 차를 내리는 손은, 그 움직임이 이미 그의 일상이 되었음을 보여줬다. 항상 멈추지 않고 변화무쌍한 도전이 일상이라면 일상이었던 그의 모습이 익숙했던 내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따뜻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향도 따뜻했다.

넘 대충 찍어서 형한테 미안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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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계속 걸어 다니다 산에서 자고, 그러다 잠깐 쉬고...”


제주에서 어떻게 지냈냐 묻는 형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번 제주도 여정을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한다. PCT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그냥 6개월 산에서 살다왔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형은 내 얘기를 들으며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는 듯했다. 이전 자신의 익스트림했던 도전과 여행들을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는다. 나는 대부분 아는 얘기지만 옆에 앉아 계신 신사 분은 전혀 모르셨던 것 같다. 아마 오래전부터 조용히 요가를 수련해온 청년인 줄로만 아셨던 것 같다. - 나중에 형은 내게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른다 했다. -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자하시며 차방을 나가셨다. 저녁까지는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아 그전에 좀 씻고 싶었다. 형은 근처의 목욕탕을 권했다.

대도탕. 건물로 들어서는 골목의 벽화부터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느낌의 작은 목욕탕은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었다. 특히 23도의 냉탕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19~20도 정도가 일반적인 냉탕인데 이 정도면 꽤 따뜻한(?) 냉탕이다. 덕분에 온 몸을 부담 없이 식힐 수 있었다. 문득 14도의 바다에서 몇 시간을 떨어야 했던 때가 떠올랐다. 머리가 얼 것 같은 차가운 파도가 정신없이 온몸을 때리던 그때를 나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내 몸의 한계치를 벗어나는 것에 항상 비장한 각오로 뛰어들었던 때였다. 손과 발을 묶은 채 뛰어드는 포박 수영에 나서면서 ‘가라앉으면 건져 주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작은 목욕탕의 매력과 함께 상쾌한 목욕을 즐겼다. 한편에는 등을 밀어주는 등밀이 기계가 있었는데 처음 보는 신문물(?)이 신기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자제했다.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던 신사 분은 사정이 생겨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형의 다른 지인과 함께 하게 됐다. 차에 올라 잠시 이동해 멈춰 서자 이내 뒷자리에 한 여성분이 올라탔다. 한의사라는 그녀와 셋이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여행 이야기들을 나눴다. PCT 이야기를 궁금해했던 그녀에게, 그리고 역시 PCT 이후로 처음 만난 창섭이 형에게 긴 호흡으로 미국에서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리고 희종이 형과 함께 했던 창섭이 형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도 디테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제주도 와서 아마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저녁은 모든 것이 즐거웠다.

다시 차방으로 돌아와 셋은 차를 나눴다. 이미 깊이 우려 놓은 차만큼 대화도 함께 깊어졌다.


“계속 뭔가 움직여야 살아있는 걸 느끼고... 나도 알지.”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끝없이 이전보다 더 강한 걸 찾고, 남보다 더 큰 걸 찾고... 그렇게 이것저것 쌓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형도 이미 나와 같은 사람(?)들이 좇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도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말로 들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나도 알지만 아직은 멈추고 싶지가 않다. 아직까지는 그냥 그 느낌이 좋은 것 같다.


‘독기로 몸을 끌어가는 것. 몸이 끌려가다가 어느 순간 몸이 손을 놓아버리면...
아마 PCT에서 마주했던 그 고통의 순간을 다시 마주할지도 모르지...’


나는 그걸 멘탈까지 바닥난 상태라고 했었다.

창섭이 형과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눠 본 건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늦은 밤이 되었다. 빨래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잠시 나만 빠져나와 창섭이 형이 알려준, 찾기 쉽다던 근처 빨래방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 결국은 형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다. 겨우겨우 찾아 빨래를 돌리고 돌아오니 그녀가 놀리듯 한마디 한다.

“길치면서 PCT는 어떻게 걸었어요?”

멋쩍은 웃음과 함께 그래서 거기서도 엄청 헤맸다는 답으로 대신했다. 빨래가 다 됐을 때쯤 그녀는 내게 공진단 하나를 선물하고는 집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빨래방으로 향했다.

이전에 이룬 것보다 더 큰 것을 찾아야 하는 건가?
이전에 이룬 것보다 작은 것에 뛰어든다면 그건 퇴보인 건가?
그렇다면 크고 작고의 기준은 외부에 있는 건가?
아니면 오로지 나만의 기준인 건가?
에이 나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겠다.

나는 내게 더 강한 자극을 강요하고 있다. 강제로 오버클록을 걸고 있다. 이전보다 준비조차 덜 된 채로 그저 욕심에...


차방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 내일은 한라산에 오를까 한다.


히맨 이즈 인 제주_Day#11-2_20170505

서중천 - 제주시 창섭이형 차방

20170505@창섭이형 차방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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