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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맨 Feb 19. 2016

또 다른 한국인 PCT하이커

Thermometer 윤은중.

전화가 왔다.


PCT하이커 Thermometer, 윤은중 어르신이다.

PCT를 끝내고 돌아온 후  찾아뵙고 싶어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가 드디어 한 잔 하자며 연락을 주셨다.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 혹은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건 없었다. 그냥 또 다른 한국인 PCT하이커와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한 족발 집에서 막걸리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PCT 초반 한 달에 한 번 정도의 재보급만으로 운행을 이어 나간  것뿐만 아니라, GPS나 애플리케이션 등의 도움 없이 지도만으로 길을 찾으며 수없이 헤매며 걸어 나간 것, 영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어려운 상황들을 하나씩 헤쳐나간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간의 고생들이 느껴졌다. 또한 같은 PCT하이커로서의 동질감도 느껴지며 나도 모르게 코 끝이 시큰해 지기도 했다.



Rock Star, Thermometer.


2015년 PCT하이커들 사이에서 Thermometer는,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따님이 어르신의 소식을 대신 전하면서 이미 초반부터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큰 사고 없이 PCT를 마칠 수 있던 것에는 많은 하이커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히맨과는 다른 형태의 시기적절한 트레일 매직으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히맨 또한 다른 외국인 하이커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보았고, 그게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놀리는 하이커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2015 PCT하이커들에게서 'Rock Star'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고 많은 하이커들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은, 비단 어르신의 외적인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커피와 위스키

가장 크게 느낀 것이라면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 온도계를  몇십 개 구매하셨다 했다. 길에서 만난 다른 하이커들의 선물로.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 했던, 어르신의 트레일 네임이 Thermometer로 지어진 이유였다. 또한 위스키와 커피믹스를 항상 챙겨 다녔고, 아낌없이 그리고 바라는 것 없이 나눠 주었다고 한다. 자기를 만난 하이커들은 웬만해서는 대부분 위스키나 커피를 받았을 거라고. 아무리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무게의 대가는 분명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했던 그 나눔은 자신을 줄곧 차갑게 대하던 하이커의 행동에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 페이스북 그룹인 'PCT Class of 2015'에 달린 진심으로 그의 완주를 축하하는 댓글. 언어 장벽은 오히려 꾸밈없이 진심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한국 분이세요?"


이야기는 우리가 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로 이어졌다.

첫 만남은 5일 차, PCT 첫 재보급지였던 라구나(Laguna) 우체국 옆 가게에서였다. 맥주 계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어르신을 처음 뵈었다. 그때 들은  첫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무런 소속도 지원도 없이 홀로 오셨다는 말씀에 놀라기도 했고, 한 편으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아  One부터 시작해서 발음과 숫자를 적어드렸고, 다음 재보급지로의 발송도 도와드렸었다.

PCTDAY#5 20150420
1.     한국 분을 만났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첫 보급지인 Mt.Laguna P.O. 가 Open 하기 전에 히치하이킹으로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대기를 해야 했고, - 약 3시간 – 바로 옆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구입하던 중이었다. 그 어르신은 맥주를 게 산하기 위해 우리보다 앞에 있었다.
한국분이냐 묻는 그의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다. 여기서 한국 분을 만나다니! 우리와 케이 말고도 다른 PCT 도전자가 있었다니!!
전혀 영어를 못 하시는  듯했다.
어떤 산악회 소속도 아니고 준비도 혼자서, 정보도 없이 엄청난 짐을 지고 여기까지 운행하느라 엄청 지친 듯 보였다. 지금까지 함께한 다른 외국인들의 보살핌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미 큰 배낭을 짊어진 아시안으로 PCTHiker 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듯하다. 따님이 페북을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았다. 한 외국인 버디(buddy)가 따님의 페북 Posting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충분히 이해 간다.
그치만 이제 그는 경우 4일 차인데…ㅠㅠ
무언가 소중한 것을 두고 온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직 그런 서글프고 그리운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원래 김희남은 무감각해서인가??
대화를 나누면서 약 6년 전에 이미 AT를 완주했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쉽게 말하지 못 하는 그만의 PCT의 목적은 무엇일까?
- 딸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며 눈물 흘리는 한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며…
PCT 하이커 Thermometer & Spontaneous



"두 번 만나지 않았었나요?"

"아니에요 3~4번 봤어요"


서로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하던 중 당시 우리를 그다지 곱게 보지 않았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희미하게 워너스프링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히맨은 커뮤니티 센터에 비치되어 있는 PC에서 그동안 밀린 운행기록들과 GPS기록, 사진 및 영상 등을 센터 운영이 끝나기 전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은 예민한 상태였다. 히맨보다 늦게 워너스프링스에 도착한 어르신이 이것저것 물어보셨었다. 다시 만난 반가움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귀찮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찮은 듯 무례하게 그리고 성의 없게 대답을 해드렸던 스스로의 행동이 기억났다.

지금 와서 보니 나는 내가 좋았던 기억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무심했던, 그리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고 잊고 있던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로도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런 나의 행동에 왠지 모를 배신감에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나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이 자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알지 못했을 나의 이기적 행동. 진심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에 나의 무례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드렸다.



'우리'라고 해도 되겠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잖아요.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거. 경험 공유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어요."

지금껏 내 이야기만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은 길을 또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좋았다. 모든 하이커는 같은 길을 걸음에도 분명히 다른 PCT를 경험한다. 더 많은 PCT하이커들의 길 위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가 그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발판이 되고 싶다. '우리'가 더 많은 '우리'를 낳았으면 한다.

더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길 위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도록.


- 인터넷이 익숙지 않은 어르신은 많은 하이커들에게 받은 도움에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시는  듯했다. 또 안타깝게도 PCT에서 찍은 사진들을 거의 다 날리신 것 같았다. 히맨이 찍은 영상 및 사진들과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들이라도 모아서 전달해 드릴 생각이다.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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