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TRANS JEJU by UTMB 100M
장수 100마일 이후 당연하게도 발목 통증은 여전했다. 더 악화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그냥 풀업이나 당기며 푹 쉬는 것을 택했다.
트랜스제주 출발까지 남은 3주간 쌓은 마일리지는 겨우 25km. 그래도 장수에서 LSD(?) 100km를 소화한 것에 위안을 삼으며 ‘그래도 제주는 완주하겠지’ 생각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마일리지와 몸상태라도 멈추지 않고 걸으면 100마일 완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100마일 3연전 중 2연패(?)를 기록했다. 대회를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 하지 못한 전개다. 그렇게 어느덧 올해 마지막 100마일 대회. 최근 컷오프에 계속 쫓기는 경험을 하고 있다보니 컷오프 시간 체크부터 하게 된다. 앞의 두 대회에 비하면 훨씬 널널한 시간에 전부 아는 코스니까 이번엔 완주하겠지 하면서도 불안감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출발하자마자 밤을 새게 되는 아쉬운 출발시간. 걸어도 완주는 하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후반부에 여유를 가지려면 시간을 벌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몸도 좀 풀어줄겸 아주 느린 조깅으로 로드 구간을 소화했다. 첫 CP까지 작년보다 7분이 더 걸렸다. 매번 좋았던 윗세오름을 어둠 속에 보내야 하는 게 아쉬웠다. 윗세오름에서 내려와 나롱이랑 지훈 님 만나 함께 출발했다. 긴 다운힐 로드에서도 빠르게 달릴 수 없는 게 답답했다. 관음사까지 함께 걷다 뛰다를 반복했는데, 걸을 때면 무조건 뒤로 처졌다. 역시 난 걸음이 느린 러너…(걸음만 느리냐;;) 멀어지면 다시 달려 따라 붙고 다시 멀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관음사 CP에서 컵라면 물 끓는 거 기다리다가 두 사람을 먼저 보냈다. 오랜만에 푹 길게 CP에서 쉬었다. 40분을 쉬고 백록담까지 느리지만 꾸준히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삼각봉 대피소를 지나 계속 진행하는데 대피소에서 쉬고 나온 나롱이와 지훈 님이 뒤에서 나타났다. 함께 백록담 인증을 하고 다운힐 시작.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또 보내 버렸다. 성판악 내려가서 짜장범벅 먹을 생각에 설렜지만, 발목은 그 텐션을 따라오지 못해 달리지 못 했다. 성판악에 내려갔더니 두 사람은 떠나고 없었고, 짜장범벅도 없었다. 망할… 삼각김밥으로 대충 마음을(?) 달래고 다시 출발했다. 성판악까지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작년보다 4시간 넘게 더 걸렸다. 그럼에도 적당하게 널널한 컷오프 시간…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완주하겠다 싶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목이 꺾였지 마음이 꺾였냐!’
이제 큰 건 다 끝났고, 달릴만한 코스만 남았다. 윗세오름과 백록담 구간에서 오버페이스해서 퍼지면 걸을 수 밖에 없게 되는 코스이기도… 여튼 예쁘고 달리기 좋은 사려니 숲길. 아마 100마일 전체 중에 가장 빠른 페이스로 길게 버티며 달린 것 같다. 찬석 형님이 뒤에서 합류하면서 긴 동반주가 시작됐다. 20K 코스와 겹치는 가시리로 가는 구간은 스테이지 100K의 3일차 코스로 5번이나 달려본 매우 친숙하고 좋아하는 코스다. 항상 봄에만 달리다 처음 만난 가시리의 가을은 정말 예뻤다. 이런 멋진 풍경을 20K 참가자만 즐기고 있었다니! 막판 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며 조금 뺑뺑이 도는 느낌으로 지루하게 달리다 드디어 드롭백 CP인 가시리에 도착. 드롭백을 주시며 한 마디 하신다. “100번 미만 마지막 드롭백이에요!”(ㅋㅋㅋㅋㅋ하…) 잠시 앉아서 멍때리고선 제일먼저 보조배터리와 케이블을 찾아 정신없이 연결했다. 대충 앉아 샤워타월로 몸이랑 발이랑 닦아내고 새 옷과 신발로 교체했다. 그리고나서야 국수 먹을 여유가 생겼다. 국수는 최고였다! 참 한참 멀어졌을 거라 생각한 나롱이는 바닥에 누워 자고 있었고, 지훈 님은 심신이 탈탈 털린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출발하고 만날 일 없을거라 생각한 관식 님을 비롯 꽤 많은 선수들을 만났다. 참 백만년 만에 대회에서 만난 충현이도 정말 반가웠다. 역시 백만년 만에 대회에서 만난, 나의 첫 100K를 함께 했던 민서 누나는 DNF를 선언했다.(고생 많았어요!) 40분만 쉬자고 하고 1시간 20분을 쉬었다. 다들 먼저 떠나고 찬석 형님과 계속 레이스를 이어갔다. 두 밤을 새고는 싶지 않다며 나아갔는데, 금방 찾아온 두 번째 밤하늘을 바라보며 해 뜨기 전에 침대에 눕는 생각을 일찍이 접었다. 그리고 찬석 형님이 서서히 앞으로 멀어져 갔고 나는 보내 드리고 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급 나를 찾는 전화를 하신다. “무서워 빨리 와!” 나름 열심히 갔는데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겨우 다시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멈춰서서 한참 기다리신듯… 몇 km 지점이냐 물었는데 내가 같은 거리를 얘기해서 소름 돋았단다. 이후 꾸준히 잘 맞춰 가다 다시 또 보내드렸다. 이승악 CP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오더니 다음 CP에서 서포트 받기로 했으니 쉬지 말고 바로 진행하라고 하신다. 퍼져 쉬고 싶었지만 대충 먹고 물만 채우고 다시 출발. 나홀로 가다가 잠시 텐션이 올라와 속도를 올려 가는데 멈춰 쉬고 있는 그룹이 보였다. 나롱이, 지훈 님, 관식 님과 현윤 님까지 단체로 다시 만났다. 그렇게 그룹에 합류해 야영장 CP까지 동반주 시작. 본격적인 돌밭이 시작되는 구간. 어쩌다보니 내가 앞에서 끌고 있었다. 그것도 잠에 취한 채 비틀대며 너덜길 업힐을 올랐다. 근데 다들 잠에 취해 있었… 잘 만한 곳이 나오면 쉬자는데 적당한 곳이 안 나와 계속 나아갔던… 어우 가장 힘든 구간을 함께 버티고 또 버티며 겨우겨우 야영장 CP 도착. 컵라면 서둘러 먹고선 ㅡ 아, 나롱이 그룹은 벌써 먹고 먼저 떠났으니 서둘러 먹은 건 아닌 거 같… ㅡ 서포터를 만나 재충전한 찬석 형님 만나 다시 함께 출발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앞으로 보내드림. 너무 졸리고 피곤한 상태를 버티고 버텨 다시 깨어났을 때 조금 달렸다. 속도를 다시 올려 달려나가다 다시 또 나롱이네 그룹을 만나 마지막 CP로 향했다.
CP에서 첫 100K 완주를 앞둔 치선 님을 만났다. “병철 님 저기 자고 있어요!”라고 하길래 돌아봤더니 테이블에 엎드려 뻗어 있는 병철 님. 그래도 엄청난 고민 끝에 결정한 첫 100K의 완주를 앞두고 있는 걸 보니 역시 잘 헤쳐나오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칭찬을 해드림. 그리고 함께 피니시를 향해 떠났다. 바뀌기 전 코스 같으면 마지막 CP를 만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텐데, 작년부터 바뀐 무한 루프(?)는 CP를 떠나기 겁나게 만든다. “자 이제 마지막 12K만 가면 돼요!”라는 스태프들의 응원으로는 커버하기 힘든 몸과 마음의 고통이 따른다. 그래도 함께 코스 욕하며 수다 떨며 나아가니 그래도 좀 나았다. 고근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에 뒤에서 속닥거리는 일본말이 들리더니 이내 히맨이냐고 물으시는 일본인 러너 부부를 만났다. 피니시하고 사진 찍자며 먼저 가셨는데 내가 너무 늦어 못 찍어드려 죄송한… ㅡ 나중에 DM이 왔는데 이미 나눴던 대화가 있길래 “뭐지?”했는데 알고보니 작년 트랜스제주 마치고 돌아가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사진 찍었던 분들이었다! 다음에 또 만나요!ㅡ 고근산 넘고 나면 끝날 줄 알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때부터 난 계속 남은 거리만 봄… 그나마 작년 한 번 경험해봤다고 다른 멤버들보단 좀 나은 것 같은…?ㅋㅋ 다리 밑으로 난 바위 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반응들도 카메라에 담으며 재밌어 하기도 하고 ㅋㅋㅋ 그렇게 경기장을 만나 만만히 봤지만 결코 쉽지 않았던 트랜스제주 100마일을 완주했다! 태윤 님이 건네주신 맥주를 마시고 함께한 동료들과 사진을 남기며 마무리했다.
2024년 100K 3연전 완주에 이어 호기롭게 도전한 2025년 100마일 3연전의 결과는 1승 2패. 그래도 마지막을 완주로 마무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장거리 트레일에 입문한 초기의 나는 매 CP마다 DNF를 마음에 품었고,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해왔다. 지금도 역시 완주에 대한 불확실함에 걱정하고 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건, 상황이 어떻든 큰 고민없이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간 수많은 선배 러너들 사이에서 달리며 보고 느낀 의연함을 나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전에 누군가에 기대어 가야만 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다른 이의 멘탈을 잡아 줄 수는 있는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필요한 게 있다면 이제는 무조건 길게 가기보다 몸 상태에 맞게, 훈련량에 맞는 코스 선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지만 쉽지 않겠지…ㅋㅋㅋㅋ 아니 대회 접수를 너무 일찍 받잖아! 몸 상태를 고려해서 신청하긴 쉽지 않다고!�ㅋㅋㅋ 여튼 이젠 회복!!!
by 히맨